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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2022.05.13 22:05

김동연 조회 수:421

 

 

 

 

**********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가올 시간이지만 이미 충분히 예견된 탓에

낯설지 않은 미래를 이렇게 부릅니다.

 

노후야말로 '오래된 미래' 중 하나지요.

'생로병사'라는 피해갈 수 없는 외길에서

지금의 이 단계를 지나면

다음 코스에서는 뭐가 나올지

우린 다 알지요.

 

다 알기 때문에 오래되었고,

그럼에도 아직은 오지 않았기에

미래인거지요.

 

지난 2019년 봄 평사리 최참판 댁 행랑채 마당에서

박경리 문학관 주최로 '제1회 섬진강에 벚꽃 피면 전국시낭송대회'

가 열렸습니다.

 

60여 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낭송시가 바로 이생진의 

이 작품입니다.

 

7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 낭송가의 떨리고 갈라지는 목소리에

실려 낭송된 이 시는 청중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젖게 하였습니다.

 

좋은 낭송은 시 속의 '나'와 낭송하는 '나'와

그것을 듣는 '나'를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내몸의 주인인 기억이 하나둘 나를 빠져나가서

마침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나이.

 

나는 창문을 열려고 갔다가

그새 거기간 목적을 잊어버리고 창문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에 갔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앞이 막막하고 울컥하지 않습니까.

 

시인은 차분하게 이 참담한 상황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서로 모르는 사이가/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일 뿐이라고.

 

그리고 자책하는 목소리에 담아 우리를 나무라지요.

거창하게 

인생이니,

철학이니,

종교니 하며

 

마치 삶의 본질이 거기에 있기나 한 것처럼 핏대를

올리는 당신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고.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나 사이'의 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셈이지요.

 

(김 남 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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