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感動의 글
2025.01.0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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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動의 글
서울 녹번동 은평평화공원에 군복 차림의 동상이 있습니다.
6·25전쟁 첫해인 1950년 9월 22일 서울수복작전 때 녹번리 전투에서 29세로 전사한 미국 해군 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를 기리는 조형물입니다.
동상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한국 선교사 윌리엄 얼 쇼의 외아들로 1922년 6월 5일 평양에서 태어 났습니다.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미국 웨슬리언 대를 졸업하고 2차 세계대전 중 해군 소위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습니다.
1947년 한국으로 돌아와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며 한국 해안경비대 창설에 기여했습니다. 제대 후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6·25전쟁이 터지자 젊은 부인과 두 아들을 처가에 맡기고 재입대했습니다.
이때 그는 부모와 주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공부만 하고 있겠는가.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고 합니다] 유창한 한국어로 맥아더 장군을 보좌하며 인천상륙 작전에 성공한 뒤 그는 해병대로 보직을 바꿔 서울 탈환에 나섰다가 인민군 매복조의 습격을 받아 전사했습니다.
그의 숭고한 사랑에 감명받은 미국 감리 교인들은 아버지 윌리엄 얼 쇼가 공동 창립한 대전 감리교 신학교 (현 목원대)에 '윌리엄 해밀턴 쇼 기념교회’를 건립했습니다.
그의 부인은 남편 잃은 슬픔 속에서도 하버드대 박사 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와 이화여대 교수와 세브란스 병원 자원봉사자로 평생을 바쳤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도 하버드대에서 한국사로 박사 학위를 받고 내한해 장학사업과 한·미 학술교류에 힘썼습니다.
은평평화공원 그의 동상 옆에는 기념비도 있습니다.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전 문교부 장관 등 60여 명이 ‘키가 크고 평양 말씨를 쓰던 벽안의 친구’를 위해 1956년 녹번 삼거리에 세웠다가 이곳으로 옮겨온 비석입니다. 비석 받침대에는 제자이자 친구인 해군사관학교 2기생들의 헌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와 한국 친구들의 특별했던 우정은 국가 간 우방과 동맹의 의미를 일깨워 줍니다.
한국을 위해 목숨보다 더 큰 사랑을 바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매년 9월 22일 이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의 동상 앞에 오래 고개를 숙이고 눈물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눈물이 납니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 코리아를 자기 조국이라고 생각하며/ 6.25전쟁이 발발하자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내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공부하고 있겠는가.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다''고 하며 부인과 아들을 처가에 맡기고 자원 입대해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애국충정을 높이 기리며 ~~~
윌리엄 얼 쇼 윌리엄 해밀턴 쇼
은평평화공원의 윌리엄 해밀턴 쇼 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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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공부만 하고 있겠는가.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다." 참 감동적이 말입니다.
옛날에 아버지 부시 대통령 자서전을 읽었는데 거기에도 감동적인 말이 나온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했던 말이었습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는 오하이오 부호 집안 출신인데 예일 대학교를 나오고 예일 대학교가 있는 동부 커네티겟 주에서 금융업으로 자수성가 해서 큰 부자가 되었고 60대에 이르러서 이제 사업은 그만 하고 남은 생을 사회봉사에 바치겠다고 결심하고 정치에 입문해서 커네티겟 주 상원의원을 두 번 지냈고 한때는 대통령 출마 말까지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의 아들, 즉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1942년 6월 미국 최고 명문 사립고등학교인 Phillips Academy를 졸업했습니다. 그때는 일본이 진주만 폭격을 해서 태평양전쟁이 일어난지 약 반 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졸업식에는 당시의 미국 국방장관이 나와서 축사를 했습니다. 미국 최고 명문 사립학교라 그런 거물인사가 초대되어서 축사를 한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국방장관은 졸업생들에게 "너희들은 미국의 소중한 인재들이니 졸업 후에 입대하지 말고 대학에 진학해서 학업에 전념하거라." 라고 말했답니다. 그때는 대학생은 군대에 안 가도 될 때였나 봅니다. 국방장관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아들 졸업식에 참석해서 이 얘기를 들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는 나중에 아들에게 "저 친구 말은 "bull shit"이니 무시하거라." 라고 말했답니다. 제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그 감동적인 말이지요. "Bull shit"은 소똥이란 뜻인데 우리 말로는 "개소리" 정도의 표현입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미국 국방장관의 말을 따르고 않고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입대해서 공군 조종사가 되었습니다. 태평양 전선에 참전하여서 여러 번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한번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조종하던 비행기가 태평양 상공에서 일본군에 의해서 격추되어서 부종사 등 승무원 모두 사망했는데 혼자만 일본 해군이 통제하던 지역의 바다에 떨어졌다가 구사일생으로 미군 잠수함에 구조되었다 합니다. 종전이 되어서 아버지가 졸업한 예일대학교에 진학하고 예일대학교 야구 팀 주장도 하고 졸업 후에는 CIA 디렉터, 주중 미국대사, 레간 대통령의 부통령 등을 역임한 다음에 대통령이 되고 그의 아들도 나중에 대통령이 되어서 부자 대통령 가문이라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부잣집 아들이니 군대 가지 말라는 국방장관, 아들에게 군대 가라는 아버지, 두 사람의 의견이 너무나 대조적인데 누구 말이 맞는 것인지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두서 없이 썼습니다.
부만 하고 있겠는가.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