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Alice" - 5 years ago
2020.07.17 03:37
"Still Alice"
아카데미 주연상을 탄 쥴리 모어(Julie Moore)가 주연한 “Still Alice”라는
영화를 보며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슬픔이 밀물처럼 가슴 가득히
몰려든다. 물론 엘리스의 치매현상은 노화에서 오는 증세가 아니고
유전자에 의해서 일찍이 악화현상을 보이는 소위 “Familial Alzheimer”
(Early-onset Alzheimer's Disease)경우였지만 이와 유사한
치매증세가 언제 나타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문득 지난날 나의
경험들을 되돌아 보게 한다.
과연 나는 어디쯤에 도달하고 있는 것일가?
남편의 도시락을 싸기 위하여 전날밤에 달걀을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컨테이너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놓고는 막상 아침에 쌀라드를 싸면서
삶은 달걀은 깜빡 잊어 버렸다.
뭉클하는 순간 낭패스러운 심정을 어찌 표현하랴!
어떻게 그런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일을 까맣게 잊어 버릴 수 있을가?
영 기분이 맑지 못하다.
하긴 이런 일이 처음인가? 흔히 장을 보러 가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가
조목 조목 적기는 잘 한다. 문제는 가게에 들어 서면서 아차! 메모지를
카운터위에 놓고 그냥 온거다. 머리를 굴려가며 대강 대강 기억나는 걸
사들고 돌아 와서 보면 영낙없이 꼭 필요한 종목 한, 둘을 빼먹고 온 거다.
아직까지는 아이들 생일이며 형제들 생일, 시부모님 제사날, 모두 머리속에
기록되어 있으니 크게 실수한 적은 없다. 오히려 손주들 생일을 잊어버릴가봐
미리 미리 신경을 쓴다.
이번 여행떠나기 전에도 손녀사진을 넣고 생일카드를 정성껏 만들어
iPhoto로 주문해 놓고는 다녀 와서는 카드상점엘 쫒아가서 마음에
드는 카드를 한장 들고 와 보니 쌓인 우편물중에 미리 주문해 놓았던 카드가
와있지 않은가! 기왕 사온 카드니까 일곱살 되는 손녀에게 카드 두장을 주니
내 사연 모르는 손녀는 입이 함박만해 진다. 기억력이 희미해서 이런 재미있는
일도 일어 나긴 한다.
자주 여행을 하다보니 짐싸는데에도 이력이 생길 법 하건만 매번 짐을
어떻게 하면 요령껏 싸느냐가 큰 문젯거리가 되고 있다.
이년전 겨울 어느날 캘리포니아로 가는 가방을 싸면서 내 나름으로 요령껏
여기 저기 작은 물건을 낑겨 넣었겠다. 문제는 가서 가방을 열었을 때 내가
꼭 필요한 물건이 가방을 다 털어 쏟아도 보이지가 않는 거다.
할 수 없이 백화점엘 가서 필요한 것을 사서 지내고 집으로 돌아 온 후
가방을 비우다 보니 손잡이 안쪽으로 짚퍼가 눈에 띄였다. 흠, 이런게
있었던가? 자문하며 열어 보니, 아뿔사, 내가 그렇게 찾던 물건이 그속에
가즈런히 들어 있질 않은가!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가는 봄방학에 참가하려고 비행기표를 사는데 어쩐 일로
딸아이가 일러 준 날자보다 한주일 뒤 스케쥴로 표를 사는 실수를 저질렀다.
다행히 비행기표 바꾸는데에 벌금을 물리지 않는 Southwest Airline 표라서
억울한 일 없이 바른 일정으로 바꾼 것까지는 좋았는데 딸이 우리 일정표를 받아
보고는 Vail, Colorado로 와야 한다고 하질 않는가! 하긴 그렇게 일러 주었는데
왜 Denver, Colorado행을 샀을가? 내 이유는 Denver로는 Non-Stop Flight가
있으니까 순간적으로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목적지인 Snowmass로 가려면
Vail Airport에서 차편을 이용해야 편리하니까 Vail로 오라고 한 딸의 말을 잊고
그저 직행이라는 점에 현혹되어 Denver행을 구입했던 거다.
또다시 비행기표를 캔슬하고 새 비행기표를 구입하는 지경이였다.
늙은이 소견 별 볼일 없으니 앞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시키는대로 묻지도 말고 따라 하기로
다짐하면서 Southwest Airline에서 받은 크레딛을 잊어 버릴가봐 전전긍긍한다.
어서 비행기표 크레딛을 써야지, 컴퓨터앞에 대문짝만한 쪽지가 붙어있다.
그나 그뿐인가, 요즈음은 읽고 있는 책이름이나 작가이름도 누가 물으면 막상
떠오르지 않아서 말문이 막힐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내가 봉사하고 있는 미술관 친구들과 Book Club에서 Art에 관련된 책을 선택하여
읽고 토론하는데 요즈음 예술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Art Forgery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이번 책 이름이 "The Art Forger" 인데 한 친구 왈, 이전에 우리가
이미 읽은거라서 자기는 읽지 않겠다고 한다. 실은 이전에 읽은 책이름, "The Forger’s Spell'은
이름은 비슷해도 전혀 다른 작가가 다른 각도에서 쓴 글임을 간과하고 있는 걸 보고
나만 기억력이 흐미해 져가고 있는건 아니로구나 하는 위안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가 읽는 책 이름과 작가를 꼬박 꼬박 기록해 두기로 마음 먹는다.
생각하면 한심할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다행히 아직은 끼니를 잊는다던가, 아이들 이름이며 생일을 잊어버린다던가,
자동차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 버린다던가, 비행기시간을 잊었다던가
약속을 잊어버린다던가, 심지어는 Alice처럼 집으로 가는 길을 잊어버렸다던가
하는 적은 아직 없지만 앞으로 장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신의 기억력이 도리킬 수 없이 악화됨을 알자 이지적인 그녀는 자신에게
마지막 처신을 하는 절차를 비디오로 마련하여 컴퓨터에 저장해 둔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기여코 안개낀 듯한 머리속에 뱅뱅도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말잃은 Still Alice가 되고 만다.
“Still Alice”의 가여운 모습이 영 잊혀지지 않는다.
댓글 8
-
김승자
2020.07.17 04:17
-
이초영
2020.07.17 08:13
승자야. 공감하며 잘 읽었어. 이제 이 나이에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이야길꺼야.
나도 2019년도 초, 안경집을 찾다 찾다 엉뚱한데서 찾은후에 왜 안경이 그 곳에 있다는 것을
기억 못하는가 틀림없이 치매의 시작이다 라고 생각하고, 한참을 우울하게 지냈어.
치매에 관한 기사들, 인터넽 설명들, 읽어가며... 아직은 치매를 고치는 약이나,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family DR.의 말을 듣고. 그러면 내 노력과 실천력으로
치매가 생기지 않도록 나의 치매예방 처방전을 세웠다. (의사선생님들이 웃으시겠지만)
...나이들면 물부족이 많은 병들의 원인이라고 물 많이 마셔라.(뇌도 물이 필수적이다)
...뇌의 노화를 방지, 뇌의 활성화를 위해 머리를 많이 쓰는것을 생활화 해라.
...적당한 운동과 충분한 수면 (good sleep)을 취하라.
...은퇴생활이라도 적당히 긴장심을 갖고 시간을 쪼개어 쓰면서 하로를 보내자.(Organize)
... 골고루 영양섭취 하자.
... 외롭게 살지말고 좋은 친구를 만나고 즐거운 시간 갖도록 노력해라.
그 외에도 많지만 너무 많으면 지키기가 어려우니 위의 것들만 기본으로 지키면서 살려고 해.
그래도 만일 손님이 (치매) 찾아 온다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추한꼴 보이기 전에
데려가 주십사 기도 하련다.
-
김동연
2020.07.17 10:41
5년 전에는 우리들 끼리 만나면 이런 경험 이야기로 웃고 떠들면서
그냥 수필감이나 멋진 농담으로 들었었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로.
지금은 달라. 우리 거의 모두가 노인성 치매 초기에 있고 남에게 증세가 눈에 띄게 될때는
불과 2,3년 아니면 5,6년이야. 85세이상의 노인에게 치매 발병율이 45%라니 거의 2사람에 1명.
90세이상에는 70%이상이라니.
초영이 말대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가 판단력이 좀 남아있을때 스스로 마무리를 하고 싶은데...
-
민완기
2020.07.17 11:45
아직은 괜찬으십니다.
배우자의 손만 잘 잡고있으면 됩니다.
구두를 신발장 대신 냉장고에 넣는날부터는 냉장고부터 문을 거세요.
걸으면 살고 누우면 간다고 하니까요. 감사.
-
황영호
2020.07.17 13:13
실감나는 김승자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아직까지 맑은 총기를 가지시고 일상을 누리시는 김승자 님이 참 부럽습니다.
두 분 항상 건강하세요.
어느 날 전화를 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누르니 도대체 신호가 울리지 않아요?
옆에 있던 여직원이 사장님(?) 왜 자꾸 계산기만 두드리고 계세요? 하지않겠습니까!
-
이태영
2020.07.18 17:44
김 승자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행간이 시원 정리가 되어서 읽기에 편안하네요
오늘 아침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즐거운 만남이었지요 다음 7월 29일 11시에 뵙겠습니다.
-
이은영
2020.07.18 17:45
승자의 글이 마음을 무겁게 하는구나.
이렇게 얘기할수 있을때가 좋은때인것 같아.히
나도 가끔 전회를 귀에대고 통화 하면서 손으로는 전화기를 찾아 다닌적이 있어.
내가 치매가 확실히 왔을때 알아 차리고 재빨리 나의 있을곳에 누가 데려다 주면 해.
-
연흥숙
2020.07.24 12:46
승자야, 이런 일 이야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껄.
나도 음식하다가 급히 냉장고 열었는데, 왜 왔지?
문 닫고 다시 불 앞에 가니까 생각이 났어. 픽 웃고 다진 파 꺼냈단다.
지난 번 동네 산책 사진 보니, 넌 여전히 곱더라. 걱정 마. 웃고 지내자.
번호 | 제목 | 이름 | 날짜 | 조회 수 |
---|---|---|---|---|
16443 | 본격적인 휴가 시즌, 8월 5일 인사회 모임은 쉬기로 하였습니다. [4] | 이태영 | 2020.07.28 | 81 |
16442 | 안동 민속한자마을과 월영교 [14] | 황영호 | 2020.07.28 | 353 |
16441 | 내 생에 최고의 오페라 모음곡 [2] | 심재범 | 2020.07.28 | 128 |
16440 | LALA - 관점. 마음의 책사 (심심풀이 생각) [2] | 최종봉 | 2020.07.26 | 67 |
16439 | ♣ "중국 공산당 바꿀 것" 폼페이오의 차디찬 결별선언 [11] | 성기호 | 2020.07.26 | 667 |
16438 | 시흥 관곡지 ‘연꽃테마파크공원’ [8] | 이태영 | 2020.07.26 | 199 |
16437 | 병산서원을 찾다 [14] | 황영호 | 2020.07.25 | 135 |
16436 | 우산 - 김수환 추기경 [8] | 김필규 | 2020.07.25 | 217 |
16435 | 오하이오 주를 떠나서 [12] | 박일선 | 2020.07.24 | 159 |
16434 | 제주의 겨울정원 (파워 포인트로 동영상 만들기) [11] | 김동연 | 2020.07.22 | 358 |
16433 | 작은 아들 결혼식 사진을 보세요 [20] | 박일선 | 2020.07.21 | 304 |
16432 | 화려한 꽃 히비커스 [5] | 이태영 | 2020.07.21 | 312 |
16431 | "미국이 우릴 때려도 우릴 동정하는 나라 없다" 中의 통절한 반성 [2] | 엄창섭 | 2020.07.21 | 115 |
16430 | 7월 산우회 모임 [1] | 정지우 | 2020.07.20 | 3147 |
16429 | 오하이오 주 Kent 까지 자동차로 [12] | 박일선 | 2020.07.19 | 132 |
16428 | 들어도 들어도 아름다운 "푸른 옷소매" [2] | 심재범 | 2020.07.18 | 148 |
16427 | Zoom Meeting 에 들어오신 남학생들과 함께 [8] | 이초영 | 2020.07.18 | 184 |
16426 | 동창회보 102호 발간 [3] | 관리자 | 2020.07.18 | 1761 |
16425 | 이름 모르는 하얀 꽃 [6] | 이태영 | 2020.07.18 | 370 |
» | "Still Alice" - 5 years ago [8] | 김승자 | 2020.07.17 | 204 |
16423 | 서울둘레길 1코스 수락, 불암 [5] | 엄창섭 | 2020.07.16 | 205 |
16422 | 미주 11회 7월 Zoom Meeting [16] | 이초영 | 2020.07.16 | 172 |
16421 | 백선엽 장군 친일파 논란, 이 영상 하나로 정리한다 [1] | 김동연 | 2020.07.15 | 910 |
16420 | 오늘 인사회에서 [7] | 김동연 | 2020.07.15 | 119 |
16419 | 美 NSC" 韓國의 번영, 백선엽같은 영웅 덕분" 성명 [6] | 심재범 | 2020.07.14 | 94 |
Covid 19으로 Lockdown이 계속되면서 단조로운 일과를 보내면서
문득 5년전에 올렸던 졸필을 다시 꺼내 읽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