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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과 텔레비데오

2021.03.13 13:25

박일선 조회 수:135

쿠팡이 며칠 전에 뉴욕증시에 한 주에 $35에 상장했는데 오늘 주가가 약 $48이랍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우선 대박을 터트린 것이 분명합니다. 현재 쿠팡의 시가 총액은 90조 원을 넘어서 시가 총액으로  한국 3위 기업이랍니다. 이마트나 현대중공업의 거의 20배 수준입니다. 정말 꿈같은 얘기로 들립니다. 
 
제가 1979년부터 1986년까지 미국에서 일했던 회사 텔레비데오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텔레비데오도 1983년 주식을 상장할 때 지금 쿠팡과 사정이 비슷했었습니다. 전혀 무명의 회사가 나스닥 증시에 한 주에 $18에 상장했는데 언제 상장했었는지는 몰라도 포드 자동차의 주식 상장 이후로 최대였답니다.
 
텔레비데오는 저의 유타 주립대 동창이지만 4세 위인 황규빈이 세운 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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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저고 가운데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황규빈입니다. 그리고 황규빈 앞이 황규빈의 부인인데 역시 영양학 석사 공부를 하는 유학생이었습니다.
 
1968년 6월 황규빈은 전자공학 학사로 졸업하고 포드자동차에 취직이 되어 디트로이트로 떠나고 (그곳 주립대학에서 전자공학 석사 취득) 같은 해에 저는 오레곤 주립대로 통계학 석사 공부를 하러 떠났습니다. 유타 주립대에서 2년 반을 함께 보냈지만 황규빈 부부는 공부만 하고 다른 한국 유학생들과는 거의 어울리지 않아서 저는 한두 번 본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헤어진 지 10여 년이 지난 1978년에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가 실리콘밸리 도시 산호세에 텔레비데오라는 전자회사를 차렸다며 LA에서 열리는 컴퓨터 컨벤션 참가 차 LA에 가니 만나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LA에 있는 당시 미국에서 제일 큰 소프트웨어 회사 CSC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CSC는 삼성 SDS 같은 회사였는데 저는 10년 차였습니다.
 
황규빈은 LA 교외 어바인에 있는 저의 집에 머물면서 디즈니랜드가 있는 도시 애나하임에서 열리고 있던 컴퓨터 컨벤션에 참석하면서 일주일 간 저와 함께 행동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일주일 휴가를 내고 그의 비서 겸 기사 노릇을 했습니다. 황규빈은 우리 집에서 먹고 잤지요. 그는 그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컴퓨터 컨벤션은 4일 간 계속되었던 것 같은데 매일 함께 나가서 텔레비데오에서 막 개발한 스마트터미널 제품 선전을 했습니다. 제대로 하자면 코딱지만 한 부스라도 차려놓고 제품을 보이면서 해야 하는데 아직 전시할 제품 모델조차 없었고 부스를 차릴 돈도 없어서 미완성 제품의 사진이 나온 전단지를 뿌리고 다니면서 흥미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제품 설명을 하는 것이었지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 제품은 1, 2년 후에는 세계 시장의 80%를 석권하게 될 혁신적인 제품이었습니다. 그 제품 때문에 그때까지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던 미국 회사들 여럿이 그들의 제품을 단절 시킬 정도였으니까요.
 
황규빈은 LA를 떠나면서 자기가 곧 마이크로컴퓨터 사업도 시작 할 계획인데 그때 자기 회사에 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애플컴퓨터를 비롯한 인텔에서 막 나오기 시작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한 소위 마이크로컴퓨터들이 막 등장할 때였고 IBM PC가 등장하기 한참 전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CSC 회사에서 일하면서 지쳐갈 때였고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였습니다. 당시 한국을 오가면서 사업을 시작하고 있던 황규빈과 함께 일하면 그런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함께 일하자는 말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당시 황규빈은 제품 생산의 일부를 삼성전자와 동양정밀에서 하기로 말이 되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황규빈이 돌아간 후에 한동안 무소식이었습니다. 저의 실망은 컸습니다. 그러다가 황규빈의 일이 거의 잊힐 때쯤인 1979년 6월경에 소식이 왔습니다. 당장 올라와 줄 수 없느냐고. 저는 부랴부랴 어바인 집을 팔고 7월에 산호세로 이사해서 우선 아파트에 들었습니다. 애들이 8세, 6세, 그리고 막내가 백일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텔레비데오 일곱 번째 직원이 되었습니다. 집을 팔고 대회사에서 코딱지 만한 회사로 왔는데 월급을 별로 올려주지 않아서 좀 실망했었습니다.
 
얼마 후에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누어 주는데 제 몫은 2만 주였습니다. 회사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숫자라는데 주식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저는 월급이나 올려주지 종잇조각 같이 생각되는 주식은 왜 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실리콘밸리에 주식 붐이 벌어지기 전이었습니다. 어쩌면 벌어졌는데 저만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텔레비데오를 통해서 한국에 나가서 일할 기회를 얻는 것에나 흥미가 있었고 주식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습니다.  
 
1979년, 80년, 81년, 82년, 회사는 불같이 커졌습니다. 직원도 불고 거의 매년 더 큰 건물로 이사했습니다. 타임 잡지에 "American Success Story"하고 큰 기사가 실리고 하버드대학 MBA들이 직원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실리콘밸리 한국 사람들 사이엔 텔레비데오 2인자로 알려졌습니다. 황규빈이 저를 직원이 아니고 파트너로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황규빈은 제가 대학 동창이고 저에게 내색은 안했지만 멀리에서 집을 팔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창업회사로 와준 것이 고마웠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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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가운데가 황규빈이고 그 오른 쪽이 접니다. 한국인 생산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인데 앞줄에는 여직원들이네요.  
 
그렇게 1983년에 주당 $18에 주식 상장을 했는데 상장 직전에 주를 쪼개서 한 주가 6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소유주가 2만 주에서 12만 주가 되었죠. 그때까지도 대박이라는 실감이 안 났었습니다. 황규빈 부인이 (황규빈 부인도 저와는 유학 동기이니 친구도 되는 셈이죠) 제에게 "미스터 박은 고생도 안하고 밀리어네어가 되었네요?" 하는 소리에도 실감이 안 났고 약간 불쾌하게 들리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황규빈 부부는 회사만 다녀도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창업 길에 들어서면서 고생을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저야 사실 회사를 옮기고 이사를 한 것 밖에 없었으니 황규빈 부인이 그런 말을 충분히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사이라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냥 직원한테는 쉽게 할 수 없는 말입니다. 
 
회사가 계속 불같이 잘 되어서 1년 후에는 주가가 $45까지 올라갔습니다. 저의 12만 주의 가치가 5백만 불이 넘게 되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지금 2백만 불짜리 단독주택이 당시에 약 25만 불이었으니 5백만 불은 큰돈이었습니다. 황규빈은 아무리 찾아도 투자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영어도 시원치 않은 엔지니어인 그는 쿠팡 창업자 같이 투자자들을 끌어드리는 재주가 없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장 당시에 회 사의 90% 정도를 소유하게 되었는데 주식 상장으로 단숨에 빌리어니어 대열에 올랐습니다. 당시에는 세계에 빌리어니어가 10여 명 정도 밖에 없었을 때였던 것 같으니 그때 빌리어니어는 지금의 빌리어니어보다는 한 급 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재주를 가져서 많은 펀드 투자를 받아서 회사의 지분이 10% 정도로 내려간 쿠팡 창업자와는 많은 대조가 되는 부분입니다.  
 
당시 텔레비데오는 참 잘 나갔습니다. 사업을 스마트터미널에서 마이크로컴퓨터와 프린트까지 확장했습니다. 당시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조그만 마이크로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에 불과했습니다. 그때는 마이크로컴퓨터를 팔 때 마이크로컴퓨터 용 소프트웨어 몇 개를 끼어 팔 때였습니다. 하루는 빌 게이츠가 Mbasic이란 자기네 소프트웨어를 저의 회사에 팔아보려고 저의 회사를 찾아왔습니다. 황규빈은 소프트웨어를 맡고 있던 저에게 빌 게이츠를 인계하고 저는 빌 게이츠와 회의를 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Mbasic이 얼마나 좋은 제품인가를 저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때 빌 게이츠가 너무 꾀죄죄하게 보인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업이나 마케팅을 하는 직원들은 잘 차려입고 다니지만 엔지니어 직원들은 적당히 입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빌 게이츠는 엔지니어 쪽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의 회사는 Mbasic의 경쟁제품인 Cbasic를 택하게 되었지만 그때 저는 "갑"이고 빌 게이츠는 "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불가사의한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받은 주는 맘대로 팔 수 없는 주였는데 상장 때만은 일부 팔 수 있다고 해서 2만 주를 주당 $18에 팔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받은 36만 불짜리 수표를 집사람이 거래하는 동네 조그만 은행에 예금하러 갔는데 직원이 처음에는 $3,600 정도로 생각했다가 그게 아닌 것을 인식한 다음에는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지더니 지점장에게 달려가고 지점이 야단이 났었다고 하는 얘기를 퇴근한 다음에 들었습니다. 조그만 동양인 여자가 겁도 없이 집 한 채 값이 넘는 액수의 수표를 들고 들어왔으니 VIP가 아니고 VVVIP 정도 되는 셈이었지요. 지점장 말이 이렇게 큰 액수의 수표를 예금하는 것은 자기네 지점에 처음 생긴 일이었다고 했답니다.
 
그러나 그 후로는 점점 회사 일에 흥미를 잃게 되었고 앞으로 생활 걱정은 없을 것 같아서 1986년에 텔레비데오를 떠나고 유타 주로 돌아와서 유타 대학교에서 컴퓨터 박사 공부를 마치고 (당시 만 45세) 대학교수로서의 제 2의 인생을 계획했으나 텔레비데오 주가 $5, 나중에는 $1 이하로 내려가게 되고는 저는 대학교수의 꿈을 접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게 되고 2001년에는 9.11 사태를 맞아 은퇴를 하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한 일이지만 그때는 주식에 너무 무지해서 주식은 물가처럼 시간이 지나가면 항상 올라가는 것으로 인식해서 들어온 부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후회는 없습니다. 교수는 못되었지만 대신 소싯적 꿈이었던 여행가는 되었으니까요.
 
쿠팡은 텔레비데오와는 달리 계속 잘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빌겠습니다. 그리고 한국 젊은이들이 쿠팡 같이 혁신적인 회사를 많이 만들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여름에는 산호세에 가서 오랜만에 황규빈 형을 만나보고 옛날 얘기나 나눠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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