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面長의 구사일생

2023.12.04 08:50

엄창섭 조회 수:144

 
 

[조용헌 살롱] 面長의 구사일생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6·25 전후로 영호남이 죽은 숫자가 달랐다. 대충 계산해 볼 때 영남보다 호남이 4~5배는 더 죽지 않았나 싶다. 1948년 여순 사건에서 좌우익 희생자를 합치면 대략 2만명이다. 지리산에 빨치산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전라도가 영남 쪽보다 훨씬 많았다. 전남 영광에서 죽은 숫자도 양쪽 합하면 4만5000명 정도로 추산한다. 적산가옥(敵産家屋) 쟁탈전이었다. 6·25 전후 몇 만명 단위로 경상도에서 죽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호남에서 이렇게 많이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들판이다. 들판이 피를 불렀다. 지주와 소작인, 계급 갈등이 원한으로 쌓여 있었다. 난리 나면 개인감정을 해소하는 기간이 된다. 경상도는 들판이 적었다. 서울의 종편 방송국 사장을 지낸 조현재(66)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드라마틱하다. 전남 강진이 고향이다. 6·25 때 조현재의 조부가 강진군 병영면의 면장을 지냈다. 병영에는 조선 초기부터 왜구를 방비하기 위하여 병영성(兵營城)이 있었다. 병영성을 지키기 위하여 상주하던 군인이 500명, 군적(軍籍)에 올라 있었던 예비군이 1만5000명이나 되었던 특수한 도시였다. 병영성에 식량과 무기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납품하고 장사를 하던 상인들 집단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이 상인 집단을 병영 상인이라고 불렀다. 이 병영 상인 집단이 성 주변에 3000가구 정도 모여 살았다고 한다. 개성 상인, 경강 상인, 다음에 병영 상인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다.

 

1894년 동학 때 동학군들이 집중 공격한 대상도 바로 이 병영 상인들이었다. 3000가구 대부분이 불탔다. 자본가 계급으로 본 것이다. 6·25 때 병영면장을 하던 조현재의 조부, 당시 52세 조화두(趙禾斗)는 좌익들에게 붙들려 골(골짜기)로 갔다. 총살 직전이었다. 이때 붉은 완장을 찬 20대 젊은 놈이 조화두를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소리를 질렀다. “면장, 저놈은 아주 악질이니까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붉은 완장은 조화두를 끌어내어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아주 세게 귀싸대기를 두어대 갈겨 버렸다. 그런 다음에 100여 미터 떨어진 수풀 속으로 끌고 갔다. “아버님 어서 도망가십시오!” 그 붉은 완장 D는 조화두의 아들 친구였다. 배가 고팠던 아들 친구 D가 평소에 면장 집에 오면 면장 부인은 밥상부터 차려줬다. 광주리에 먹을 것을 넣어 두었다가 아들 친구들 오면 푸짐하게 먹이곤 하였다. 면장 아들은 평소에 지갑의 돈을 꺼내 형편 어려웠던 D와 나눠 쓰기도 하였다. 6·25 때 위기 상황에서 그 은덕을 갚은 셈이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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