메뉴 건너뛰기

함께하는 부고인
  
함께하는 부고인
  
 

[프리미엄][공복 김선생]
“내가 돼지야?”王은 왜 송편을 내동댕이쳤나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삼색송편./조선일보DB
삼색송편./조선일보
 

추석에 송편 드셨지요?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 맛보다 못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푼주는 아가리가 넓고 밑이 좁은 그릇입니다.
크기가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냉면 대접보다 큽니다.
아무튼 굉장히 큰 그릇인데요, 이 푼주 가득 담은 송편이
밥주발 뚜껑에 올린 적은 양의 송편만 못하다는 말이죠.
조선 19대 왕 숙종(肅宗)에 얽힌 속담입니다.

◇숙종과 남산골 젊은 선비부부
어느 날 숙종이 서울 남산골로 몰래 야간 순시에 나섰답니다.
누추한 오두막집에서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났습니다.
들창 사이로 방안을 들여다보니 젊은 남편이 글을 읽고,
새댁은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 속이 출출하구려.”
선비가 책을 덮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거라도 드세요.” 조용히 일어난 아내가
벽장 속 주발 뚜껑에 담은 송편 2개를 꺼내 놓았습니다.
선비는 반갑게 송편 하나를 얼른 집어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송편도 집어 들더랍니다.

‘시장하기는 마찬가질 텐데 아내에게 하나 줄 것이지,
인정머리 없는 놈.’ 왕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선비가 송편을 입에 물고는 아내 입에 넣어 주더랍니다.
왕은 부부의 애정에 감동했고,
부러운 마음으로 궁에 돌아왔습니다.
왕은 이튿날 나인을 불러 “송편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부산을 떤 끝에 커다란 수라상이 들어오는데,
커다란 푼주에 송편을 높게 괴어 올렸더랍니다.
전날 밤 보았던 애틋한 환상이 와장창 깨졌죠.
울컥 화가 치민 숙종은
“송편 한 푼주를 먹으라니, 내가 돼지야?”라며
푼주를 내동댕이쳤습니다.
왕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궁궐 사람들은 어리둥절했을 뿐이었지요.
여기서 나온 속담이 바로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 맛보다 못하다”란 거죠.

◇초파일·단오에도 먹던 송편
숙종이 야간 순시에 나선 때가 추석 즈음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요즘은 송편이 추석을 대표하는 절식(節食)이지만,
옛날부터 그렇진 않았습니다.
송편은 추석이 아닌 다른 명절에도 먹었습니다.

‘홍길동전’의 저자이기도 한 허균이 1611년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도문대작이란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쩝쩝 다신다’는 유쾌한 제목인데요,
전국 팔도 별미와 토산품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허균은 송편을 ‘봄에 먹는 음식’으로 소개합니다.
19세기 초 문인 조수삼은 ‘추재집’에서 ‘정월 대보름
솔잎으로 찐 송편으로 차례를 지낸다’고 적었습니다.
이 밖에도 초파일·단오 등에도 송편을 빚어 먹는다고 기록됐고요.

송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추석에 먹던 송편은 ‘오려 송편’이라 했습니다.
‘오려’는 올벼의 옛말로, 일찍 익는 벼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올해 농사지어 수확한 햅쌀로 빚은 송편’이란 뜻이죠.

‘노비송편’은 남자 어른 주먹만 하게 큼직하게 빚은 송편입니다.
음력 2월 초하루 중화절(中和節) 날 먹었습니다.
중화절은 조선 시대 농사철의 시작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주인집에서는 ‘농사일 잘해달라’는 의미로
노비송편을 노비와 머슴들에게 나이 수대로 나눠줬기 때문에
‘나이떡’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출처/조선일보>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7143 옮긴 글 [ESSAY] 저기, 언니가 간다 [4] 김승자 2021.09.28 247
17142 동남아 여행기 - 라오스 Champasak [2] 박일선 2021.09.26 202
17141 포노 사피엔스가 만드는 일상 혁명 [3] 김동연 2021.09.24 334
» "내가 돼지야?" 王은 왜 송편을 내동댕이쳤나 <조선일보> [5] file 엄창섭 2021.09.24 288
17139 동남아 여행기 - 라오스 Pakse 가는 길 [1] 박일선 2021.09.23 27
17138 낮보다 더 아름다운 수원 화성의 밤 [6] file 이태영 2021.09.23 292
17137 동남아 여행기 - 라오스, Si Phan Don [4] 박일선 2021.09.21 46
17136 South Dakota, 2021 [15] file 김승자 2021.09.21 143
17135 창경궁을 한 바퀴 [12] 황영호 2021.09.20 293
17134 동남아 여행기 - 라오스, Si Phan Don 가는 길 [4] file 박일선 2021.09.19 30
17133 ♣10년 전으로 돌아가 본 홈피에 실린 계시물 [8] 성기호 2021.09.19 172
17132 서울의 숨겨진 옛 골목 서촌 한옥마을 [7] file 이태영 2021.09.17 364
17131 새 산책길 [8] 김동연 2021.09.17 644
17130 동남아 여행기 - 캄보디아 Kratie [1] 박일선 2021.09.16 201
17129 동남아 여행기 - 캄보디아 Siem Reap [6] file 박일선 2021.09.14 50
17128 제주 본테미술관의 연못 [3] file 이태영 2021.09.14 182
17127 동남아 여행기 - 캄보디아 Ankor Wat [3] 박일선 2021.09.12 242
17126 산책회, 경의선숲길을 산책하다. [4] file 이태영 2021.09.10 162
17125 홍대 입구 경의선 숲길 책거리 [4] file 정지우 2021.09.09 526
17124 8월이 다 가던날 [10] 황영호 2021.09.07 320
17123 산책길에서 만난 무궁화 [10] 김동연 2021.09.07 136
17122 Immersive Van Gogh, Minneapolis, USA [11] file 김승자 2021.09.06 139
17121 수원 화성의 뭉게구름 [6] file 이태영 2021.09.04 132
17120 <물처럼 바람처럼> - 김영교 [6] file 김동연 2021.09.03 155
17119 유타 소식 - 데이지와 아침 산책을 [11] file 박일선 2021.09.03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