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있게 살아라
2017.10.03 23:08
얼마전 오랜 친구로부터 "싸가지 있게 살아라" 란 제목의 글을 카톡으로 받고 가슴이 털컥 내려앉으며,
평소에 얼마나 싸가지 없이 살았으면 80이 낼모래인데 이런 충고나 받고있나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났읍니다. 그런데 정작 글을 읽어보니 내가 걱정하던 내용이 아니었고, 이친구도 남에게서 받은 글을
좋은 글이라 생각하고 주변의 친구들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었읍니다.
문장을 읽어보니 마치 조선시대 유명한 散文家의 글인양 문장이 流麗했고, 그 내용도 孔子의 敎學으로
후에 朝鮮의 宗敎가된 孺敎의 가르침과 孟子의 四端說(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녀야할 4가지 도덕성에 관한
학설) 등을 인용하여 싸가지의 뜻을 설명하려고 한 글이었읍니다. 간추려 보면,
"인간이 기본으로 갖춰야할 德目이 仁 義 禮 智 信이라 조선시대 한양의 4대문을 興仁之門, 敦義門, 崇禮門,弘智門이라
작명하고 그리고 普信閣을 세워 한양 도성을 오상(五常)에 기초하여 건립 하였다고 했읍니다. 오상은 맹자의 사단설로
仁은 측은지심(惻隱之心), 義는 수오지심(羞惡之心), 禮는 사양지심(辭讓之心), 智는 (是非之心), 信은 (光明之心)으로
보신각이 4대문 중심에서 종을 울리는 것은 인의예지를 갖추어야 인간은 신뢰할 수 있다는 유교적 철학이라며,
인의예지 4가지가 없는 사람은 사가지 즉 싸가지가 없는 놈이므로, 우리 모두 싸가지 있는 사람됩시다."였읍니다.
그런데 내가 평생 수없이 많이 사용해온(어떤때는 하루에도 몇번씩) 싸가지는 나무나 꽃의 새싹과 관계된 것이지 인류의
큰스승이신 공자님과 맹자님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 하면서도 언젠가 귀동냥으로 공자의 論語에 비슷한 내용이 있다는
말을 들은 듯 하여 찾아보았읍니다. 몇일 후에 우리 동창 몇몇이 모인 식사 모임중에 물어보고 전화로도 몇 친구에게도 물었으나
싸가지의 바른 뜻을 아는 사람이 없었읍니다.
1989년 民音社가 발간한 史學家 김종무(金鐘武)선생님의 論語新解에 다음과 같은 공자님의 말씀과 김선생님의 해설이
나옵니다.
子曰 苗而不秀者有矣夫며 秀而不實者有矣夫인저
공자 말씀 하시기를 싹은 나고도 이삭이 패지 못하는 것도 있고
이삭은 패고도 결실을 못하는 것도 있다.
즉, 사람이 어렸을 때에 수재로 지내다가 중간에 평범하게 되고
중간 이후에 타락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을 개탄한 말씀이다.
그런데 일전에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조선일보에 유익한 칼럼을 쓰시는 한양대학교 정민교수의 2013년 칼럼
"수이불실(秀而不實)"을 발견하고 읽어보니 싸가지의 뜻은 무엇이고 공자님의 가르침은 무엇이었는지 이해가
될듯하여 아래 전재합니다. 모두 한번 읽어 보시고 옳게 사용합시다.
수이불실(秀而不實) 정민 한양대교수
모를 심어 싹이 웃자라면 이윽고 이삭 대가 올라와 눈을 내고 꽃을 피운다. 그 이삭이 양분을 받아
알곡으로 채워져 고개를 수그릴 때 추수의 보람을 거둔다. 처음 올라오는 이삭 대 중에는 아예
싹의 모가지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대를 올려도 끝이 노랗게 되어 종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은 농부의 손길에 솎어저서 뽑히고 만다. 싹의 모가지가 싹아지, 즉 싸가지다.
이삭 대의 이삭 패는 자리가 싹수(穗)다. 싸가지가 있어야 하고, 싹수가 노래서는 안되는 이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논어 자한(子罕)에서 이렇게 말했다. "싹만 트고 꽃이 피지 않는 것이 있고, 꽃이 피었어도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이 있다. 묘이불수(苗而不秀)는 싸가지가 없다는 말이다. 수이불실(秀而不實)은
싹수가 노랗다는 뜻이다. 싹이 파릇해 기대했는데, 대를 올려 꽃을 못 피우거나, 꽃 핀 것을 보고 알곡을
바랐지만 결실 없는 쭉정이가 되고 말았다는 얘기다. 결과는 같다.
묘판에서 옮겨져 모심기를 할 때는 모두 푸릇한 청춘이었다. 들판의 꿈은 푸르고 농부의 기대도 컸다.
애초에 싸가지가 없어 솎아 지는것은 어쩔 수 없다. 고만고만한 중에 싹수가 쭉쭉 올라오면 눈길을
끌지만 웃자라 양분울 제대로 못 받고 병충해를 입고 나면 그저 뽑히고 만다. 탐스러운 결실을 기대했
는데 참 애석하다.
한나라때 양웅(揚雄)의 아들 자오(子烏)는 나이 아홉에 어렵기로 소문난 아버지의 책 "태현경(太玄經)"
저술 작업을 곁에서 도왔다. 두보의 아등 종무(宗武)도 시를 잘 써서 완병조가 칭찬한 글이 남아 있다.
중추 벼슬을 지낸 곽희태는 다섯 살에 이소경(離騷經)을 다섯 번 읽고 다 외었다는 전설적인 천재다.
권민(權愍)은 그 난해한 "우공(禹貢)"을 배운 즉시 책을 덮고 다 암송했다 한다. 하지만 이들은 후세에
아무 전하는 것이 없다.
천재가 꾸준한 노력을 못 이긴다. 대기만성이 맞는 얘기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되 네 끝은 창대하리라.
이것은 성경의 말씀이다. 시작만 잔뜩 요란하다가 용두사미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더 많다.
재주를 못 이겨 제풀에 고꾸라진다. 꾸준함이 재주를 이긴다. 노력 앞에 장사가 없다. -끝-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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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선
2017.10.04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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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규
2017.10.04 11:02
TV에서 여행다큐멘타리 특히 오지 奧地 여행자들을 볼때마다 박형을 생각하고
부러워 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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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2017.10.04 05:34
오늘은 우리 최대 명절인 추석, 참 좋은 글을 읽으면서 이른 아침을 열었습니다.
'싸가지가 없다' '싹수가 노랗다' 흔히 쓰면서도 무심했는데
김형 덕분에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네요
앞으로도 홈페이지에서 글로 자주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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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규
2017.10.04 11:04
왜 홈페이지에서만 만나나? 섭섭하구먼.
준경이 없더라도 자장면이라도 함하세.
언제나 좋은글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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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17.10.04 07:25
김 형 추석명절 아침에 교훈적인 휼륭한 좋은 글 올려 주셨구려.
참 오랫만에 인사 보내오. 아마 기억 될줄 모르지만 대전 공군 기교단에서 졸업후 처음이고
이제 우리 홈피에서 글로서 대하오.
김 형이 올린 글로 내 인생 돌아보면 수의 불실에 끝난인생, 꾸준한 노력보다 더 큰 힘은 없다는 것이
변함없는 교훈임을 진작에 터득하지 못했으니 아쉽기만 하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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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규
2017.10.04 10:57
영호씨,
세상에 희한한 일도 다있네.
그러고 보니 졸업하고 그 유명한 영주 터줏대감과 한번도 마주친 기억이 없는듯 하네.
"어쩌다 마주친 그대"란 송골매의 힛트곡도 있는데.
당신은 공군 50기 였나? 51기 였나? 대전기교단에서도 마주친 기억이 않나네.
아무럼 어떤가. 앞으로 20년은 거뜬히 살테니 마주칠 날이 있겠지.
아니면 약속을 하고 한번 만나도 되고. 보고싶은 놈들 5-6명 지명하고 상경하소
내가 자릴 만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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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17.10.05 09:26
김형 기교단 에서의 기억은 없을듯 하오.
내 상대 두번이나 낙방하고 늦게 학교생활 마치고 시골로 내려와
느즈막에 육군 징집 영장 받고 사병생활 겁이나서 허겁지겁, 마츰 53기 공군간부 후보생 모집에 응시했으니 그럴 수 밖에,
내 입교하니 B.O.Q에 한덕웅이 근무했고 이석철이 군사 심리학인가 교관으로 있고 또 조성구 군의관으로 있을때지
그때 별써 김 형은 곧 전역 할거라 했다네. 참 하세월, 까마득히 지난날의 옛 얘기가 되었네.
김 형 고맙소, 언제 한번 서울가면 옛날 얘기 할 기회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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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2017.10.04 16:01
모처럼 올린 글이 의미가 있어 좋구려.
나도 평소에 무심히 지나쳤던 단어 "싸가지"에 대해
폭넓게 인용한 내용에서 배운 점이 많았다오.
다음 국어 사전에 나온 두 가지 설명을 첨부하리다.
혹시 실례가 되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길 바라며...
1. 싸가지 : ‘싹수(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의 방언(강원, 전남)
2. 싸가지 : ➀ 소갈머리의 방언(소갈머리 - 마음이나 속생각을 낮잡아 이르는 말)
➁ ‘마음보(마음을 쓰는 속 바탕)’를 낮잡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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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2017.10.04 21:40
지혜로운 생활에 지침이될 글로서 자녀들과 손주들에께도 들려줄수 있는 교훈이 담긴 내용으로
바쁜가운데서도 이같이 좋은글을 올려 추석전후에 활용할수 있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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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17.10.04 22:05
"싸가지 있게 살아라" 라는 제목을 보고 찔끔했습니다.
혹시 나보고 하는 소리는 아닌가하고...
글을 읽어보니 "싸가지"란 말의 뜻을 옛현인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셨군요. 왜 갑자기 김필규님이 "싸가지 있게 살아라" 라는 말을 가지고
오셨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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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규
2017.10.05 10:25
설명하느라고 했는데요. 인의예지가 싸가지라는 글을 받고, 이건 아닌데 해서
우리 동창 7-8명에게 물어도, 애매한 답들만 돌아오고, 이왕이면 확실히 알아보고
쓰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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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흥숙
2017.10.05 10:37
우선 존경합니다. 친구가 보낸 글에 화가 났으면서도 참고 이치를 알려고 노력하는점과
그 긴글을 오타없이 써 내려간 것과 또 내가 깨달은 것을 친구에게 전하는 점에서요.
항상 동창들과 정을 나누는 마음 감사합니다.
그대서 공자, 맹자, 순자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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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규
2017.10.05 11:06
來日과 來生 중에 어느것이 먼저 나를 찾아올지 결코 알수없는 나이에 맞은
한가위입니다. 최선배님이 더욱 그리우시겠지요? 어쩌겠읍니까?
초대하지 않았어도 인생은 저세상으로 부터 찾아왔고,
허락하지 않았어도 이세상으로 부터 떠나 간 답니다.
그저 나를 끌고가는 세월에 모든 것을 맡기고 물처럼 세월 따라 흘러 가는 수 밖에요.
참 최선배님은 제큰형의 친구이신데, 제형은 15년전에 먼저 가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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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흥숙
2017.10.05 13:12
먼저가신 형님 생각을 하면서 보았을 저의 남편을 추석명절에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편도 좋은 친구들은 일찍 떠났다며 여의도를 지날 때 미다 이야기 하더군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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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2017.10.07 09:24
무심히 쓰던 "싸가지" 소상하게 일러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래서 주위의 좋은 친구는 인생의 동반자인가 봅니다.
요즘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9권 서울편을 읽으면서
유교를 근간으로 한 조선시대에 푹~ 빠져 재미를 본답니다.
그런데 김필규님하고 성기호님 생각이 자꾸 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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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심장한 글입니다. 몇 번 더 읽어보아야 무언가 귀중한 것을 얻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