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함께하는 부고인
  
함께하는 부고인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2022.05.13 22:05

김동연 조회 수:93

 

 

 

 

**********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가올 시간이지만 이미 충분히 예견된 탓에

낯설지 않은 미래를 이렇게 부릅니다.

 

노후야말로 '오래된 미래' 중 하나지요.

'생로병사'라는 피해갈 수 없는 외길에서

지금의 이 단계를 지나면

다음 코스에서는 뭐가 나올지

우린 다 알지요.

 

다 알기 때문에 오래되었고,

그럼에도 아직은 오지 않았기에

미래인거지요.

 

지난 2019년 봄 평사리 최참판 댁 행랑채 마당에서

박경리 문학관 주최로 '제1회 섬진강에 벚꽃 피면 전국시낭송대회'

가 열렸습니다.

 

60여 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낭송시가 바로 이생진의 

이 작품입니다.

 

7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 낭송가의 떨리고 갈라지는 목소리에

실려 낭송된 이 시는 청중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젖게 하였습니다.

 

좋은 낭송은 시 속의 '나'와 낭송하는 '나'와

그것을 듣는 '나'를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내몸의 주인인 기억이 하나둘 나를 빠져나가서

마침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나이.

 

나는 창문을 열려고 갔다가

그새 거기간 목적을 잊어버리고 창문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에 갔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앞이 막막하고 울컥하지 않습니까.

 

시인은 차분하게 이 참담한 상황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서로 모르는 사이가/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일 뿐이라고.

 

그리고 자책하는 목소리에 담아 우리를 나무라지요.

거창하게 

인생이니,

철학이니,

종교니 하며

 

마치 삶의 본질이 거기에 있기나 한 것처럼 핏대를

올리는 당신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고.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나 사이'의 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셈이지요.

 

(김 남 호/문학평론가)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7420 동남아 여행기 - 마지막 나라 필리핀, Palawan 섬, Puerto Princesa [2] 박일선 2022.05.19 21
17419 카오톡 사용법 총정리 [5] 김동연 2022.05.18 100
17418 계절을 벌써 오월의 중턱에 [12] 황영호 2022.05.18 79
17417 청와대 오운정과 이승만의 친필 <조선일보> [4] file 엄창섭 2022.05.18 86
17416 동남아 여행기 - 마지막 나라 필리핀, Manila 가는 길 [2] file 박일선 2022.05.17 16
17415 5월의 단풍나무 [5] file 이태영 2022.05.17 106
17414 29회 선농 축전 [2] file 정지우 2022.05.16 208
17413 Arboretum, Minneapolis Tulips, 2022 [11] file 김승자 2022.05.16 71
17412 동남아 여행기 - 브루나이, 수도 Banda Seri Begawan [2] file 박일선 2022.05.15 20
17411 [아살세툰] 백인 선생님 울린 '한국에서 온 선물상자' [1] 심재범 2022.05.15 34
»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5] 김동연 2022.05.13 93
17409 5월 18일 인사회 모임 [3] file 이태영 2022.05.13 80
17408 사대부고 75주년 기념 행사 일정표 file 연흥숙 2022.05.13 65
17407 사대부고 75주년 기념 영상 연흥숙 2022.05.13 55
17406 5월 15일 선농축전 개최 file 회장 2022.05.13 60
17405 산책회 일기 [3] file 이태영 2022.05.13 110
17404 서울숲 가다 [2] file 정지우 2022.05.12 43
17403 동남아 여행기 - 동티모르, 수도 Dili (속) [2] 박일선 2022.05.12 17
17402 11회 동창회 [1] file 정지우 2022.05.11 139
17401 서울사대부고 제11회 동창회 임시총회 [1] file 이태영 2022.05.11 167
17400 십여년전에 친지에게서 받은 택배 [9] file 김승자 2022.05.10 73
17399 동남아 여행기 - 동티모르 수도 Dili (속) [1] 박일선 2022.05.10 11
17398 동남아 여행기 - 동티모르, 수도 Dili [2] file 박일선 2022.05.08 19
17397 어머니의 마음 [3] file 엄창섭 2022.05.07 100
17396 일박 이일의 춘천 여행 [3] file 이태영 2022.05.06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