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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 하병주

2017.01.19 17:35

오세윤 조회 수:149











느티나무

  

 우리 동네 입구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수령이 몇 년이나 되는지 몸체가 세 아름이 넘고 하늘을 향해 치솟다가 둥그스름하게 옆으로 퍼진 모습이 우람하다. 잎이 우거질 때면 한층 더 웅장한 모습이 된다. 나무 밑에는 반석이 깔려있어 돗자리를 펴지 않아도 앉아 놀기에 좋다. 옛날에는 동네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회의장이었지만 지금은 더운 여름날 노인들이 오수를 즐기는 장소로,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애용된다. 때로는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면 길 가던 사람이 비를 피해서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을 동네와 함께 지내오면서 좋은 일 궂은일을 다 겪어온 유서(由緖) 깊은 나무다.  

  나는 그 옆을 지날 때면 여름이 아니라도 나무 밑으로 들어가 한참씩 앉아 있곤 한다. 숱한 날들을 비바람 눈보라에 부대끼면서도 의연한 자세로 서 있는 그 위용이 마치 위대한 인물을 대한 듯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우람하고 멋지게 보이지만 가까이 가 보면 그렇지도 않다. 온 몸뚱이가 상처투성이다. 돌에 맞았는지 껍질이 벗겨져 속살이 드러나 있는 곳도 있고, 날카로운 쇠끝으로 긁은 자국이며 심지어는 큼직한 쇠못이 깊숙이 박혀 있기도 하다.

   

 느티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베풀기만 했다. 누구라도 그 밑에서 편안히 쉬어갔고,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고 비바람을 막아 주었다. 누구를 차별하지도 않았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주기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날이 갈수록 몸뚱이에 상처만 늘어갔다. 나무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누군가가 상처를 입힌 것이다. 육신의 상처뿐일까? 만약 나무에 영혼이 있다면 참을 수 없는 배신감에 갈가리 찢긴 영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살아온 연륜 만큼이나 많은 상처를 안고. 하지만 정작 상처를 입힌 본인은 그런 사실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몸에 난 상처는 약 바르고 치료해서 시간 지나면 자국도 없어지고 기억에서도 멀어진다. 그것은 그저 일시적인 고통일 뿐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수업시간에 웃었다는 이유로 앞에 불려나가 양쪽 뺨을 주먹으로 수도 없이 얻어맞아 코피가 터지고 며칠간 입 벌리기가 힘들었던 일도 지금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수양이 부족한 그 선생님에게 오히려 동정이 간다.

  한 밤중에 식칼을 든 강도가 우리 집 안방에 들어와 격투하는 중에 이부자리가 젖도록 피를 흘리고 병원에 입원했던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는 엄청난 아픔이었지만 벌써 가물가물하다. 증오심도 없다. 어디에서 마음잡고 잘 살고 있는지 아니면 지금도 강도짓을 하고 다니는지 궁금하다. 그저 불쌍한 생각이 들 뿐이다.

  그러나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치유가 어렵다.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고통은 더 크고 잊어지질 않는다. 더구나 그것은 나와 마음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 내가 믿고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입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욱 아픔이 크다. 어렸을 때부터 단짝이었던 고향 친구라든지, 오랜 세월을 한 몸으로 살아온 아내의 입에서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온 농담 한 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빌 수도 있다. 그러나 본인들은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 한다. 나 혼자만이 안으로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오직 나만의 아픔이다. 마치 느티나무처럼.

    

? 

 나 역시 어느 때 무슨 말로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기억을 못하지만 분명 그런 일이 있을 것이다. 

 지금 느티나무는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로 차가운 바람에 윙윙거리면서 외롭게 서 있다. 찾는 사람이 없어 혼자서 봄을 기다리고 있다. 새싹이 트고 잎이 우거져 그늘을 드리우면 그때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는 또 상처를 입힐 것이다. 돌로 치고 쇠끝으로 긁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잎을 피우기 위해서 봄을 기다리고 있다. 자기의 그늘에서 낮잠을 즐기는 동네 노인을, 시끄럽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상처를 입게 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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