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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노벨 문학상 배경 된 ‘보편성’과 국력[포럼]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

 

지난 10일 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소식은, 북핵을 머리에 이고도 후진국적인 정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암담한 정치적 상황에서 좌절하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한 가닥의 밝은 빛이 됐다.

 

그동안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 문학상을 발표하는 10월이 되면, 우리는 기대와 좌절이 혼재된 소용돌이 속에 부끄러운 열병을 앓았다. 그러나 올해에는 언론은 물론 문학계에서도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초조함을 보이지 않고 침묵 속에 머물고 있었지만, 뜻밖에도 노벨 문학상이 한강에게 주어지는 영광을 보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경의처럼 느끼고 있지만, 한강의 세계적인 작가로의 위대한 탄생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그간 노벨상을 적극적으로 추구한 시인 고은과 소설가 황석영을 비롯한 대다수의 한국 작가는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동족상잔의 6·25전쟁에 뒤이어 나타나게 된 이념적인 갈등으로 인한 비극적인 상황을 그리는 리얼리즘 중심의 이른바 민족문학을 너무나 강조했다. 그 결과 세계 문학계에서 인류의 공통적인 가치, 즉 작품의 보편성을 구축하는 데 취약점을 보였다. ‘가장 토속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고 하지만, 그것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변용돼 표출되지 않으면 지역적인 것으로 제한 될 수밖에 없다.

 

한강은 이전 세대와 같은 문학적인 주제를 사용하면서도, 자신의 ‘개인의 재능’은 물론 ‘부드럽고 잔인하며 때로는 초월적인 강렬한 서정적 산문시’와 같은 언어, 그리고 존재의 근원적인 현상을 반영하는 원형적 이미지 등을 통해 그것을 지역적인 게 아닌 보편성을 띤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어 문학적 지평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5·18과 4·3을 배경으로 작품을 썼지만, 그것을 한국이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일어났던 잔인한 분쟁으로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부조리한 역사의 움직임과 그것에 저항하는 ‘연약한 인간’의 슬픈 모습을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투명하게 그려 지구촌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각 작품에서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폭로 한다”며, 그것을 위해 “그녀는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힌 것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이를 두고 국내 일각에서는 한(恨)을 해소하는 씻김굿과 같은 살풀이적 성격이 짙다고 하지만, 스웨덴 한림원은 “묻히지 못하는 신원 미상의 시체를 보는 것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모티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지적하며 세계문학 차원의 문학성을 강조했다. 그가 이렇게 치열하고 그윽한 문학적 주제를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역사 속의 피해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함으로써 증인문학(witness literature)이라는 장르에 접근”하며, “아름다움과 공포”가 미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비극미를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창조한 것 또한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 이것은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예이츠가 ‘1909년 부활절’이란 시편에서 영국의 압박 저항에서 일으킨 봉기(蜂起)에서 희생자들의 죽음을 두고 ‘무서운 아름다움의 탄생’이라고 노래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강의 문학작품이 이렇게 지구촌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가 일본의 첫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國)’을 번역한 사이덴 스티커에 비견할 만한 데버라 스미스 같은 실력 있는 신진 역자를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대 출신 스미스가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산업화 이후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우리의 국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번역문학가는 예술적으로 탁월한 언어 감각, 원작의 문화적 배경 및 전통에 대한 충분한 지식은 물론 문학적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비평 능력을 갖춰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간 외국인 선교사와 1960년대 한국에 상륙한 평화봉사단(Peace Corps) 출신 역자들에게 의존해 왔다. 국력 때문이었다.

 

우리보다 앞서 노벨 문학상을 두 번 받은 일본은 국력 덕분에 19세기에 반 고흐가 일본 그림을 언급하고 20세기 초 제임스 조이스가 그의 유명한 소설 ‘율리시스’에서 일본의 색채를 언급했을 정도로 서구 세계에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이미 알려져 있었다. 만일 지금처럼 우리 정치가 비생산적인 정쟁의 소용돌이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 국력이 쇠락해지면 그동안 피땀으로 쌓아 올린 선진국으로 가는 모든 계단도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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