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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부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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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아침 동아일보 아래의 기사를 보고 건청궁에 가보기로했습니다. 점심 후 남편과 경복궁으로.

그동안 복원한 경복궁의 건축물들도 다 좋았지만 처음본 건청궁은 '참하고 예쁘네!' 라는 감탄이 나올정도로 들어가 살아도 좋을듯 맘에 들었습니다.

선사회에서 경복궁 출사했던 날 연못 가운데의 향원정을 잡으려하면  그 뒤의 뭔 경비사인가 하는 네모난 건물이 보여서 찍기를 망설였는데

그 중간에 건청궁과 集玉齋 건물이 어느정도 막고있어서 훨씬 보기 좋았습니다.

경복궁을 복원한것이 얼마나 뿌듯하고 좋은지...

이 날 사방에서 일본말 가이드가 설명을 하던데 명성황후에 관한 이런 부분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건청궁 주변만 올려보겠습니다.

▼ 경회루 부터. 사진 오른쪽 담 사잇 길로 주욱 들어갑니다.



 


▼ 이런 문을 몇번 지나서 청와대 앞길이 되는, 거의 현재 경복궁의 뒷 담까지.



▼ 향원정. 몇년전에는 향원정을 찍으려면 뒤의 뭔 경비사인지 하는 건물까지 잡혀서 안찍었었는데... 



▼ 집옥재를 한장으로 편집, 향원정 뒷편, 왼쪽에 집옥재, 오른쪽에 건청궁.



 


▼ 건청궁 안에, 고종의 처소인 장안당



  


▼ 오른쪽의 명성황후 처소에서 저 복도를 지나 고종 처소로 가시다가 당하신듯.



▼ 명성황후의 처소인 곤녕합(坤寧閤)은 이 뒷건물(와서 보니 아차 안찍었네요.) 뒷건물에 윗사진의 복도가 연결. 



 


▼ 건청궁 오른쪽의 얕으막한 언덕이라기보다 흙 더미. 이곳이 녹산(鹿山)인듯.(아래 기사 참조)



 

 

 

'건청궁(乾淸宮) 감싼 하얀 눈은 망국의 비극을 잊지말라 하네'(2010.01.11.동아일보)

 


■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되짚어본 을미사변 현장
운요호사건… 청일전쟁… ‘국력쇠약 대가’  왕실 짓밟히고 국모 피살되는 수모까지
, 사과는커녕 역사의 진실마저 은폐

 







“저기가 피살 현장”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가 지난해 12월 29일 경복궁 내 장안당 뒷마당에서 명성황후가 살해되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괴한들은 대원군의 입궁을 소리쳐 왕과 궁인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그 틈에 일부는 곤녕합으로 침입했다. 왕은 장안당의 마루로 오르려는 자들을 직접 가로막았지만 괴한들은 왕의 어깨마저 함부로 밀쳤다. 이때 곤녕합에서는 한 여인이 궁녀들과 함께 장안당과 연결된 복도로 들어섰다. 좁은 복도를 다 지나 왕이 있는 장안당 마루 입새에 이르렀을 때, 뒤를 쫓던 괴한 중 하나가 그의 덜미를 잡았다. 그러곤 뒤뜰로 끌어내린 뒤 칼로 내리쳤다. 쓰러진 사람은 왕비였다. 칼을 휘두른 장본인은 일본 육군 소위 미야모토 다케타로(宮本竹太郞)였다는 사실이 최근 새로 밝혀졌다. 일왕의 명령을 따르는 일본 군부가 을미사변을 일으킨 것이다.


지난해 12월 29일 건청궁에는 그 비극을 감싸 위로하려는 듯 눈이 내리고 있었다. 괴한들의 침입도(사건 당시 우치다 사다쓰치·內田定槌 일본 영사가 작성)와 비교하며 둘러본 장안당의 뒤뜰과 곤녕합의 복도는 ‘100여 년 전의 역사를 제대로 직시하라’고 요구했다.


○ 대본영의 지시로 왕비 시해


괴한들은 왕비의 시신을 곤녕합의 옥호루(玉壺樓)로 옮겨 사진과 얼굴 대조를 마친 뒤 시신을 곤녕합 옆의 녹산(鹿山)으로 옮겨 나무더미를 쌓고 태웠다. 타고 남은 시신을 건청궁 앞에 있는 연못 향원정에 던졌지만 곧 수면으로 떠올라 다시 거두어 녹산 기슭에 묻었다.



최근 재일동포 여류사학자 김문자 씨는 일본 군부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연구서 ‘조선 왕비 살해와 일본인’에서 일본군 최고사령탑인 대본영(大本營)이 왕비 살해를 지시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현장을 지휘한 것은 8명의 육군 장교였다. 지금껏 ‘낭인’들의 소행으로 알려진 것은 ‘연막’이었다.


○ 조선 침탈의 시작, 운요호 사건


일제의 조선 침략은 을미사변 20년 전인 1875년 운요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8년 일왕 옹립 후 유신세력이 가장 먼저 창설했던 해군은 1874년 대만 사건에 이어 1875년 9월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조선 침략 야욕을 드러냈다.


2002년, 그간 일본 방위청 자료관에 깊이 묻혀 있던 운요호 함장의 제1차 보고서가 서울과 일본 도쿄에서 논문을 통해 동시에 공개됐다. 보고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운요호 사건의 내용이 거짓이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배는 일본의 주장과는 달리 처음부터 국기를 달고 있지 않았다. 조선 포대의 발포는 정당한 것이었다. 일본 외무성은 도쿄 주재 서양 외교관들의 사건 설명 요구에 대비해 나가사키에 있던 함장을 불러올려 보고서를 고쳐 쓰게 했다. 중국 랴오둥(遼東)으로 가던 중 식수가 떨어져 국기를 달고 접근하였다는 거짓 내용은 이때 들어갔다.


역사의 진실이 감추어진 근대 한일관계사는 여전히 많다. 가해자가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제대로 정리해 두지 않으면 화해의 의미도 그만큼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 청일전쟁 직전에도 궁중 침입


일본은 청국과의 일전을 위해 1889년 징병제를 개정해 병력 규모를 3만 명에서 36만 명으로 대폭 늘렸다.


1894년 초여름 동학농민군 봉기 진압 명분으로 양국의 동시 출병이 이루어졌다. 이때 일본군 1개 혼성여단(8000명)은 동학군의 활동 근거지인 전북 전주 쪽이 아니라 서울로 향했다. 농민군 봉기에 대한 근본 대책으로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 정부는 이에 강력히 반발했다. 일본 측은 회유를 거듭하다가 7월 23일 0시 30분을 기해 여단 병력이 도성을 둘러싼 가운데 1개 대대 병력을 경복궁 안으로 투입해 왕을 포로로 삼다시피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 대륙 침략을 위한 준비


일본군은 1894년 6월 5일 동시 출병 때 이미 청국과의 전쟁을 각오하고 대본영을 설치했다.


1895년 4월,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일본군은 철수를 꺼렸다. 일본 군부는 전신선 관리를 위해 1개 대대 규모 이상의 병력을 주둔시키기를 바랐다. 조선 국왕과 왕비는 이를 거부하고 전면 철수를 요구했다. 이에 대본영은 육군 중장 출신의 미우라 고로(三浦梧樓)를 조선 공사로 임명하고 그에게 왕비 살해의 밀명을 내렸던 것이다.


을미사변을 전후로 한 일련의 사건은 일본 군부가 주도했음이 명확하다. 국력의 쇠약은 우리 왕과 왕비의 안방까지 군홧발에 짓밟히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이어졌다. 사건이 있은 지 한 세기가 넘었지만 건청궁의 뒤뜰과 복도, 녹산의 기슭은 비운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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