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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깃든 靑山에 한 걸음 들어서니 나도 ‘녀던길’ 따라가네

 

[Travel 아트로드]경북 안동        

글 사진 전승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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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선생이 청량산을 가던 낙동강 변의 '예던길'

 

《조선의 성리학자였던 퇴계 이황(1501∼1570)은 ‘물러남’의 미학을 추구했다. 평생 140차례 벼슬이 주어졌지만 사직상소를 올리고 나아가지 않은 것이 79차례였고, 나아간 61차례마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의 호인 ‘퇴계(退溪)’는 시냇가로 물러난다는 뜻이다. 그는 고향인 경북 안동에 도산서당을 짓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닦고, 제자를 길러내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善人多) 세상’을 만드는 것을 평생 꿈꿨다. 이러한 퇴계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고 있는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서 2박 3일간 숙박하며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76)과함께 따뜻한 사람 향기로 가득 찬 퇴계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걸었다.》

 

 

○ 퇴계의 ‘예던길’ 따라 그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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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제자인 성재 금란수가 지은 정자인 '고산정' 주변 풍경

 

퇴계는 도산서원에서 15km가량 떨어진 청량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스스로 ‘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 칭할 정도였다. 15세 때 숙부와 처음 오른 것으로 시작해 모두 6차례 청량산을 찾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퇴계가 마지막으로 청량산에 오른 것은 63세 되던 1564년. 새벽부터 밥을 먹고 출발한 퇴계는 현재의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마을인 천사(川沙)에 도착했다. 안개 낀 산봉우리에 물결은 출렁이고, 새벽하늘은 곧 동이 트려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인 벽오 이문량(1498∼1581)이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때 퇴계는 나귀를 몰고 출발하면서 유명한 시를 남긴다. ‘나 먼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先入畵圖中)!’

‘예던길’은 퇴계가 청량산에 가던 낙동강변 4∼5km 구간의 길이다. 은빛 물결 주변에 펼쳐지는 학소대, 농암종택, 고산정의 수려한 풍경은 퇴계의 ‘그림 속(畵圖中)’이란 표현처럼 한 폭의 동양화를 방불케 한다. ‘산(山)태극, 수(水)태극’이란 말처럼 산이 굽이치는 형세에 따라 물도 S자로 굽이친다. 단천교 앞에는 ‘녀던길’이 새겨진 돌이 있다. 퇴계가 지은 시조 ‘도산십이곡’에 나오는 ‘녀던길’은 옛 성현이 가던 길이라는 뜻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칸트, 괴테, 헤겔이 걸으며 사색하던 ‘철학자의 길’에 비견되는 이 길은 조선의 선비들이 거닐며 사색하던 인문학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예던길을 걷다 보면 강 한가운데에 서 있는 바위를 만난다. 퇴계가 ‘경암(景巖)’이란 시로 읊은 바위다. 그는 거센 물결 속에서도 천년 동안 변함없는 바위를 보며, 시류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들의 ‘부평초’ 같은 인생을 성찰한다.

 

 

○새벽에 걷는 퇴계 명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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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가 직접 설계한 '도산서당'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의 아침은 오전 5시 반 ‘퇴계명상길’ 산책으로 시작한다. 퇴계 선생의 집이 있던 한서암에서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도산서원까지 오가는 1.5km 남짓한 산길이다. 이슬을 머금은 새벽 공기가 감도는 초록빛 세상에는 새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퇴계의 ‘도산십이곡’을 낮게 읊조리며 걷다 보니 도산서원에 도착했다. 2019년 도산서원을 포함한 9개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다른 서원들이 대부분 학자의 사후에 지어진 것과 달리, 이곳엔 퇴계가 직접 설계해 짓고 10여 년간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도산서당은 방 한 칸, 부엌 한 칸, 마루 한 칸의 소박한 건물이다. 담장은 곳곳이 뚫려 있고, 나무를 엉성하게 얽은 사립문이 손님을 맞는다. 현판은 퇴계가 직접 썼다. 세로로 기둥에 달린 현판 글씨가 무척 작고, 유머러스하다. ‘산(山)’ 자는 뾰족뾰족한 그림으로 표현됐고, ‘서(書)’ 자에는 새가 그려져 있다. 이곳에서 60대의 퇴계 선생은 아무리 어린 제자라도 사립문 밖까지 나와 배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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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명물인 헛제사밥 한상 차림


군자는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말처럼 도산서당 앞에는 낙동강 물과 수려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1000원권 지폐 뒤쪽에 새겨진 겸재 정선의 그림에 나오는 선경이다. 이곳에는 퇴계가 사색하던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가 있다. 날씨가 좋을 때면 하늘, 빛, 구름의 그림자가 강물에 비쳐 배회하며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는 곳이다. 김병일 원장은 “물이 맑고 깨끗할 때는 천, 광, 운이 물속에 잘 비치지만, 바람이 불거나 먹구름이 가리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사람도 나쁜 마음, 사악한 생각을 하면 착한 본성이 가려지기 때문에, 마음을 닦아 착한 본성이 드러나게 하는 선비의 마음 수양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후손에게 전해진 퇴계의 인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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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16대종손 이근필 옹이 무릎 꿇고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퇴계가 대학자를 넘어 성현(聖賢)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남녀, 신분 차별을 넘어서 모든 생명과 인간에 대한 존중을 실천한 삶 때문이다. 퇴계 종택과 태실, 묘소 등을 찾다보면 엄하기만 할 줄 알았던 퇴계의 인간미를 느끼게 된다.

퇴계의 묘소 밑에는 맏며느리의 무덤이 있다.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퇴계는 한양에서 벼슬살이할 때도 며느리가 버선, 옷을 지어서 보내면 반드시 편지와 함께 참빗, 바늘 등을 답례품으로 보냈다고 한다. 또한 평소 병약했던 맏며느리를 위해 약재를 손수 지어 보내기도 했다. 이렇듯 다정다감했던 시아버지 밑에 자신을 꼭 묻어달라고 며느리가 유언을 했다고 한다.
한번은 서울에 살던 맏손자 며느리가 젖이 부족해 돌이 갓 지난 증손자가 시름시름 앓았다. 손자는 퇴계에게 편지를 보내 시골집에서 아기를 막 출산한 여종을 유모로 보내 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퇴계가 “남의 자식을 죽여 내 자식을 살리는 것은 불가하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대를 이을 맏증손자는 목숨을 잃었지만, 퇴계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사실을 손자에게 가르친 것이다.
퇴계 종택을 찾았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김 원장과 함께 들어서자 퇴계 16대 종손인 이근필 옹(90)이 서둘러 두루마기를 입고 마중을 나왔다. 큰절로 인사를 한 뒤 그는 매실차를 놓고 30분 동안 무릎을 꿇은 자세로 이야기를 나눴다. 젊은 학생들이 방문해도 어르신의 ‘공경의 무릎 꿇기’ 자세는 늘 변함이 없다고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증조부, 조부, 아버지께서 손님을 맞으실 때 자세를 보면서 몸에 밴 것”이라고 말했다. 떠나는 기자에게 그는 직접 붓글씨로 쓴 ‘조복(造福)’ 글귀를 주었다. 그는 “구복(求福)이나 기복(祈福)과 달리 스스로의 힘으로 ‘복을 만들어 낸다’는 진취적인 ‘조복’이란 단어를 젊은이들에게 널리 알려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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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육사의 고향인 원촌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윷판대


‘지행합일’의 정신을 가르쳤던 퇴계의 후손들이 사는 하계마을에서는 구한말 의병활동과 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가 25명이나 나왔다. 고개 너머 원촌마을은 퇴계의 14대 후손인 시인 이육사(1904∼1944)의 고향이다. 이육사문학관에서 만난 시인의 외동딸 이옥비 여사(81)는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했던 아버지가 1943년 청량리역에서 압송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 여사는 “얼굴에 짚으로 만든 용수를 쓰고, 포승줄에 묶인 채 끌려가시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원촌마을 뒷산인 윷판대에 오르면 이육사 시인이 ‘광야’의 시상을 떠올렸다는 전망대가 있다.

 

 

글·사진 안동=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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