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곽웅길형을 추모하며, 조성구
2020.05.12 07:03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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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2020.05.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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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선
2020.05.12 09:56
한 번쯤 더 봤으면 했는데 먼저 갔군요. 휴스턴에 가서 두번 씩이나 칙사대접을 받았는데 되갚을 기회도 못 갖었어요. 이제 영면하시게. 명가수 추억 사진을 올리네. Mrs. 곽,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영국 신사 같은 친구, 좋은 곳에 갔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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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0.05.12 09:58
고 곽웅길 동문의 명복을 빕니다.
두 분의 추모글을 읽고 슬픔을 함께 나눕니다.
부인께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건강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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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0.05.12 13:13
고 곽웅길 동문의 갑작스러운 비보로 미네소타에서 조성구 동문이 올린 고인에 대한 추모의 글을 접하면서
먼저 슬픈 마음으로 고 곽웅길 동문의 명복을 빕니다.
60여 년의 인생길에서 매 져진 인연이 조금도 변함없이 이어져온 귀한 우정이 가슴을 저리게 다가옵니다.
고 곽웅길 동문은 나와는 졸업 후 나 역시 공군 장교 훈련 시절 대전 기교단에서 반갑게 만난 적이 있었고
그 후 미국 여행에서 두 번째 조우 때는 세월을 뛰어넘어 만면에 웃음 지우며 반갑게 맞아주던 옛 기억이 지워지지 않네....
젊었던 날의 추억을 되새기며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친구의 묘역을 찾아가겠노라는
조성구 동문의 고인에 대한 깊고도 애틋한 우정의 글이 가슴에 조용히 와 닫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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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규
2020.05.12 21:41
이사람 웅길이, 한발 앞서갔네 그려. 부디 잘가시게.
1964년 3월4일 우리 둘이서 대전에 있던 공군항공병학교에 입대하기위해 대전으로갔지.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났더니 입대 특식이라며 아침상에 날계란 두개가 올라왔지. 나는 예나 지금이나
날계란을 않먹어 자네가 두개 다 먹었지. 입대하고 보니 자네와 내가 1중대 1구대 1내무반에 같이
배속되었지. 그리고 고된 훈련 끝에 1달이 지나고 드디어 특식이 나오는날 날계란이 나왔는데
너무 굶주린 내가 약 먹는셈치고 그냥 눈 딱감고 먹어 버렸지. 저녁후 휴식시간에 자네가 내 곁으로
오더니 한마듸 던젔지 "너 언제부터 계란먹었냐? 두개 먹을려고 네옆으로 부지런히 왔었는데"
세월이 흘러 1970년대초 시카고에서 공부 하던 자네가 내가 장사한답시고 미국 갈때마다 O'Hare공항에
나를 픽업하러 왔었지. 일하며 공부하는 네게 얼마나 힘든일인줄 알면서 모르는듯 신세를 졌었고, 오히려
자네는 비행기표 값이 없어 미국으로 입양가는 고아들 Escort 하는 내가 불쌍해서 눈물을 보였었지.
또 세월이 흘러 2004년인가 자네가 Houston, Texas에서 한인회장 할때 휴스톤에서 두집내외가 만나 회포를 풀었지.
그때는 둘다 고생바가지는 면했을때라 옛날이야기 하면서.
몇년후 자네 내외가 서울에와서 가회동 식당 "가가"에서 동창들 몇카플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 보낸것이 마지막이었네.
잘가시게 정말로 착한 친구. 엇그제 교육부장관 지낸 이명현군이 오랫만에 전화하고 자네 안부를 묻더니,
오늘 받은 소식은 영원한 이별이구먼.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다만 소중한 추억을 남겨준 너에게 감사를 보낸다.
부디 잘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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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태
2020.05.16 04:07
우리가 '살아있다'는 느낌에 관하여 이제야 철이 드는지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는 나는 무신론자이어서 '명복'을 비는 것에 무관심하다. 간단히 말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결론으로, 문상 가는 것도 나 혼자만의 회상에 젖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에 불과하다. 망자의 사진 앞에 엎드려 눈물 글썽이는 나의 마음에는 명복을 빌어서가 아니라 '그와 내가 공유했던 어떤 기억'들이 떠올라 그것으로 눈물이 나오는 것이다. 얼마 전에 굉우가 세상을 떴을 때, 의정부에 가서 '눈물을 머금고' 온 일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3학년 때, 나한테 '야, 너는 점심을 어디서 먹느냐?'고 물어보았던 친구가 굉우 하나뿐이었다. 나야 얼버무렸지만 '서울로 출가 수행중이었던' 나에게 보여준 그 관심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서 문상을 갔고, 눈물을 머금었다. 둘째는 우리의 살아있음에 관하여 '상호작용'처럼 소중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상호작용의 대표적인 행동은 바둑 두기이다. 내가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반응을 보이고, 그 반응에 내가 어떻게 대응해주어야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부모 자식 간에도, 형제간에도, 친구 사이에도 필수요소이다. 그 둘 사이에 어떤 형태로든지 상호작용이 있어야 고운 정이고 미운 정이고 쌓이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감옥살이를 체험하면서 이 상호작용의 차단이 이렇게 위력을 발휘하는지 느끼고 있어서 최근에는 친구한테 안부를 물어도 목소리로 전달하지 문자메세지를 보내지 않는다. 셋째는 필규가 걸레스님에게 보낸 조사에서 그의 용기와 과단성이 빠져서 첨가한다. 필규가 쓴 조사를 동창들에게 소개부터 한다. 아마 문상 가서 비망록에 쓴 것 같다. '스님, 그렇게 갈구하던 자유를 얻으셨군요. 우리 모두 슬픔을 가눌수 없지만 홍진의 모든 번뇌를 떨어버리고 훨훨 날으소서. 중광스님, 정말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2002년 3월 김필규 올림. (괜히 왔다 간다)' 걸레스님은 필규네 집에 연락도 없이 만취하여 왔다가 이부자리와 요에 토해버리고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이 아침에 몰래 뻐져나간 용기있는 사람이다. 이런 패악질을 했어도 필규는 걸레스님의 그림을 사랑했다. 끝으로 좋은 글로 조사를 쓰는 사람들이 자기 혼자 슬퍼하지,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슬퍼하게 하며, 망자 대신 그 글을 읽어주며 '아, 그랬었구나'라고 살아있는 자기들끼리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위의 필규가 쓴 조사를 걸레스님이 읽어볼 이 만무하고, 그 책을 읽는 사람들끼리 '괜히 왔다 간다'의 책 제목이 어쩐지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하다가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는구나를 불러일으키는 영적인 상호작용을 발생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웅길이가 수필집 발간을 의논할 겸 서울에 왔을 때, 하루종일 모시고 다니며 서울대 학림다방, 중국집, 굳이 그때의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해서 그것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서울대를 샅샅이 훑어보고, 경기도(강원도?) 대동강 초계탕에서 다시 별미로 국수를 먹고 다음 날은 그 부인과 식사를 같이하며 빚을 갚은 일이 있다. 계속 필규의 영어실력을 나한테 자랑하였다. 그 앞에서 영어로 까불지 말라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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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선
2020.05.13 01:16
공군 장교로 군대생활을 함께 했던 부고 친구들이 아주 끈끈한 관계였었다는 것이 참 부럽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학보병으로 화천 산골에서 만났던 쫄병 한 사람이 일생의 친구가 된 행운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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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2020.05.13 06:42
몇 년 전에 곽웅길 동문으로부터
그가 쓴 '저지르는 남자, 수습하는 여자'라는 제목의 책을 한 권 받았지요
글중에 '티오의 18번 신라의 달밤'이라는 글이 너무 좋아 우리 홈페이지에 옮겼는데
많은 동문으로터 호평을 받고 감사의 답글을 올린 것이 생각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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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0.05.13 15:12
동창 이태영작품 / 구름속을 날고 있을까
곽웅길 동문 추모의 념을 담아 / 김영교
사촌이 사는 휴스톤에 이모님 뵈러 다니러 갔었다. 이모의 딸 사촌 남편은 고곳에서 마라톤마다 완주한 의사이다. 곽웅길과는 각별한 친분의 친구사이였다. 만나 회포도 풀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었다.
한인회 회장, 보험인으로 교민사회에 많은 도움과 편리 도모, 메인 스트림 주류와 (그곳의 얼리 타이머로 )유창한 영어가 큰 몫 했다. 신참 교민 이민 가정이 정척하는데 일등 공신이었다.
건강 관계로 그가 날씨 좋은 LA로 이사왔다.
책 출판 할 때 나에게 누차 전화로 선험자의 지도를 두 내외가 물어왔다. 책 출판 경험을 나누었다. 책 몇권 낸 선험자로 나를 믿고 문의해 왔을 때 그의 겸손을 보았기에 오히려 부끄러웠다. 서울대학 졸업생 미국 대학원 유학생 치고 겸손했다. 아는 범위안에서 도움이 되고자 동생같은 미시스 곽과 셋이 머리를 맞대고 표지며 페이지 숫자 등 교정에 의견을 주고 받으며 열을 올리기도 했다. 중앙일보 오렌지 지방국에 곽웅길님을 소개 하기도 했다.
2년전 동창회 한줄기회 참석 11회는 곽동문과 나 밖에 없었다. 한줄기회 이완규회장이 남편의 친구라 참석한 자리였다.
곽웅길 동문은 웃으며 그 시원한 목소리와 몸 흔들며 얼굴 전체를 미소로 가득 채우고 모인 동창들과 나를 행복한 놀람으로 몰고간 그 추억을 난 결코 잊을수가 없다.
'베사메 무쵸' 유창한 원어로 불러 상도 타고 모두 기분이 업업된 날이었다. 이제 그 노래들으면 오버랩될 곽동문의 모습이 내 뇌리에 박혀있다.
그가 책을 출판한 후 크게 소개된바 있다. 책도 잘 나왔고 내용이 첫째 좋았고 간단했고 경험담이라
설득력 있는 미국 정착 안내서나 길잡이 같아 호응이 좋았다. 저서를 통해 내가 그를 조금더 알게 되었다. 용단을 잘 내렸다며 내외가 서로 칭찬해댔다. 출판 안했드라면 지금쯤 후회할수도 있겠지 싶다. 의지의 곽동문이 마음 먹은 바를 글로 쓰는 숙원 기회를 잘 잡았던 것이다.
와병소식을 접하고 찾아간 동문은 정굉호동창 뿐이었다. 곽영화가 부음을 전해주었고 이어서 정굉호 동창도 연락을 해주었다. 다행히 병문안 한 11회 대표 정굉호 동창 수고를 높이 산다. 11회 동기등 모임 이곳에서 한다한다 하면서 서로 병치례하는라 미루어 지고 또 미루어 오늘이 되고 말았다. 살아 못 만난 것이 못내 가슴에 사무친다.
이초영이 리더쉽이 아쉽다. 남편 24시간 시중에 행동이 자유롭지못했다. 동기들 모이자 벼르기만, 병문안 한번 못한게 마음 아리다. 남여 11회 한번 모이자 모이자 하면서 세월은 흘러 흘러 서로 장거리 운전이 여의치 못하게 된 나이가 되었다. 그를 병문안 못한 게 가슴에 회환으로 남는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 거리두기 난세에 그가 떠났다. 10명으로 국한된 장례인 숫자을 영상으로 대치하는 장례영상일까. 두손 모은다. 참석못하는 6 피트가 대두. 장례식도 소규모, 교회에서 단촐한 고별예배라니.... 안타깝고 슬프다.
고통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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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영
2020.05.14 05:22
2019년 곽동문의 와병소식을 듣고 한번도 병문안을 못가서 죄송한 마음.
이렇게 훌쩍 가실줄 몰랐지요.
언제나 그 특유의 활짝 웃는 얼굴로 우리 여동들과 잘 어울리던 그의 친숙함을 오래 기억 할것입니다.
LA에 흩어져 사는 동창들이 이제는 하이웨이 운전이 힘들어서 한번에 다 만나기는 힘드니까, 우리
남가주 Orange County에 사는 동문들 만이라도 자주 만나자고 하면서 2018년 여름에 웅길씨, 굉호씨
명렬, 우리 4 가족이 냉면집에서 만낫지요. “ OC 11 동문회” (Orange County 11 회) 라고 웅길씨가
회장 하시고 오늘이 1차 모임이라고,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약속했지요. 그때가 2년 전,
두번째 만남은 갖지도 못하고 이렇게 떠나 가시나요.
LA에서 11회 모임이 있으면 정굉호님 차에 같이 타고 드라이브 가는 길에 부고시절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먼길을 달리곤 햇지요. 그러다가 웅길씨도 굉호씨와 내가 사는 곳으로 이사 오시려든 계획도 하셧는데
먼저 가십니까.
나는 이곳에 이사올때 까자는 웅길씨와 같은 미주 동문으로서도 한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2013년 11월에
이사온후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에 웅길씨가 크리쓰마쓰 카드를 보내왔어요. 생전 처음 남동창에게서 받은 카드,
초영씨가 타지에서 첫 크리쓰마쓰를 맞는 느낌을 이해한다는 문구와 자기도 Texas에서 2년전에 이사 왔다면서
살다보면 적응이 된다는 따뜻한 문구에 학교시절 얼굴 한번 대면한적이 없는 남동이지만 마음이 다감한 남동이구나
생각했지요.
그후로 Dr. Cho와 승자 부부가 겨울에 올때 웅길씨 부인과도 만나고 남가주 가까운곳의 동창가족이 되었어요.
근래에 한사람씩 떠나가는 11회 동창들 소식에 우울해 지고 특히 가까운 곳에 웅길씨가. 갑자기 가시니, 코로나 사태로
조문도 못하고 너무나 슬픕니다.
웅길씨, 고통없는 그 곳에서 영면 하십시오.
사랑하는 부군을 보내는 부인과 유가족에게 하느님의 가호가 항상 같이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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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영
2020.05.14 05:58
내 컴퓨터를 지금 쓸수가 없어 아이 패드로 올렸습니다.
곽웅길씨와 같이 찍은 사진들, 특히 그의 책출판회 모임에 LA
11회 동창들이 모두 모인 사진, 축하꽃다발 사진들이 컴퓨터 folder에
있어서 웅길씨 추모글에 올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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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궁길의 부음을 접하고 멍하니 비 바람부는 언덕을 처다보니 멀고먼 옛날 1957년 8월 여름이 아른거린다.우리 부고 산악반 친구들 8명 (곽웅길, 김주영, 김태형, 박일선, 박형균, 안태영, 유성삼, 이원택, 가나다 순 ) 은 15일간 한국 산악회에서 주관하는 제주도 한라산 종주 등반 겸 해군 LST 함에 승선하여 해양훈련을 했다. 뱃 멀미도 지독 했고, 한라산 등정에는 태풍을 만나 배낭은 물론 온 몸이 흠뻑 젔어 불어터진 쌀로 죽같은 밥을 먹고, 야영장 옆 캠프 fire에 옷을 말렸다.
이번 여름에 LA에 가면 여러동창을 만날려고 예정을 했지만 날벼락 같은 "우환 코로나" 로 꿈은 사리지고. 그사이 또 친구하나 보내는구려.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