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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K조선 만든 '산업 열사'

2025.08.23 08:12

엄창섭 조회 수:114

 
 

오늘의 K조선 만든 '산업 열사'

 

노석조 기자/조선일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조선총독부 항만 관리 보고서를 보면,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됐을 때 일본인들은 철수하면서 큰 선박은 모조리 가져갔다. 남은 건 100톤(t) 이하 작은 배뿐이었다. 우리는 그마저도 감지덕지해야 할 처지였다. 고칠 기술이 없어 고장이라도 나면 그걸 일본에 끌고 가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인정한 오늘날의 ‘K조선’이지만, 80년 전 우리 손으로 조선업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꿈이었다.

 

미국은 6·25전쟁에서 같이 싸우고 상호방위조약도 맺었지만, 우리에게 군함과 기술을 주기는 꺼렸다. 이런 가운데 1961년 군인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그가 국정을 시작하며 집착에 가깝게 좇은 것 중 하나가 조선이다. 1961년 11월 첫 방미 때 일본을 거쳤는데 영국 선급사 직원으로 잠시 일본에 머물던 신동식을 따로 불렀다. 조선업을 키울 인재를 직접 찾은 것이다.

 

신동식은 귀국해 잠시 일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시피 해 미국으로 가버렸다. 박정희는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차 방미했는데 짬을 내 미 선급협회 검사관이던 신동식을 다시 호텔 방으로 불렀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요. 조선업을 살려야 하오.” 거듭된 설득에 신동식은 진정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귀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박정희는 신동식을 초대 경제수석에 앉혔다. 파격이었다.

 

K조선은 그렇게 싹을 틔웠다. 서방 선진국들은 “기술도 없는 한국에 무슨 차관이냐”고 혀를 찼지만, 거북선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로 설득하며 밑천을 빌린 현대 정주영, 대우조선해양의 김우중, 포항제철 박태준 등 당대 기업인들의 전설 같은 경영 일화는 황무지에 놓인 K조선에 단비와 비료가 됐다. 무엇보다 이름 없이 밥벌이를 위해서, 부모와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마음 한편에 ‘조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이 악물고 묵묵히 일한, 그러다 일터에서 목숨도 잃고 만, 수십 년간 수많은 ‘애국 근로자’가 지금의 K조선을 만들었다.

 

경제·통상과 첨단 기술 전쟁의 시대다. 트럼프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한 말마따나 내밀 ‘카드’가 없으면 나라 명운이 갈리는 살벌한 시대다. 트럼프는 작년 11월 당선 직후 첫 한미 정상 통화에서부터 조선을 콕 집어 협력하자 했는데, 역시나 지난달 말 ‘관세 핵폭탄’ 협상에서 우리의 최대 무기는 조선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선 협력의 상징물로 트럼프에게 ‘거북선’을 선물할 것을 검토한다고 한다. ‘사업을 통해 나라에 이바지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정신이 더 엄중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열사(烈士). 국어사전은 ‘나라를 위해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해 싸운 사람’이라 정의한다. 조선업 등 각 일터에서 땀과 노력으로 나라의 기틀을 세운 이들을 ‘산업 열사’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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