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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수도 한복판, 보수의 심장에서…

30년째 호암 이병철 기렸다

 

헤리티지재단, 95년부터 매년 '이병철 강의'

키신저·펜스·럼스펠드 등이 역대 연사

"삼성이 한국 경제, 한미 관계 큰 기여… 큰 영광"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조선일보

 

22일 미국 워싱턴 DC 헤리티지재단에서 열린 '이병철 강의'에서 행사장 입구에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 초상화가 전시돼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우리 재단은 오늘 국제 관계에 관한 ‘이병철 강의’를 개최할 수 있어 다시 한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의 리더십을 통해 삼성그룹은 한국의 경제 발전과 한국인의 웰빙은 물론 상호 이익이 되는 한미 관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22일 오전 미국 워싱턴 DC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에서 30번째 ‘이병철 강의(B.C. Lee Lecture)’가 열렸다. 재단은 삼성의 후원을 받아 매년 명사를 섭외해 당대의 주요 문제에 관한 연설을 듣는데, 이날은 미 하원에 설치된 ‘미국과 중국 공산당 간 전략 경쟁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6선의 존 물레나르 공화당 의원이 약 1시간 동안 미·중 경쟁을 주제로 연설하고 제프 스미스 아시아연구센터장과 대담을 가졌다. 물레나르는 최근 엔비디아의 H20 반도체 대(對)중국 수출을 허용한 상무부를 비판했고, 무역·관세·기술·바이오 등 전 영역에서 중국 강경 대응에 앞장서며 정책 반영과 법제화를 이끌어 내고 있는 의회 내 손에 꼽히는 대중국 매파다. “중국에 패권을 쉽게 내주어선 안 된다”는 게 그가 갖고 있는 신념이다.

 

이날 현장에는 약 150명이 참석해 물레나르 의원의 강의를 경청했는데, 일본 등 주요국 대사관에서 나온 이들도 여럿 보였다. 행사장 입구에는 삼성 창업주인 고(故) 호암 이병철(1910~1987)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었다. ‘이병철 강의’ 역대 연사 면면을 보면 화려하다. 1995년 미국 외교의 거목(巨木)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첫 연사로 나선 것을 시작으로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1998년),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2004년),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2006년),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2007년), 조 리버먼 전 상원의원(2011년),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2021년) 등이 무대에 올랐다. 물레나르 의원이 “나와 키신저가 같은 장소에 있는 건 역사에서 지금 이 순간밖에 없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져 청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물레나르 의원은 “사람들은 미·중 관계를 무역 분쟁, 초강대국 간 경쟁, 기술 경쟁이란 프레임으로 접근하지만 이는 본질을 놓치는 것”이라며 “단순히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다. 중국 공산당, 다시 말해 생각을 검열하고 반대 의견을 억압하며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독재 정권이 될 것인지, 아니면 강건함과 명확함, 결단력으로 이끌어가는 자유로운 미국이 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공산당은 우리 데이터와 자본을 이용해 우리 땅에서 게임의 규칙을 다시 쓰려 한다”며 “이런 위협이 가장 시급하게 나타나는 분야는 첨단 기술 경쟁, 특히 인공지능(AI)과 바이오테크”라고 했다.

 

22일 미국 워싱턴 DC 헤리티지재단에서 열린 '이병철 강의'에서 존 물레나르 공화당 하원의원(왼쪽)과 제프 스미스 아시아연구센터장이 대담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워싱턴 DC 내 공론 형성, 나아가 정부의 정책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싱크탱크에 우리 기업이나 정부 기관이 후원을 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삼성과 같이 한곳에 오랜 기간 후원을 꾸준히 해온 사례는 미 조야(朝野)에서도 보기 드문 케이스다. 여기에는 최근 작고한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창립자와 삼성가(家)의 3대에 걸친 인연이 있다. 퓰너 창립자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가까웠는데, 생전에 이 회장이 “아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재단에서 일하며 워싱턴을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퓰너가 이를 흔쾌히 수락하자 이 회장이 눈물을 흘리며 포옹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워싱턴 DC의 재단 사무실에 ‘이병철 룸’도 있고 1995년부터 ‘이병철 강의’를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레나르 의원은 이날 “이 강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영광”이라며 “자유를 위해 일생을 바친 호암의 유산은, 독재에 맞서는 것이 단순한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우리의 도덕적 소명임을 상기시켜준다”고 했다. 재단 입장에서도 매년 7월 열리는 ‘이병철 강의’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한다. 재단은 “호암은 진정한 비전가였다”며 “그의 리더십을 통해 삼성이 한국의 경제 발전, 한국인의 웰빙, 상호 이익이 되는 한미 관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고 했다. 2021년 펜스 전 부통령이 연설한 ‘이병철 강의’ 당시 케이 콜 제임스 재단 이사장은 “삼성은 25년 전부터 호암을 기리는 의미로 이 강의를 시작하며 미 정책 입안자들의 관심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한미 공통의 이익에 집중시키길 원했다”며 “재단 구성원들을 대표해 호암의 유산 일부를 우리에 맡겨준 것을 깊은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22일 미국 워싱턴 DC 헤리티지재단에서 열린 '이병철 강의'에서 청중이 박수를 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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