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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와 농부

2022.02.27 17:31

박일선 조회 수:101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미쳐서 죽었다. ​ 그의 말년 모습은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
1889년 겨울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휴가를 보내던 니체는 집을 나선다. ​ 우체국으로 편지를 부치러 가다 광장에서 매를 맞는 늙은 말을 발견한다. ​ 무거운 짐마차를 끌고 가던 말은 미끄러운 빙판길 에서 그만 발이 얼어붙고 만다. ​ 겁먹은 말은 마부가 아무리 채찍을 휘둘러도 움직이지 않는다. ​ 마부는 화가 나서 더욱 세차게 채찍질을 한다. ​
 
그 광경을 본 니체는 갑자기 마차로 뛰어들어 말의 목에 팔을 감고 흐느낀다. ​ 이웃이 그를 집으로 데려갔다. ​ 그는 침대에서 이틀을 꼬박 누워 있다가 몇 마디 말을 웅얼거린다. ​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 ​ 그 후로 11년 동안 정신 나간 상태로 침대에 누워 죽음을 맞는다. ​
 
니체가 늙은 말을 부둥켜안은 것은 존재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 짐마차를 끌고 가는 말과, 삶의 등짐을 지고 가는 자신을 같은 처지로 여기고 감정이입을 했는지도 모른다. ​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지도 못한 채 채찍을 맞아야 하는 삶이라면 얼마나 고달픈가. ​ 그것이 가죽의 채찍이든, 세파의 채찍이든 말이다. ​ 니체가 눈물샘이 터져 울부짖은 것이 바로 그 지점이다.
 
1960년 방한한 미국 소설가 펄벅은 니체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한다. ​ 그녀는 늦가을에 군용 지프를 개조한 차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다. ​ 노랗게 물든 들판에선 농부들이 추수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 차가 경주 안강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보였다. ​ ​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 그녀는 차에서 내려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 펄벅이 길을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다. ​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
 
펄벅은 그때의 감동을 글로 옮겼다. ​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 볏가리 짐을 지고 가는 저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자, ​ 오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 내 조국, 내 고향, 미국의 농부라면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누어 지지 않고, ​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채찍질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이다. ​ 그런데 한국의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
 
동물이든, 사람이든 모든 생명체는 자기 삶의 무게를 지고 간다. ​ 험난한 생을 견뎌내는 그 일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받을 자격이 있다. ​ 하물며 같은 종의 인간끼리라면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 그런 마당에 SNS에는 오늘도 비수같은 말들이 홍수를 이룬다. ​
 
당신은 늙은 말에 채찍질하는 마부인가, 등짐을 나눠지는 농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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