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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부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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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탕


                                                         오 세 윤





 안면도 ‘나문재 팬션’에 가는 길에 먼저 백사장항을 들렀다. 회를 곁들여 점심요기를 하고 들어갈 요량에서였다. 혹 민어가 있을까 싶어 수협엘 들렀지만 우럭과 광어뿐 대하도 때가 일러 나온 게 없었다. 대신 꽃게가 풍성했다. 입구에서부터 대짜배기 꽃게들이 가득 담긴 대형 물통들이 줄을 이어 늘어서 호기심어린 손님들의 시선을 막무가내로 잡아끌었다. 싱싱했다. 바로 앞 식당에서는 휴가를 나온 듯싶은 장병들이 점심으로 먹는 꽃게탕의 달큼 구수한 냄새가 흐무지게 흘러나와 코끝을 자극했다. 구미가 당겼다.




 아내의 동의를 얻어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가게 앞에 놓인 커다란 함지박에도 커다란 꽃게들이 그들먹하게 담겨 소란스럽게 버걱대고 있었다. 의망공(倚望公)이란 별명에 걸맞게 두 눈을 곧추세워 사특하게 굴리며 보다 안전한 자리를 찾아 서로의 등딱지를 타고 넘으며 구석자리를 파고드느라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위험을 겁내 곁눈질로 사방을 살피는 모양새를 왜 ‘잘못된 것을 바란다.’는 뜻으로 해석해 의망공이라 이름 붙였는지 그 이유를 알 듯한 거지였다.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던 장병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진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귀를 세웠다. 요 삼사일 전 방송에 나온 병역비리문제로 언성들을 높이고 있었다. 어깨탈골수술과 병역기피, 결론은 일방적으로 귀결된다. ‘비겁하다’는 것. 어떻게 어깨탈골이 그렇게 많을 수 있느냐며 분개하는 얼굴, 없는 사람만 억울하게 당한다는 허탈해하는 얼굴들. 연유야 어쨌거나 그들 모두 바로 바라보기가 어쩐지 민망했다. 




 정확한 병명 ‘견관절 습관적 탈구’. 운동이나 일을 하다 다쳐 한번 탈구가 되면 습관적으로 재발하는 후천성 질환. 그리 흔한 병은 아니지만 어느 분야의 권위다 하여 유명해지면 말짱 그곳으로만 모여드는 세태인심을 감안할 때 한 병원에 수술이 집중된 것을 의아하게 볼 수만도 없기는 하다. 더욱이나 수술의에게도 의사로서의 양심이 있고 징병 당사자에게도 추후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무책임하게 처신하지는 않았을 테니 무어라 꼭 집어 단정 짓기는 힘들겠다. 하지만 병역을 면제받고 난 후 그가 몸을 움직여야하는 사회생활을 지장 없이 해 왔다면 세인의 의심을 받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을까.

 




 꽃게탕 앞에 저기압인 그들에게 비겁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나의 동문 한 사람도 바보같이 굴었지만 잘 됐다고, 더 잘 되고 더 행복하다고 말해주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까. 지난번, 대학졸업 40주년 여행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들은 무어라할까.


 남해의 식당에서 꽃게탕을 먹으면서 졸업 후 처음 고국을 찾은 재미동문 H가 꽃게탕에 코를 박다시피 정신없이 먹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조강희교수가 불현듯 생뚱맞은 소리를 했었다. “난 이런 게 찌개를 실컷 먹은 것만 가지고도 여기 머물러 살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해. 게장도 그렇고- .게를 먹을 때가 젤루 행복하단 말야. 하 하”


 의아해서 쳐다보는 동문들에게 그는 모처럼만에 자기의 지난 이야기를 털어놨다.

 








 우리들이 졸업한 60년대에는 킴스플랜(Kim,s Plan)이란 국가시책이 있었다. 의료의 수급과 선진화를 위해 국내의 종합병원이나 미국에 건너가 전공의 수련을 받는 동안 병역이 임시 보류되는 제도.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 미국의 발전된 의술을 습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졸업과 동시 근 40명의 동기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그들은 수련이 끝나고도 돌아오지 않았다. 가난하고 낙후된 국내에 다시 들어와 군복무로 4,5년을 허비한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어리석은 짓이었다. 결국 두 사람만이 귀국하여 군복무를 마쳤다. 박용호와 조강희. 박동문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조동문만 그대로 국내에 남아 종합병원에 취업했다.

 








 “미국에 건너가 첫 월급으로 275불을 받으니깐 기분이 황홀해지더라고. 담배 한 보루가 2불이 채 안되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거금이지. 게다가 모두가 선망하던 나라에 와서 먹고 자는 것도 다 공짜니 돈 쓸 일이 없데. 우리중의 몇몇은 달마다 꼬박꼬박 100불씩을 집으로 부쳤지. 덕분에 고국에선 동네효자란 소리까지 듣고. 수련과정이 끝나고 신선생(조동문은 같은 동문인 부인을 꼭 신선생이라 호칭하고 우리들은 학창시절처럼 여전히 신군이라 부른다.)과 혼례를 올리면서 둘이 향후 진로를 의논했지. 우선 귀국해 군복무를 마치고 상황에 따라 앞날을 결정하기로 했어. 함께 건너간 친구들이 안가도 되는데 왜 바보같이 들어가 군에서 4,5년씩 썩으려하느냐고 비웃고 난리들을 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어. 신선생이 더 단호했다네. 들어와 수도육군병원에 배치되어가서 처음 들은 소리가 뭔 줄 알아? 용호는 바보 1호, 나보고는 바보 2호래.


 집에 돌아와 그런 말을 하니깐 신선생이 하는 말이 좀 바보가 되면 어떠냐.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제일 아니냐. 자기도 취직을 하면 그곳만큼은 못돼도 사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며 아예 눌러앉아 살자고 하데. 열심히만 살면 어디를 가서 사나 문제될게 없다며 귓등으로 흘려버리라더군. 너희들이 병역기피자가 되어 20년이 넘게 국내에 들어오자 못해 부모의 임종도 못하는 걸 보고서야 아, 내가 진정 효도를 했구나 하는 걸 깨달았지.”


 술잔을 비우며 유쾌하게 웃던 조동문의 얼굴을 떠올리는 사이 꽃게탕이 맛있는 냄새를 내며 끓는다. 한술 떠 맛을 살핀다.

 








 병역기피가 부귀영달에 이어지는 첩경이라면 뉘라 그 유혹을 쉽게 뿌리치랴. 이런 이를 공인이 되도록 허용하는 당국과 게의 속살처럼 유야무야하게 묵인하는 사회가 미숙하여 슬프다. 비겁하지 않고도 성공적으로 인생을 산 바보 의사, 아니 인생 모범생 조교수. 백병원 원장을 지내고 퇴직한 동문은 70이 된 작금에도 현역에서 여전히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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