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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교향곡 5번 "운 명"

2017.01.16 06:41

심재범 조회 수:159










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Op.67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Christian Tilleman, conductor


Wiener Philharmoker


Großer Saal, Musikverein, Wien


2010.04


 



Christian Tilleman/Wiener Philharmoker - 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1804년에 교향곡 3번 E플랫장조, 즉 ‘영웅 교향곡’을 발표하며 음악사에 새 장을 연 베토벤은 그 여세를 몰아 곧바로 다음 교향곡에 착수했다. 그것은 전작 이상으로 베토벤 자신의 개성이 강조된 작품으로서, 한층 절약된 소재와 극도로 치밀한 기법, 그리고 더없이 강렬한 극적 전개를 통해서 교향곡사에 또 한 번의 변혁을 일으킬 운명이었다. 이 작품이 바로 오늘날 모든 교향곡, 나아가 ‘클래식 음악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는 교향곡 5번 C단조, 일명 ‘운명 교향곡’이다.


그런데 그 작업은 얼마 후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1806년, 베토벤은 어둡고 강렬한 ‘C단조 교향곡’ 대신에 한결 밝고 유려한 교향곡 4번 B플랫장조를 먼저 완성한다. 또 피아노 협주곡 4번 G장조,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등 주로 밝은 성향의 작품들을 연이어 완성시켰다. 아울러 ‘여성에 의한 구원’이라는 주제를 내포한 그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의 초기 형태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 무렵이다. 대체 그 당시 베토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의 삶에 잠시 비춘 햇살


1804년, 베토벤에게 필생의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의 이름은 요제피네 폰 다임. 그녀는 원래 헝가리의 귀족인 브룬스비크 가문의 둘째 딸로, 1799년 봄부터 빈에 체류하면서 언니 테레제와 함께 베토벤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에 그들 자매와 베토벤은 ‘생명이 다할 때까지 지속될 마음의 우정’을 맺기도 했다. 19세기에 그려진 요제피네 초상화.


1799년 여름, 요제피네는 어머니의 결정에 따라 27세 연상의 요제프 다임 백작과 결혼식을 올리고 빈에 정착했으며, 이후 ‘다임 백작부인’으로서 네 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녀는 꾸준히 피아노 레슨을 받고 때때로 집에서 음악회를 개최하면서 베토벤과의 인연을 이어 나갔는데, 한편으론 문학과 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남편 밑에서 외롭고 불행했다. 더구나 집안의 경제사정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급기야 1804년 1월에는 남편이 병사하고 말았다. 꽃다운 20대 중반의 나이에 미망인이 되어 경제적 곤궁에다 신경쇠약에까지 시달리고 있었던 요제피네에게 위로의 손길을 뻗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다. 이제 우정은 연정으로 발전했고, 두 사람은 1804년 가을부터 한동안 연인 관계로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밝은 성향의 작품들이 작곡된 것이 바로 그 시기였다. 덕분에 ‘C단조 교향곡’의 완성은 무기한 연기되었는데, 아마도 요제피네와의 행복한 시간이 베토벤의 마음을 어둡고 격렬한 음악에서 밝고 온화한 음악 쪽으로 돌려놓았던 것이 아닐까? 그 시절의 작품들에 잘 나타나 있듯이, 요제피네와의 사랑은 베토벤의 고달픈 삶에 비친 가장 찬란하고 감미로운 햇살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애초부터 오래 지속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요제피네가 귀족이었던 데 비해 베토벤은 평민이었고, 만일 베토벤과 결혼하게 되면 요제피네는 법에 따라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을 상실하게 될 처지였다. 또 베토벤은 예나 지금이나 앞날이 불투명한 ‘음악가’라는 직업에 몸담고 있었고, 치명적인 청각 이상에 시달리고 있기까지 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요제피네의 고민도 깊어졌고 베토벤의 호소는 절박해졌다. 그러나 결국 요제피네는 집안사람들의 반대에 굴복하고 만다. 1807년이 저물어 갈 즈음 그녀는 베토벤에게 결별을 선언했고, 그 후 두 사람의 사이는 소원해졌다.



베토벤을 소재로 한 영화 <불멸의 연인>의 한 장면. 청각에 이상이 있는 베토벤이 피아노 뚜껑의 울림으로 연주 상황을 체크하는 장면.

Paavo J?rvi/DK Bremen - 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Paavo J?rvi, conductor


Deutsche Kammerphilharmonie Bremen


Funkhaus Kopenick, Berlin


2006.08



교향곡과 드라마


베토벤이 어둡고 투쟁적인 음악으로 복귀한 것은 요제피네와의 연애전선이 하강곡선을 그리던 무렵의 일이었다. 즉 1806년 말의 <32개의 변주곡 C단조>와 1807년 초의 <코리올란 서곡>을 거쳐, 베토벤은 마침내 ‘C단조 교향곡’을 다시 붙잡았던 것이다. 그 사이 번호가 4번에서 5번으로 밀린 새 교향곡은 1808년에 완성되었고, 같은 해 12월 22일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자매작인 ‘전원 교향곡’과 함께 초연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토벤의 가장 성공적이고 상징적인 역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데 때때로 이 교향곡의 표제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운명’이라는 호칭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운명’은 그저 별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 별명은 베토벤의 후년에 비서 노릇을 했던 안톤 신틀러의 증언에서 유래했는데, 그가 곡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유명한 ‘4음 모티브’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냐고 물었을 때 베토벤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신틀러의 여러 증언이나 주장들이 후대에 와서 거짓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이 증언도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이 곡을 ‘운명 교향곡’이라고 부른다. 거기에는 편의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 곡이 ‘어둠과 고난을 헤치고 광명과 환희로!’라는 베토벤 고유의 모토를 다른 어떤 곡보다도 명료하게, 효과적으로 응축해서 구현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첫 악장에는 일평생 청각장애, 신분의 장벽, 정치적 격변기의 혼란 등을 겪으며 숱한 역경과 맞서 싸워야 했던 베토벤의 처절한 투쟁 상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한 편의 교향곡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빈의 베토벤 광장에 서있는 베토벤 기념상. 아래 기단부 왼쪽에 바위에 묶인 프로메테우스가, 오른쪽에 뮤즈상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원래 이 작품이 ‘영웅 교향곡’의 바로 다음 작품으로 구상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전작이 ‘이상적 영웅 상’ 혹은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의지’를 펼쳐 보인 것이라면, 이 ‘운명 교향곡’은 그 이상을 향한 인간의 투쟁과 고뇌, 그리고 궁극적 성취 과정을 형상화한 음악적 드라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 작품을 ‘운명’이라는 표제 아닌 표제에 묶어 둠으로써 범할 수 있는 오류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잠시 시선을 돌려 보면, 이 작품이 당시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독일-오스트리아의 민족주의 또는 애국주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역사적 고찰도 존재하며, 베토벤이 즐겨 언급하던 고대 그리스-로마의 비극을 암시한다는 견해도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한 편의 ‘교향곡’이다. 베토벤이 딛고 서있었던 ‘고전주의의 총아’이자 ‘기악음악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작품에 담긴 베토벤의 정신이나 주제의식을 논하는 것에 못지않게, 그 순수한 음악적 측면을 주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상상을 초월하는 리듬의 응집력, 주제 재료의 경제성(‘운명의 동기’로 대변되는), 진취성과 혁신성(1악장 중간의 절묘한 오보에 카덴차, 3악장에서 콘트라베이스가 빚어내는 효과, 관악 파트에 피콜로와 콘트라파곳을 추가한 것, 피날레에서 트롬본을 등장시킨 것, 스케르초 악장의 주제를 피날레 악장에서 다시 등장시킨 것 외) 등을 두루 살펴야만 비로소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과 가치를 온전히 가늠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첫 악장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무쌍한 리듬 및 프레이징의 변화, 즉 ‘리듬의 역동성’이야말로 우리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감탄하며 압도되는 이유의 핵심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외형적으로 고전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는 이 교향곡이 종래의 모든 규칙과 제약을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Donald Runnicles/BBC Scottish SO - 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Donald Runnicles, conductor


BBC Scottish Symphony Orchestra


Royal Albert Hall, London


Proms 2013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


C단조, 2/4박자. 첫 악장은 이른바 ‘운명의 동기’가 갑작스럽게 포르티시모로 터져 나오며 시작된다. ‘세 개의 짧은 음표와 한 개의 긴 음표’로 이루어진 이 유명한 동기는 처음에 현악기들과 클라리넷에서 음높이를 달리하여 두 번에 걸쳐 나오는데, 그 마지막의 붙임줄과 페르마타까지를 아우르는 다섯째 마디까지가 이 악장의 제1주제이다. 이후 ‘운명의 동기’는 열띤 흐름 속에서 꾸준히 반복?변형?확장되면서 곡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호른 신호와 함께 시작되는 제2주제는 제1바이올린에서 부드럽게 흘러나오는데, 리듬적인 속성이 강조된 제1주제와는 달리 다분히 선율적이다.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음반(DG).


이 악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투쟁적인 열기’로 요약될 수 있겠지만, 사실 이 긴박한 드라마에는 꽤나 다양한 장면들이 밀집되어 있다. 즉 투쟁의 강렬함 외에도(그 투쟁의 주인공으로 상정될 수 있는) 영웅의 늠름함과 유연함, 그리고 다소 때 이른 환희의 쾌활함까지도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은 '운명의 동기'의 가공할 마력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며, 결국 비극적인 파국과 패배 속에서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2악장: 안단테 콘 모토


A플랫장조, 3/8박자. 격렬한 전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듯한 이 느린악장은 두 개의 주제에 기초한 변주곡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첼로와 비올라로 제시되는 제1주제는 느긋하고도 리드미컬하게 흐르며, 클라리넷과 파곳으로 제시되는 제2주제는 우아한 춤 또는 행진의 느낌을 자아낸다. 이후 이 주제들은 때로는 장대하거나 당당하게, 때로는 유려하거나 소박하게 모습을 바꾸면서 다채롭게 변주되어 나간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휴식과 위안, 사색과 명상 등 실로 다양한 감정과 이미지들을 경험하게 된다.


3악장: 알레그로


C단조, 3/4박자. 다시 전장으로 복귀한 듯한 스케르초 악장이다. 저현부에서 음산하게 솟아오르는 주제로 시작되고, 이어서 트럼펫이 ‘운명의 동기’의 변형을 장렬하게 연주하며 다시금 투쟁의 분위기를 곧추세운다. 중간의 트리오로 들어가면 급속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첼로와 베이스에서 출발하여 점차 밝아지는 푸가토가 등장하는데, 베를리오즈는 이 부분을 ‘코끼리 춤’이라고 부른 바 있다. 이후 다시 처음의 주제가 나오는데, 이번에는 어딘지 기묘한 풍자 또는 해학의 기운을 띠고 있다.


혹자는 이 스케르초가 마무리되고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나오는 조용한 이행부가 이 교향곡의 진정한 절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긴장감과 신비감을 함께 머금은 이 이행부는 실로 경이로운 것이어서, 베를리오즈는 그 뒤에 이어지는 부분에서 그 수준을 능가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고, 같은 맥락에서 슈포어는 마지막 악장을 ‘무의미한 바벨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4악장: 알레그로


C장조, 4/4박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팡파르와 함께 시작되는 피날레 악장은 우리에게 언제나 벅찬 감흥을 안겨준다. 음악이 찬란한 C장조로 전환된 가운데 먼저 금관이 이끄는 투티로 ‘승리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제1주제가 힘차게 부각되고, 바이올린에서 흘러나오는 제2주제는 마치 흥겨운 춤을 추듯 쾌활하게 펼쳐진다. 영웅은 다시금 투쟁에 임하지만 이번에는 승리에 대한 확신에 차 있고, 발전부 말미에서는 앞선 악장의 기묘한 주제가 잠시 모습을 드러내지만 이내 사라진다. 재현부 이후는 마침내 승리를 쟁취한 영웅의 개선행진곡이자 환희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이 초월적인 걸작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언젠가 베토벤은 “보다 아름다운 것을 위해서라면 파괴하지 못할 규칙이란 없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낭만주의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슬로건으로 통용되기도 했던 이 발언은, 그러나 과도한 일탈이나 방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베토벤의 파괴는 고리타분하고 정체된 낡은 질서를 허물고 보다 참신하고 역동적인 새 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낭만적인 동시에 고전적이고, 고전적인 동시에 낭만적인 ‘운명 교향곡’은 그에 관한 가장 뜨겁고 힘찬 웅변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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