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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칼럼] 가장 ‘윤석열다운’ 순간

민노총과 대결하는 윤 대통령을 보면서 오랜만에 그의 진가를 느낀다는

사람이 많다. 국민 다수가 지지하던 2년 전을 보는 듯하다.

선우정 논설위원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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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법원이 문재인 정권에 의해 정직당한 윤 검찰총장에 대해 직무 복귀 결정을 내렸다. 극적인 승리였다. 국민의 눈이 다음 날 출근길에 쏠렸다. 차에서 내렸을 때 그의 첫 행동은 스포트라이트를 향한 개선 인사가 아니었다. 차 문을 열어준 검찰청 방호실장의 어깨를 툭 치는 사적인 배려였다. 승부사로 태어난 사람이 있다. 윤 대통령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민노총의 불법행위에 대해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둘 다 정부가 원칙을 지키지 않아 키운 문제라는 취지다. 지나친 비유라고들 한다. 하지만 국민이 일상에서 민노총 때문에 겪는 고통은 북핵과 차원이 다르다. 그들은 생활을 망가뜨린다. 동네 주유소 기름을 동나게 하고, 건설 현장을 마비시켜 노동자 밥줄을 끊어버린다. 북한이 내뱉는 상욕보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화물연대의 진군가가 현실에선 더 살벌하고 위협적이다. 영국인은 인내력이 강한 국민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공습으로 런던에 폭탄 비가 쏟아졌다. 9개월 동안 시민 3만명이 죽고 5만명이 다쳤다. 160만명이 집을 잃었다. 그래도 언론은 흥분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민들이 지하 대피소로 몰리는 과정에서 어린이 1명이 깔려 숨지자 영국 언론은 “영국의 수치”라며 시민 의식을 맹비난했다. 독일 공습에 자기 살자고 아이를 밟고 갈 정도로 영국인이 타락했느냐는 것이다. 영국에선 이 시기를 “가장 위대한 순간(Finest Hour)”이라고 부른다. 인내와 단결, 절제와 희생으로 영국의 위대함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국민도 견디지 못한 시련이 1979년 연쇄 파업이었다.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에 나오는 음습한 문구를 인용했다. 화물 운전사를 시작으로 철도 노동자와 간호사, 청소원, 시신 매장 노동자 등 150만명이 파업을 벌였다. 한 달 이상 물류가 마비됐고 치료와 수술이 중단됐다. 중환자가 죽어나갔다. 쓰레기와 죽은 노숙자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노동당 내각은 파업 두 달 만에 백기를 들었다. “영국의 지배자는 여왕이 아닌 노동조합”이란 말을 증명했다. 그들에게 국가는 없었다. 노조 이익만 있었을 뿐이다. 승부사 마거릿 대처가 등장해 나라의 조종간을 잡을 때까지 영국은 이렇게 아수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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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총이 국민에게 주는 실생활의 고통은 북핵과 비교되지 않는다. 25일 오후 서울 여의대로에서 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가 총파업 대회를 열었다. 집회 시작은 오후 1시였지만, 집회에 쓸 무대를 설치한다며 오전 4시부터 여의대로 7개 차로를 점거하면서 출근길 정체가 극심했다. 퇴근 시간에도 무대를 철거하느라 다수 차선이 여전히 통제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뉴시스

 

민노총이 이 정도는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다. 몰라서 하는 소리다. 1996년 민노총은 정부의 노동 개혁을 총파업으로 좌초시켰다. 이 사건은 한국이 자체 개혁으로 위기를 탈출할 수 없다는 중대한 신호를 국제 금융시장에 전했다. 한국이 몰락하는 방아쇠를 당겼다. 이듬해 한국 경제가 무너졌다. 128만명이 직장을 잃었다. 자살자가 두 배로 늘었다. 민노총의 책임은 누구보다 컸지만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밀려난 노동자의 분노, 좌파 정권의 지원, 노동시장의 양분화를 교묘하게 이용해 반대로 힘을 키웠다. 그 힘을 활용해 광우병 난동을 선동하고 탄핵 집회를 주도했다.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외력(外力)은 문재인의 민주당이 아니라 민노총이었다. 이후 민주당은 민노총의 국회 지부처럼 전락해 민노총이 주문한 청부 입법에 열을 올린다. 민노총은 영국 노조 못지않게 나라를 파탄내고 정치를 유린한 시대의 괴물이다. 윤 대통령이 어쩌다 대통령에 올랐다고들 한다. 장관급 관료가 퇴임 1년 만에 대통령이 됐고, 당선 후 기존 대통령과 다른 모습을 보이니 하는 소리일 것이다. 대중은 너무 쉽게 잊는다. 이해찬씨가 2018년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말했다. 2020년 총선 대승으로 적어도 10년 집권은 무난했다.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권력이 탄생했고, 실제로 그들은 무슨 짓이든 했다. 윤 대통령이 조국 수사, 울산 수사, 원전 수사를 연이어 시작한 것은 권력의 기(氣)가 정점을 모르고 치솟을 때였다. 좌파의 민낯을 사법 증거로 폭로했고 20년 집권론을 5년 만에 끝냈다. 어쩌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 정치사에 이런 승부사가 없다. 민노총이 한국 좌파의 정점이기 때문에 대결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자원이 없는 한국이 여기까지 발전한 것은 효율적인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혁신으로 무장한 도전적 기업인, 미래를 내다보는 관료,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 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언론이 있었다. 정치는 삐걱거리면서도 발전을 위한 제도를 적기에 만들었다. 한국이 가진 밑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요소를 민노총은 전방위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는 전혀 다른 한국이다. 한국 사회가 MZ세대를 아낀다면 이 괴물을 그들에게 물려줘선 안 된다. 사람들은 윤 대통령에게 포용하고 양보하고 협치하라고 한다. 하지만 국민이 승부사 윤석열을 대통령 자리에 앉힌 본질은 다르다고 본다. 영국에서 탄광 파업은 1년 동안 이어졌다. 이 고통을 법과 원칙으로 이겨냈을 때 승부사 대처는 세계의 전설이 됐다. 영국에 재도약의 시대가 100년 만에 찾아왔다. 최근 민노총과 대결하는 윤 대통령을 보면서 그의 진가를 오랜만에 느낀다는 사람이 많다. 법과 원칙을 무기로 거대 권력과 다시 한판 붙은 모습에서 ‘윤석열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국민 다수가 지지하던 2년 전 그때 그를 보는 듯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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