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칠곡가시나들' 얼굴에 시 꽃이 피었다.
2023.01.22 22:10
팔순 '칠곡가시나들' 얼굴에 시 꽃이 피었다 한국일보 최흥수 기자
칠곡 약목면 두만천변의 '칠곡가시나들' 벽화거리. 칠곡군 마을학교에서 한글을 깨친 약목면 할머니들의 시와 그림이 그려져 있다.
경북 칠곡 기산면에 ‘말하는 은행나무’가 있다. 비룡산 아래 각산마을에서 약 500m 떨어진 대흥사라는 작은 암자 앞이다. 잎 하나 남지 않은 겨울이지만 1,000년 가까이 됐다는 나무의 풍채가 위풍당당하다. 그런데 나무가 어떻게 말을 한다는 걸까? 옛날 인근 성주에서 퉁지미(각산마을)로 시집온 새색시가 이 나무 아래서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았고, 이후 마을 사람들도 남에게 말하기 힘든 속내를 은행나무에게 털어놓았단다. 그럴 때마다 은행나무는 꿈에 가장 사랑하는 가족으로 나타나 위로하고 해결책을 말해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각색된 부분을 덜어내면, ‘말하는 은행나무’의 실상은 ‘말 들어주는 은행나무’였다. 낯선 산골로 시집온 새댁이 맘 놓고 하소연할 존재가 이 나무밖에 없었던 셈이다.
칠곡 기산면 비룡산 자락의 '말하는 은행나무'. 실제는 응어리진 속마음을 털어놓는 나무다. 시는 굳이 표준어로 옮기거나 교정을 보지 않고 처음 쓴 그대로 적었다. 경상도 친구 하나쯤은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일상에 살아 숨 쉬는 입말이어서 더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야야 와 그래 차를 세우노. 엄마요 앞에 더디 걷는 할매 보이 엄마 생각이 나네. 우리 엄마도 저래 걸어가겠지 싶어서 빵빵 거리도 몬하고. 딸이 그 말을 하니 내 눈에 눈물이 난다." 강금연(86)
"비가 오연 혼자 있으까, 쓸쓸하고 허전하고 집이 텅 빈 거 거꼬, 그때는 아들한테 전화해 본다. 오이야 하고 나면 눈물이 난다." 이원순(85) "마당에 도래꽃이 만타. 영감하고 딸하고 같이 살던 우리집 마당에 도래꽃이 만타. 도래꽃 마당에 달이 뜨마, 영감 생각이 더 마이 난다."박두선(87)
"우리 손녀 다 중3이다. 할매 건강하게 약 잘 챙겨 드세요. 맨날 내한테 신경 쓴다. 노다지 따라 댕기면서 신경 쓴다. 이뿌고 귀하다." 박월선(88)
"우리 며느리가 공부한다고 자꼬 하라칸다. 시어마이 똑똑하라고 자꼬 하라칸다." 곽두조
고민을 거듭하며 짜낸 시어마다 가난하고 못 배워 서러웠지만,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지난날의 따스한 추억이 묻어 있다. 총천연색 그림과 맞춤법을 무시한 언어 구사에 미소를 짓게 되지만, 돌아서서 곱씹을수록 울컥하는 속울음을 삼키게 하는 문장이다. 행간마다 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 자식 걱정과 며느리 자랑, 손주에 대한 사랑이 짙게 밴 때문이리라. 설 밑이어서 더욱 뭉클하다.
약목면 칠곡가시나들 벽화거리. 두만천변 낮은 담장을 장식하고 있다.
약목면 칠곡가시나들 벽화거리는 하천변 낮고 허름한 주택 담장에 그려졌다.
약목면 칠곡가시나들 벽화거리. 남편, 자식, 손녀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약목면 칠곡가시나들 벽화거리. 할머니가 된 그들도 한때는 가슴 두근거리는 소녀였다. <한국일보 기사에서 발췌>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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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2023.01.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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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3.01.25 21:16
할머니들의 기쁨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겠지만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깨우치게 도와준 지역사회 젊은이들이
고맙게 생각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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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3.01.23 20:05
소박하고 검소한 삶이 천직인양 한 평생 고단과 가난을 가슴에 묻고
며느리로 엄마로 할머니로 살아온, 팔순이 다 넘어서 글을 배우고 익혀서
글자를 쓸 수 있게된, 겉치래 하나없고 티끌 한 점 묻지않은
오직 가족에 대한 애정만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오신 경북 칠곡 기산면의
할머니들의 늙막의 쏟아내는 시어들은 마치 어럼푸시 떠오르는 어릴적 시골
고향의 향수처럼 사람사는 온기가 물씬 풍기는 정감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하나같이 감동을 주지만 그 중 87세 박두선 할머니의 도래꽃을 다시 읊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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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3.01.25 21:20
참 솔직한 표현이지요? "도래꽃 마당에 달이 뜨마 영감생각이 더 마이 난다"
번뜩이는 재치로 금방 작품을 한 개 만드셨군요. 선택하신 사진과 시가 맘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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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2023.01.24 16:21
비록 철자법이나 표준어가 아닐망정
분명히 우리 언어로 찡하는 감동을 주는 글들입니다.
칠곡 기산면의 은행나무 이야기도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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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3.01.25 21:25
얼마나 답답하면 은행나무에게 가서 하소연을 했을까요...
저도 은행나무 이야기가 오래동안 마음에 남습니다.
사투리니까 더 재미있지요. 더 솔직한 표현인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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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영
2023.01.25 02:19
80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다가 한글을 깨우친 그 여인들
장님이 눈뜬것 같고, 귀먹어리가 귀가 뚤린것 같고,
벙어리가 말문이 터진것 같이 딴 세상에 들어와 살고있는
느낌일것 같아.
가슴에 품고 살아왔던 지난날의 이야기들, 무궁 무진한
시의 소재가 되어 읽는이들의 심금을 두드린다.
그녀들의 새로운 삶에 근심 걱정도 잊어 버리고
치매도 안 걸리고, 심신이 건강하니 100세 까지 장수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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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3.01.25 21:34
젊었을때 가난한 마을에서 며느리로 살기가 기막히게
힘들었을텐데, 나이 들어서 이런 기쁨을 얻을 줄 몰랐겠지?
대통령도 만나고, 신문에도 나고, 방송도 타고 요즘 정신없을 것 같아.
그동안 쌓였던 한을 다 풀었으면 좋겠어.
지자체의 성공사례야. 주변 젊은이들의 수고로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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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깨우친 시골 할머니들의 순수한 감정과 표현을
엿볼수 있는 시가 마음을 울리는데 감동이었어.
한글과 사랑에 빠진 칠곡 할머니들의 인생이
새로운 생활로 같이 느껴보고 싶은 심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