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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벽같은 아내...

2020.10.11 16:05

엄창섭 조회 수:143

 
 

철벽같은 아내…
남편은 그렇게 팔순 老母 집으로 들어갔다

 

[홍여사의 별별다방]
 

홍여사

일러스트/ 안병현

배우자를 맞아들일 때 우리는
동고동락(同苦同樂)’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당장 그 네 글자 안에서도 남편과 아내 생각은 엇갈립니다.
남편이 ‘동고’를 마음에 새길 때, 아내는 ‘동락’을 기대합니다.
깨어진 기쁨과 외면당한 고통.
부부는 각자의 꿈에 갇힌 채 오늘 밤도 한 이불을 덮습니다. 홍여사

집마다 노인들이 걱정인 요즘입니다.
저희 부부 역시 자식들의 걱정을 듣고 있는 노년이지만,
저희는 또 혼자 계시는 아흔 살의 장모님이 걱정입니다.
근래에 부쩍 기력도 달리시고, 인지 능력도 떨어지셔서
더 이상은 혼자 지내시게 둘 수 없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6남매 중 누구든 장모님을 모셔야 할 상황.
이럴 때, 형제 많은 집은 사정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도 않더군요. 손 들고 나서는 사람은 없고
자식들은 어머니를 다른 형제 집으로 떠밀기 바쁩니다.
혼자 사는 큰언니 집으로 가시면 어떨까,
엄마와 마음이 잘 맞는 막냇동생 집이 낫겠다,
아니다, 그래도 역시 아들 집으로 가셔야지….

그때마다 장모님은 고개를 저으셨지요.
알고 보니, 장모님께는 만만한 자식 집이 따로 있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딸들에게 말씀하신답니다.
다른 집은 싫으시고, 둘째 딸네 집 같으면 가시겠다고요.
그 얘기를, 둘째 사위인 저는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장모님이 꼭 집어 그렇게 말씀하신다는데 가만있을 수가 있나요?
그러나 아내는 제게 딱 잘라 말하더군요.
자기 선에서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모르는 척하라고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수년 전 일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그 당시 여든다섯이셨던 제 어머니가 바로 지금 장모님 상황이셨죠.
원인 불명의 어지럼증과 갑작스러운 체중 저하,
그리고 치매의 시작인가 싶은 건망증으로 더 이상은
일상생활을 혼자 꾸려갈 수가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장모님과 달랐다면, 기댈 자식이라고는 저 하나뿐이었다는 점이지요.
어쩔 수 없이 저는 아내에게 차마 하기 어려운 말을 꺼냈습니다.
어머니를 당분간 우리 집에서 모시자고요.
나중에 어머니가 완전히 정신을 놓으시고, 식사와 수면 같은
기본 생활마저 무너지시면 그때는 요양 시설에 의뢰할 테니,
그 전 몇 년간만 나와 같이 애써 달라고요.
그러나 아내는 끝내 난색을 보이더군요.
자기는 애초에 그런 그릇이 못 되기에 자신이 없다고요.
저는 처음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고,
우린 해낼 수 있다고 아내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내가 당신보다 더 많이 움직이고,
철저히 당신 처지에 설 테니, 한번 용기를 내보자고요.
그러나 아내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곧 깨달았지요.
그릇이 못 된다는 말은,
굳이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고,
시어머니를 서둘러 시설로 보내고도 마음의 불편함을 별로 느끼지 않는,
더욱 단단하고 편리한 그릇이라는 뜻일 수도 있음을….
저는 부질없는 바람을 접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내 선에서 해결할 테니 당신은 모르는 척하라고요.
그러고 곧 간단한 가방을 꾸려 어머니 집으로 들어갔지요.
제 결정에 아내는 별말이 없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셀프 효도’를 실천하는 걸로
우리는 타협을 보았던 겁니다.
저는 어머니를 위해 밥상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습니다.
퇴직 이후 텅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고민하던 참인데,
뜻밖에도 그 시간은 어머니와 지내는 일상으로 채워졌습니다.
겪어보니 청소는 체질에 맞았고, 빨래도 그럭저럭 흉내는 내겠는데,
먹을 만한 밥상을 차려내는 일은 그야말로 내 능력 밖인 것 같더군요.
그러나 그조차도 차츰 몸에 익어갔습니다.
밥하고 빨래하는 아들을 쳐다보며
어머니는 내가 할 테니 놔두라고 말리셨지만,
네가 왜 네 집 두고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느냐는 질문은 안 하시더군요.
다 아시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시는 건지 점점 말갛게 비어가는
눈빛으로 어머니는 제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2년을 둘이 지냈고,
그 뒤 요양 병원에 잠시 계시다가 어머니는 먼 길을 떠나셨지요.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저에게 더없이 소중했습니다.
밥하고 빨래하며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뜻밖에 제게 잘 맞는 일이었음을 알았고,
어머니와 마지막 추억도 쌓았으니까요. 그리고 만일
그 2년 세월이 없었더라면 지금 제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겁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 대신 웃음이 나고,
아직 어머니가 곁에 있는 듯 따뜻하게 느낍니다.

저는 아내에게도 그런 시간을 권하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곁에서 함께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내는 처가 식구들에게 저를 핑계로 대는 모양인데,
그러지 말고 장모님을 모시고 오면 어떨까 싶습니다.
엄마는 왜 하필 우리 집에 오고 싶어 하느냐고 아내는 투덜거리지만,
저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여섯 남매 중, 장모님이 실제로 같이 살아본 자식은 우리뿐입니다.
아내가 예전에 가게를 해보겠다고 나섰을 때
장모님이 오셔서 3년간 애들을 봐주셨지요.
그 때문인지, 손주들 중에서도 우리 큰아들을 가장 귀해하십니다.
그러니 정신이 온전치 않으신 가운데서도
둘째네 집에 가고 싶다 소리가 나올밖에요.

나도 도울 테니,
장모님을 우리 집에 와 계시게 해보자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시어머니를 못 모셨으니
친정 엄마도 안 된다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말라고요.
그런데 아내는 제 말이 무색하도록 딱 잘라 끊습니다.
자기는 그러기 싫답니다. 몸이 힘들어서도 싫고,
엄마와 마음이 안 맞아서도 싫답니다.
누군들 편하고 좋아서 부모를 모시겠느냐고 한마디 더했더니
아내는 뜻밖에도 조롱과 비난을 저에게 퍼붓습니다.

“왜? 당신 같은 사람 있잖아.

진정 즐겁고 기쁨에 겨워서 부모를 모시는.”
 "?"

 

"말 나온 김에 얘기 좀 할게.
사람이 결혼했으면 배우자와 자식이 우선이어야지,
어째서 부모님이 아직도 세상의 중심이야?
상의도 없이 당신이 짐 싸서 어머니한테 가버렸을 때
내 입장이나 심정 생각해봤어? 도대체 당신한테 결혼은 뭐고 나는 뭐야?”
저는 아내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의 뜻을 존중했기에 내가 짐을 싸서 어머니에게 갔던 것이고,
그 전에 충분히 대화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모든 안을 거부했던 건 아내였지요.
배우자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은 건 제가 아니라 아내입니다.
그나마 저의 결정은 늙으신 어머니를 위한 궁여지책이었다면,
아내의 ‘나 몰라라’는 오로지 자신을 위한 것 아니었나요?
심지어 지금 저는 내 어머니가 아닌
장모님을 위한 최선을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내에게 이런 가차 없는 비난을 받아야 하나요?

“당신 문제는, 평생 나만 나쁜 사람 만든다는 거야.
사람은 다 달라. 당신 같은 사람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어.
훨씬 더 많아. 나는 내 엄마든 당신 엄마든 그 누구든
우리의 가정에 들이고 싶지는 않아.
내가 가정을 팽개치고 엄마에게 가는 짓은 생각도 할 수 없고.
방법은 궁리해보면 많아.”

아내는 진심으로 상처 받고 화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에 미안한 생각이 일어야 대화가 될 텐데,
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 속에 눌려 있던 분노와 상처도 감응하듯 열을 내며 꿈틀거리더군요.
내가 어머니 때문에 아파하고 잠 못 이룰 때 외면하던 아내.
나라면 차마 그럴 수 있었을까?
그래 놓고 지금 내가 가정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고 말하다니….

결혼 생활 40년을 넘긴 인제 와서 저는 묻습니다.
부부가 지켜가야 할 소중한 가정이란 무엇일까요?
둘만의 시간과 공간인가요? 아니면 평생에 걸친 희생과 연민인가요?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하나의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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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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