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5월을 보내며
[나의 실버타운 일기]
1년 중에 가장 아름다운 5월의 연휴. 젊은이들에게는 설렘의 절기지만 노인들에게는 서운함과 외로움의 시간입니다.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복지시설은 식당의 그릇 소리 외에는 모든 기능이 정지된 듯 고요하기만 합니다.
나는 연휴가 시작되기 여러 날 전부터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전화번호를 알아냅니다. 간호사와 담당 복지사의 전화번호. 만약에,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즉시 연락할 수 있는 안전망을 준비해 놓고 싶어서죠. 그런데 어렵게 알아낸 그 번호들이 같은 대표 전화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누르기만 하면 자동 응답기가 대답하는 대표 전화. 그럴 거면 119만 알고 있어도 되는 것을.
연휴의 하루 정도는 외출이나 방문으로 그럭저럭 지나갑니다. 그러나 뒤이은 2~3일 혹은 그 이상의 휴일은 심란한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TV에 비친 공항의 인산인해 장면을 보고 배신감과 울분을 토하는 노인도 있지만, 그런 반응은 모두 무의미한 일과성의 연중행사일 뿐입니다.
나는 정원으로 나가봅니다. 빛나는 5월의 햇살을 받으며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나무들도 바람에 흔들리고, 거리에서 경적 소리도 들려옵니다. 여느 때처럼. 그런데 아무도 없는 시설의 연휴 속에 잠긴 정원은 마치 사막처럼 막막하고 조용합니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대낮에도 복도에 전등이란 전등은 다 켜져 있고 카운터에는 당직자가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습니다. 5월 연휴의 적막감에 등골이 서늘해져 다시 방으로 돌아옵니다. 정원의 햇살에 폐 속까지 피폭된 나는 전기장판을 켜고 오한을 앓았습니다.
열감 속에 명상인지 졸음인지 생각의 무중력 상태에서 지난날의 5월들이 물밀듯이 떠올랐다 사라집니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며칠 만에 다시 정원을 찾았을 때 꽃들은 한두 번의 비바람 속에 완전히 지고 나무들은 녹음이 짙어져 있습니다. 5월은 이제 끝.
※필자(가명)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은 한 실버타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출처 조선일보(아무튼, 주말) |
어느 90노인이 찬란했던 오월의 긴 연휴를 외로이 보내는 심정을 적나라하게
그려놓은 실버타운의 을시년스러운 풍경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아 가슴 아프게 닥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