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구의 일생 (옮긴이 정종률)
2017.04.20 11:39
한병구 선생님의 셋째아들 (미국 육군사관학교 West point 를 졸업하고 장교로 근무했던) 영기가 2016년 11월 29일 영결식에서 낭독했던 조사 (Dad's Remembrance)를 한글로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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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신 와중에도 저희 아버님을 추모하기 위해 시간을 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뉴욕에서 오신 주박사님, 저의 외삼촌과 외숙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아버님은 좋은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셨고, 스승이었고 저의 영웅이셨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1930년에 한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한국은 남북 분단이 되지 않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매우 똑똑하셨고, 운동도 잘하셨습니다. 때때로 아버님은 달리기나 스케이팅 같은 스포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나중에 오하이오 집 앞 차도에서 스케이트를 타셨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아버지는 16세 형님은 20세 때 그의 아버지를 여의셨습니다. 아버지와 형님 단 둘만이 남겨졌지만 교육은 항상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매우 똑똑하셨습니다. 한국에서 매우 권위있는 공립학교인 경기 고등학교에 입학하셨었고, 김일성 대학에 입학했지만, 졸업하기 전 한국 전쟁이 발발해 징병되셨습니다. 아버님이 소속되었던 부대는 거의 전멸되었고 아버지 앞뒤의 군인들은 인천 상륙작전 때 오류동 부근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버님은 전쟁과 그로인해 생긴 기근에서도 살아남는 행운을 얻으셨습니다.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긴 여정동안 그의 위는 기근으로 인해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6·25 전쟁은 악화됐고, 아버님과 어머님의 가족들은 남쪽으로 이주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 두 분 모두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상실감을 잊을 수 없으셨습니다.
우리 아버님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뛰어난 분이셨습니다. 아버님은 젊은 간호사를 만나 2년 간 구애를 하셨고, 사랑에 빠져 1963년 11월 30일에 결혼하셨습니다. 내일은 우리 부모님의 53번째 결혼기념일입니다. 결혼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1964년 11월 26일에 Henry가 태어났고, 곧이어 1966년 7월 21일 둘째 아들인 Karl이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Karl이 당신의 아버지인 한택주를 닮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셋째 아이로 딸이 태어나길 원했으나 제가 태어났고, 그래서 사진 속의 저는 여자아이처럼 꽃무늬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지금보면 웃음짓지만, 여러분께서 4.5세였다면 그렇게 즐겁진 않았을겁니다.
한국에는 병역의무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께서는 또다른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미국으로 가자고 아버지를 설득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간호사와 의사에게 부여되던 취업 허가증을 받아 먼저 미국으로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다시 만나기 위해 1973년에 모든 재산과 3명의 어린 아들들을 데리고 떠나 NC의 Valdese라는 300명의 인구가 모여 사는 마을에서 어머니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셨습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1962년에 Cornell 대학교에서 유학하셨던지라 영어를 조금 할 줄 아셨지요.
수년이 흐른 후, 우리는 Charlotte NC와 테네시주 Johnson City로 이사하였고, 1980년 Ohio주의 Dayton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Sinclair Community College와 Wright State University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25년 동안 Dayton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고, 일생 중 40년이 넘는 시간을 교육에 전념하셨습니다. 2004년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은퇴하셨고, 따뜻한 날씨 속에서 손주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으셨기에 따뜻한 Atlanta로 집을 옮기셨습니다. 아버지는 파트타임으로 계속 강의 하시는 것을 고려하셨으나, 여행을 하며 다른 곳을 둘러보고 바다도 조망하며 간의의자에 앉아 맥주 한 병과 함께 삶을 돌아보는 것도 행복해하셨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멋진 아일랜드 사람들이었던 Jeanette과 MacCauley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즐기셨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몇몇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가 아일랜드계 혼혈인이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 아버님은 술 드시는 것을 좋아하셨거든요. 아버님은 가장 어린 손자인 Daniel을 훈련시켜, 말하지 않아도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오거나 비어있는 맥주를 채워넣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물론, Daniel은 할머니 몰래 살금살금 지나가야 했지요.
우리 아버님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셨고, 가족을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평화주의자셨고 모든 사람들보다 현명해보이셨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Jeanette와 손주들(Justin, Alisia, Kelsey, Daniel)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버님께서 차가운 Budweiser 맥주를 드시면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음을 압니다. 아버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당신의 삶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아버님을 사랑합니다.
2016년 11월 29일
한병구 셋째 아들 한영기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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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란
2017.04.2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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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자
2017.04.20 19:55
한병구선생님은 우리 부부 둘이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셨습니다.
수업 끝 5분쯤 남으면 영화얘기 해달라고 조르던 때,
조마 조마한 마음으로 다음 연속을 기다리던 학창시절을 회고합니다.
Dayton에 사실 때 상냥하신 사모님께서 손수 구운 과자를 싸주셨던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아드님 결혼식에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뵙고 축하드렸던 젊은 시절이 기억납니다.
이지적이시면서도 로맨틱한 한병구 선생님, 평안히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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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경
2017.04.21 23:26
한병구선생님과 사모님! 다시 뵙듯 반갑습니다.
수업중에 우리는 선생님의 영화얘기를 졸라대며, 기대하며, 재밌게가슴졸이며 숨을 모으곤하였지요.
아버님 회상하신 아드님이 바로 이날 관람한 영화제목, <The Borne Ultimatum> 알려주셨을가? 생각되는군요.존경하옵는 한병구 수학선생님, 평안히 쉬시옵소서!
이제 사진을 찾았습니다. 영화 보던날 식당앞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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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영
2017.04.22 05:58
세월과 함께 한분 한분 떠나갑니다.
수학시간에 한병구 선생님이 가르치실때는 다 이해할것 같은데
숙제나 문제를 집에서 혼자 하려면 어찌 그렇게 어렵든지요.
문과반 이과반 나눠서 할때에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약학과를 가려고
이과반에 들어가서 몇달 하다가 너무 힘들고 재미가 없어서 미분, 적분
배운다고 할때 주저하지 않고 문과로 옮겼지요.
지금 생각하니 한번해서 모르면 두번 해보고 꾸준히, 열심히 노력했으면 그래도 할수도 있었을텐데
그저 철철이 사진 찍으며 놀러 다니는것이 좋아서 ( 그 시절에 우리 아버지 친구자제들이 서울고,
용산고등학교 보결로 들어 갔는데 나는 명문 부고에 철썩 붙었다고 기뻐하시며 카메라를 사주셨어요.)
수학책은 덮고 달달 외우는것이 좋아서 부모님 소원을 풀어 드리지 못하고 큰실망을 안겨 드린 불효장녀,
미국으로 훌렁 건너 온것이 51년전입니다.
그래도 훌륭하신 수학선생님께 배운 실력(?)이 근본이 되고 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니
선생님 감사합니다. 영면 하소서.
사진밑에 1958 4.25 대구역이라고 써있읍니다.
경주수학여행 갈때 대구역에서 잠간 정차했지요
59년 전 ..... 아! 옛 날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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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2017.04.23 22:52
10여년전 친구들과 한병구 선생님 내외분을 모신적이 있었죠.
학교 다닐때는 무섭기만 했었는데.. 아니고 사모님은 조용하고
인자하신 분이셨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담을 나누면서 시공을 초월해서, 사제지간
이란 이런것이구나를 진하게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금슬좋게 사시다 먼저 떠나신 선생님을 생각하며, 사모님 부디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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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도 좋아했지만 한선생님의 영화 이야기에 홀려서 늘 기다려지던 선생님 시간이었지요.
잘 성장한 아드님들을 두시고 두분이 해로하신 성공한 삶을 사셨네요.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