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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사평역에서 - 곽재구

2009.12.27 23:43

김동연 조회 수:143


이초영이를 위해서 다시 한번 올립니다.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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