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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부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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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철학 산책 

나이 들수록 혼자가 행복한 이유

 

백년을 훌쩍 넘긴 세월을 살아 낸 한 노교수가 조용히 인사를 드립니다.

 

이 밤 혼자 거실에 앉아 있거나 불을 끄고 누웠는데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천장을 바라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아마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빈 듯 한 느낌을 아실 겁니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 왜 이렇게 곁이 허전할까 젊은 날 제 연구실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제자들 동료들 술잔을 기울이며 밤을 세우던 친구들 우리는 영원할 것처럼 웃었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하나 둘씩 멀어졌습니다. 어떤 이는 이해관계 앞에서 등을 돌렸고 어떤 이는 제 성공을 시기했고 또 어떤 이는 제가 기대했던 순간에 침묵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깊이 상처받았습니다. 내가 사람을 잘 못 본 것인가 내가 부족했던 것인가 수없이 자문했습니다.

 

그러나 100년을 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그 허무함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생이 불필요한 가지를 스스로 처내는 과정이었습니다. 나무가 겨울을 맞기 전에 잎을 떨구듯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관계가 정리됩니다.

 

그것은 벌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렇게 배웠습니다. 진심은 통한다 베픈 만큼 돌아온다. 오래된 인연은 배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교과서와 다릅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동시에 놀랄 만큼 단순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우선에 둡니다. 상황이 바뀌면 태도도 바뀝니다. 저는 이것을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하며 확인했습니다.

 

기업을 일으킨 제자도 정의를 외치던 동료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겠다던 친구도 이해관계가 얽히자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이 곤 했습니다.

 

그때 저는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게 말합니다. 그것은 특별히 그 사람이 악해서가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조건입니다. 우리가 상처받는 이유는 상대의 본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위에 기대를 얹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만큼 했으니 저 사람도 나를 위해 해주겠지 그 기대가 무너질 때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저는 한 때 오랜 법과 돈 문제로 등을 돌린 적이 있습니다.

 

30년을 형제처럼 지냈던 사람입니다. 저는 그가 끝까지 의리를 지킬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안위를 택했습니다. 젊은 저는 밤새 술을 마시며 배신을 곰씹었습니다.

 

허지만 세월이 흐른 뒤 깨달았습니다.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의 본성을 드러냈을 뿐이라는 것을요.

 

여러분 지금 곁에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자책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축하받을 일입니다. 가짜 기대가 걷히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양이 아니라 밀도로 남습니다.

 

수십명의 지인이 아니라 단 한명의 동행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때론 그 한 명조차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공백은 두려워할 구멍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들어설 자립니다. 저는 제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 아무도 믿지 말자가 아니라 아무에게도 과도하게 기대하지 말자라는 결심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기대를 내려놓자 분노도 함께 줄어들었습니다. 누군가 도움을 주면 감사했고 주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본래 그런 존재라는 이해가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100년을 살아보니 관계의 붕괴는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성숙의 통과 의례였습니다. 우리는 결국 사람을 통해서 상처받고 또 사람을 통해서 배웁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그 경험을 해석하는 나 자신의 깊이입니다. 혹시 오늘 밤 왜 이렇게 혼자인가 하고 마음이 시린 분이 계십니까 그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보십시오.

 

이제 무엇을 비워냈는가 비워진 자리에는 반드시 진짜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진짜는 대부분 타인이 아니라 오래 동안 미뤄두었던 자기 자신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깨닫습니다. 관계를 지키는 힘은 마음의 크기가 아니라 거리에 정확함이라는 것을요 젊은 시절에 저는 정반대였습니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하면 제 일처럼 나섰고 부탁을 거절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은근한 자부심이었지요. 그러나 그 칭찬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처음 한번 도와주면 고맙다며 두 손을 잡습니다. 두 번 째는 당연하다는 표정이 되고 세 번째부터는 말이 짧아집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제가 사정상 거절하자 이런 말이 돌아왔습니다.

 

교수님 예전에는 안 그러셨잖아요.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쌓아온 것이 존중이 아니라 기대였다는 사실을요.

 

100년을 살며 수천 명의 제자와 동료를 보았습니다.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은 존경 받기 보다 소모됩니다.

 

늘 맞춰주는 사람은 신뢰 받기 보다 이용됩니다. 인간은 잔인해서가 아니라 익숙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합니다.

 

반복된 호의는 권리로 변합니다. 저는 이것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형제 사이에서도 말입니다. 특히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우리는 선을 가장 쉽게 넘습니다. 가족이니까 이해하겠지, 부모니까 참아야지, 자식이니까 희생해야지.

 

그러나 가장 깊은 상처는 종종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생깁니다. 저는 노년에 접어든 제자들이 상담하러 올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산문제로 갈라선 형제 기대를 감당하지 못해 부모와 멀어진, 자식 은퇴 후 배우자와 낯설어진 부부 문제의 핵심은 애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계가 없어서였습니다.

 

저는 어느 날부터 정중한 무관심을 연습했습니다. 이것은 차갑게 등을 돌리는 태도가 아닙니다.

 

예의는 지키되 내 내면에 깊은 방은 함부로 열지 않는 태도입니다. 웃으며 인사하지만 나의 약점과 욕망과 두려움까지 다 내어놓치는 않습니다.

 

상대를 통제하려 하지도 않고 나를 설명하려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 거리를 지키자 관계는 오히려 오래 갔습니다.

 

제가 젊은 교수였을 때 한 동료와 심하게 다툰 적이 있습니다.

 

그는 감정이 상한 채 절교하다시피 헤어졌지요. 몇 년 뒤 그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망설이다가 거리를 둔 채로 악수만 했습니다. 예전처럼 모든 것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이 냉정해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월은 증명했습니다. 변하지 않은 본성은 상황이 비슷해지자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모든 문을 다 열어두었다면 상처는 반복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환경이 잠시 바꿔 놓는 것처럼 보여도 본성은 조용히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용서는 하되 경계는 풀지 말라고. 마음으로는 미워하지 않되 인생의 중심에는 다시 들이지 말라고. 그것이 나를 지키는 지혜입니다.

 

요즘 사회를 보면 관계의 필요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중장년층에게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은퇴 후 급격히 증가한다고 합니다.

 

직장을 떠나고 나면 관계의 상당수가 사라집니다. 그 공백을 메우려 무리하게 모임에 나가고 원치 않는 자리에도 얼굴을 비춥니다. 그러나 억지로 붙잡은 관계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존감만 깎입니다.

 

저는 제 제자들에게 늘 말할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함부로 할수 없는 사람이 돼라. 무리한 부탁은 단호히 거절하십시오. 설명을 길게 하지 마십시오. 단호함은 자기 존엄의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부드럽지만 경계가 분명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고슴도치 이야기를 저는 참 좋아합니다. 추위를 피하려 다가섰다가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또 떨어졌다가 다시 다가오는 그 반복 끝에 적당한 거리를 찾는 이야기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너무 멀면 외롭고 너무 가까우면 다칩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밀착이 아니라 상처없이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간격입니다.

 

모든 사람과 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몇몇과는 가볍게 몇몇과는 오래 그리고 대부분과는 예의 있게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관계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정제되는 것입니다. 남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품질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당신 자신이 서 있어야 합니다.

 

이제 부터는 조금 더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람을 정리하고 거리를 세우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고요가 찾아옵니다.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 밤 약속이 비어있는 주말 더 이상 나를 찾는 이가 많지 않은 시간 많은 이들이 그 순간을 두려워합니다. 이렇게 혼자 남는 건 아닐까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예순을 넘기고 연구실을 정리하던 날 책장을 정리하는 손이 잠시 멈췄습니다. 수십 년을 오가던 제자들의 발걸음 소리가 사라지고 강의실의 열기가 사라지던 그 때 제 마음 속에 스며든 것은 해방감이 아니라 공허였습니다.

 

그 공허를 저는 한동안 외로움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100년을 살고 보니 외로움과 고독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외로움은 타인이 나를 채워주지 않을 때 느끼는 결핍입니다. 그러나 고독은 내가 나 자신과 마주하는 충만입니다. 외로움은 수동적인 상태이고 고독은 능동적인 선택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우리는 평생 사람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요즘 사회는 고독을 병처럼 취급합니다. 혼자 밥먹는 것을 불쌍히 여기고 혼자 여행가는 이를 외로운 사람으로 단정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에 들어오면 테레비전을 켜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끝없는 영상과 소음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습니다. 조용함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생각과 마주하기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젊은 날 일부라 사람들 속에 자신을 던지곤 했습니다. 강연모임 토론 술자리 집으로 돌아와 불을 끄면 괜히 허전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허전함이 타인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과 낯설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요.

 

어느 해 겨울 큰 병을 앓으며 몇 달간 혼자 지낸 적이 있습니다. 방문객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저는 하루에 한 시간 씩 조용히 앉아 제 인생을 되짚기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선택 미처 사과하지 못한 일 괜히 경쟁했던 순간들 그 시간은 쓰라렸지만 동시에 맑았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저 자신과 진짜 대화를 나눴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끊임없이 긴장합니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분위기를 맞추고 때로는 본심을 숨김니다.

 

사랑하는 가족 앞에서도 완전한 솔직함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생 타인의 시선 속에서 조금씩 연기합니다. 그러나 혼자 남은 순간 그 가면은 필요 없습니다. 노년에 찾아오는 고독은 그래서 축복입니다. 더 이상 증명할 필요도 과시할 필요도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이름 앞에 붙던 직함이 사라져도 괜찮습니다. 박수소리가 멀어져도 괜찮습니다. 남는 것은 직함이 아니라 인격이고 박수가 아니라 내면에 평온이기 때문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은퇴 후 가장 큰 우울의 원인은 경제적 문제보다 역할 상실이라고 합니다. 쓸모없어진 느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착각. 그러나 저는 단호히 말합니다.

 

역할이 사라진 것이지 존재의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우리는 진짜 자신으로 살 기회를 얻습니다. 저는 고독 속에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남에게 가르치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한 독서였습니다.

 

작은 화분을 가꾸며 흙을 만졌고 오래 전 포기했던 바이올린을 다시 꺼냈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 시간은 타인을 향한 연주가 아니라 제 마음을 위한 연주였으니까요.

 

내면이 빈 사람은 혼자 있으면 지루해집니다. 그래서 계속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내면이 채워진 사람은 혼자 있어도 풍요롭습니다.

 

친구가 줄어들고 약속이 적어졌다면 그것은 공허의 증거가 아니라 깊이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혼자 밥 먹는 날이 늘었다면 식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결국 혼자 태어나 혼자 떠납니다.

 

그렇다면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요? 고독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고독을 누리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도 단단히 설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 곁에는 건강한 인연이 오래 남습니다. 이제 우리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야 될 것 같습니다.

 

100년을 살면서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교수님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젊은이도 중년의 가장도 은퇴를 앞둔 동료도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답을 정해 놓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돈이 조금만 더 많아지면, 자식이 성공하면, 남들처럼 인정받으면 햄복해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 역시 젊은 날에는 그랬습니다.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논문, 더 큰 영예 목표를 이루는 순간은 찌릿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곧 좀 더 높은 산이 보였고 또 다시 비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참으로 정직합니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원하고 둘을 얻으면 셋을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가 들수록 행복을 다르게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무엇을 더 갖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크게 잃을 것이 없는 평온한 상태라고. 몸에 큰 병이 없고 당장 빚에 쫒기지 않으며, 마음을 짓누르는 원한이 없다면 그것이 이미 큰 복이라는 사실을 우린 자주 잊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사회의 중장년층이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불안이라고 합니다.

 

노후자금 건강 자녀문제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실제 생활수준이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음에도 불안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비교의 범위가 넖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동네 사람과 비교했다면 이제는 화면 속 수많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남의 화려한 일상은 쉽게 보이고 그 이면의 고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제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라. 이것은 비겁한 자기위안이 아닙니다. 마음을 지키는 전략입니다.

 

병실에서 투병하는 이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 전쟁과 재난 속에 놓인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지금 따뜻한 방에서 숨쉬고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세삼 느껴질 것입니다.

 

우리는 손가락에 작은 가시 하나만 박혀도 온몸의 건강을 잃습니다. 마찬가지로 아홉 가지가 괜찮아도 한 가지 부족함에 매달려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동창모임에서 친구의 사업 성공 이야기를 듣고 지인의 자녀가 대기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쓰립니다. 나는 무엇을 했나 그런 생각이 스며듭니다.

 

그러나 100년을 살아보니 그토록 빛나 보이는 삶이 반드시 평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자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잠을 설쳤고, 권력자는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자식이 크게 성공한 집안에도 말 못할 갈등은 존재했습니다. 화려함은 종종 불안과 함께 옵니다.

 

반대로 조용하고 소박한 일상은 겉보기엔 평범해도 속은 단단합니다.

 

행복을 쾌락의 크기로 재면 우리는 늘 부족합니다. 그러나 고통의 부재로 재면 이미 충분한 날이 많습니다. 오늘 큰 사고 없이 하루를 마쳤다면, 사랑하는 이가 무사하다면, 밤에 잠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욕망을 줄이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자유입니다. 저는 한 때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씩 내려놓으며 깨닫습니다.

 

적게 가져도 괜찮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 마음이 평온하다면 그것이 진짜 이익입니다.

 

여러 분 비교의 독을 끊으십시오. 남의 속도를 기준으로 자신의 인생을 재지 마십시오. 우리는 각자의 계절을 살아갑니다. 봄에 피는 꽃이 있고 늦가을에 피는 꽃이 있습니다. 늦게 핀 꽃이 더 깊은 향을 내기도 합니다.

 

행복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고통이 잠잠한 하루입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생은 훨씬 가벼워집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인생의 후반전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저는 올해로 102번째 겨울을 맞았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인생이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거울 속에 제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주름이 깊어지고 눈빛은 차분해졌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전반전은 이미 끝났고 나는 후반전을 살고 있구나.

 

축구경기를 보십시오. 전반전은 체력과 속도로 뛰지만 후반전은 경험과 전략으로 움직입니다.

 

인생도 같습니다. 젊을 때는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사회적 기대를 위해 달립니다. 인정받고 싶고. 뒤쳐지기 싫고. 남들보다 앞서고 싶습니다.

 

그러나 후반전은 다릅니다. 이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합니다. 저는 오래 동안 아버지 교수 선배라는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그 모든 호칭이 하나씩 제 곁을 떠날 때 비로소 남은 것은 한 인간으로서의 저 자신이었습니다.

 

우리는 평생 누군가의 역할로 살다가 정작 나 자신으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나이를 먹습니다.

 

그래서 혼자가 되면 당황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겉에 남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배우자도 자식도 친구도 아닙니다. 거울 속에 나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생 왜 그 사람을 돌보지 않았을까요. 왜 남에게 베풀었던 친절과 배려를 정작 자신에게는 아끼고 살았을까요.

 

저는 일흔을 넘기고 나서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가, 놀랍게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평생 남의 기대에 맞춰 살다보니 제 취향과 욕망은 묻어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아끼던 옷을 특별한 날이 아니라 평범한 날에 입었습니다. 누군가의 허락 없이 제 마음이 기뻐하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지 마십시오. 자식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잠시 우리를 거쳐 가는 생명입니다.

 

그들의 성공이 우리의 구원이 아니고 그들의 선택이 우리의 실패도 아닙니다.

 

배우자에게도 과도하게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 또한 한 인간으로서 불완전합니다. 서로 기대되 기대어 무너지지 마십시오.

 

대신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십시오. 그것이 진짜 흙을 만지는 정원일수도 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일 수도 있으며 악기를 배우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원이 아니라 나를 숨쉬게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아흔이 넘어 작은 텃밭을 가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며, 기다리는 그 시간은 제게 큰 위로였습니다.

 

인간도 그렇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천천히 잘 하면 됩니다.

 

노년은 상실의 계절이 아니라 정화(淨化)의 계절입니다. 내 젊은 날의 경쟁심 과도한 욕망 인정받고자하는 갈증이 하나씩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 고요가 들어옵니다.

 

이것은 쓸쓸함이 아니라 해방입니다. 가면무도회(假面舞蹈會)가 끝나고 가면을 벗은 얼굴로 서있는 시간 그것이 노년(老年)입니다.

 

혹시 지금 혼자라고 느끼십니까? 혼자일 때 우리는 가장 온전합니다.

 

관계(關係)의 소음(騷音)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자신의 심장소리가 또렷이 들립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것이 남은 인생의 나침판이 될 것입니다. 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는 겉보기엔 외로워 보이지만 땅속에서는 누구보다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인생의 후반전은 끝이 아니라 깊어지는 시간입니다.

 

이 긴밤 제 이야기가 선생님의 마음에 작은 등불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단단한 나로 서십시오. 남에게 기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걸어왔고 충분히 잘 살아냈습니다.

 

고요한 자유(自由)를 누리십시오. 그 자유 속에서 당신은 가장 품격(品格)있는 사람입니다.

 

(2026. 2. 16 발췌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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