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옛날 Europe 여행기 #11
2010.03.19 03:51
6/13/2005 (월요일) Saint- Malo
어제밤 늦도록 이곳 해변의 저녁 경치를 즐기다가 근처 산장같이 생긴 hotel 에서 묵었다.
가능한한 여행중에 local TV 라도 많이 보아서 짧은 시간 동안에 이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빠리 떠나면서 부터 참말로 유랑민 신세가 되어 늦은 시간에
hotel 에 들면 씻고, 잠자기 바쁘다.
이 hotel도 자그마하고, 미국식으로 치면 motel 같은 규모인데 아주 깨끗하고,
필요한것은 다 갖추었다. 이제껏 묵던중 제일 멋있는 집이다.
좀 더 시간 여유있어서 근처 동네도 걸어 보고 즐기지 못하는것이 큰 유감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자존심 세다고 하더니 하고 사는것을 보니까 과연 그런말이 나올만도 하다.
아침 7시, 예의 프랑스식 아침 식사를 부지런히 끝낸후 짐 보따리 다 싣고, 근처에 있는
Mont St. Michel 로 향했다.
이곳은 커다란 바위섬으로 원래는 숲속에 솟아 있는 높은 산이였으나 해일 때문에 섬이 되었다고 한다.
조수의 차가 심해서 물이 들어 오면 섬, 물이 빠지면 걸어 갈수 있는곳인데
밀려 오는 조수로 섬 전체가 물에 잠긴적도 있다고 한다.
이 바위섬 꼭대기에 서기 900 년대에 세워졌다는 수도원이 있고, 그 밑 경사진 언덕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城門을 들어서니 아침 시간인데도 어둑 컴컴하고, 비탈진 거리로 작은 마을이 시작되었다.
길 양쪽으로는 온갖 기념품점, 식당들이 가득 차있고, 그 경사진 길을 걸어 오르고,
돌로 만든 층계를 한참 올라가서 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에 닿았다.
역시 좀 어두운 성당안은 그리 크지 않고 수도원답게 나무 의자등, 검소하게 꾸며져 있다.
그 안을 몇번 돌아 보고, 의자에 앉아도 보고.
다시 밖에 나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경치를 보았다.
뜰에 심어진 이름 모를 꽃들, 나무들이 中世式 수도원의 돌담, 돌층계들을 배경으로
어울려진 경치가 화창한 날씨에 꿈속처럼 아름다웠다.
이곳은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유적지중 하나이고, 오늘 춥지도 덥지도 않은 화사한 봄 같은
날씨 때문인지 크게 북적이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관광객이 좀 많은 편이였다.
또 엽서 몇장 사고, 근처 식당에서 Salad, fish, bread, chcolate dessert 등,
꽤 괜찮은 프랑스식 점심을 먹고는 다시 빠리로 서둘러 떠나야 했다.
뻐쓰 안에서는 차라리 시간 여유가 있어서 guide가 주로 설명도 겸해서 entertain 하는데
우리도 한사람씩 나가서 자기 소개도 하고, 노래도 했다.
빠리에 왔다고 한 교도님이 무척이나 옛날에 들어본 한글판 샹송을 불렀다.
"술에 빠진 파리, 왕십리 銅 파리, .....
건지지 말아라, 취하게 놔둬라.
파리도 취하면 기분이다.
술에 빠진 파리..."
일행의 대부분이 교무님들이라 다들 아침 새벽 일어나는 것은 기본이고, 행동 빠르고,
규칙 엄수 확실하다.
그런데 한가지 우수운것은 일단 뻐쓰에 탔다고 하면 금방 식사 하고 왔는데도
여기저기서 사탕, 과자는 물론 오징어, 멸치, 구운김, 다시마 쪼각, 둥글레 누릉지, 껌등,
심심풀이 간식을 돌리는 것이였다.
오징어는 외국인 뻐쓰 운전사들이 아주 싫어 한다고 해서 곧 금기품이 되어 버렸지만 어떤분은
전날 저녁 식사로 나온 알 감자까지 싸들고 다니셔서 놀랬다.
아마 음식이 잘 안 맞거나 충분히 앉아서 즐길 시간이 없어서 였는지?
아니면 그냥 버릇인지?
우리는 당장 먹을 생각은 없어도 인사로 다 받아서 구석구석 꿍쳐 넣었다.
속으로는 그 무궁무진한 간식 idea 에 놀랬고, 한국적인 것은 반가웠다.
그러나 종일 먹으며 다니는건 좀 그렇다.
저녁때가 다 되어 드디어 빠리 역에 도착했다.
여기서 T.G.V. 편으로 Macon으로 출발한다.
마콩에서 다시 뻐쓰를 타고 Taize 공동체로 가기 위해서다.
지금은 한국에도 있다는 이 high speed train (T.G.V.)은 내부는 허름한데 우리는 고속인줄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Table 하나에 몇몇 교무님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며 가는데 저녁으로 한국식 도시락이 나왔다.
오랫만에 보는 도시락은 반가우나 미국에서 값싸게 얼렸다가 파는, 내가 싫어하는 생선튀김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실망이였다.
무엇보다 반찬이 모자라서 어느 교무님이 가져온 tube에 들은 고추장을 얻어 먹었다.
Tube에 들은 고추장! 여행하는데 딱 맞는 참 좋은 idea 라고 감탄하면서.
Taize
마콩에서 뻐쓰로 포도밭 길을 한참 지나 저녁 7시가 넘어 떼제 공동체에 도착했다.
사전 지식없이 도착한 이곳은 넓은 마당 주위에 군데군데 낮은 건물들이 서 있고.
한 30세쯤 되어 보이는 한국인 수사, 신한렬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준다.
우선 저녁이라고 큰 여물통에 담긴 Pasta 한 접시와 농약 없이 자란것 같은 작고,
딱딱하고, 못생긴 사과 한개씩 나누어 주는데 나는 pasta는 사양하고 사과 하나를 받았다.
저녁을 기차에서 먹고 오길 잘했다.
그 여물통을 보니까 입맛이 다 달아나 버린다.
마당 한 가운데 서있는 나무밑의 평상에 앉아 사과를 먹으며 여기저기 둘러보고,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오늘밤 도데체 어디가서 씻고, 잠을 자는것인지 황당하기가
꼭 옛날 사대부고 시절에 농촌계몽 갔을때 같다.
곧 밤 8시가 되어 밤 기도에 참석한다고 다들 교회로 갔다.
어둑컴컴한 교회에는 의자도 없고, 바닥에 푸대같은 헌겊을 깔고 앉게 되어 있는
넓은 헛간 같은 건물이였다.
그러나 앞에는 붉은색 천들을 길게 드리우고 여러개의 등으로 꾸며 놓은것이
아주 특이하고, 예뻤다.
꼭 Christmas 를 맞아 특별히 꾸며 놓은것 같았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부르는 뜻 모를 성가는 더욱 가슴 저리게 와 닿는다.
아~ 저분이 바로 로제 수사님이구나. 금방 알아 차렸다.
우리 앞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주로 젊은 사람들, 학생들 같이 보이는데 근처 여러 나라에서
방학중에 방문한것 같았다.
기도가 끝난후 신한렬 수사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이러했다.
이곳은 1940년에 25살의 스위스 청년 로제 수사가 기독교 종파간의 화해를 통해
세계 평화를 모색하고자 프랑스의 이 작은 마을, 떼제에 홀로 와서 시작한것이라고 한다.
그후 많은 수사들이 동참하여 단순 소박한 삶, 독신으로 살것을 서약했고,
지금처럼 수사님들이 운영하는 공동체가 되었다.
하루 3번 기도하고, 일 나누어 하고, 외부로 부터 어떤 보조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은 종교에 관계없이 온 세계 사람들이 많이 방문해서 한여름 어느때는
한 주일에 5,000 명이 모여 들기도 한다.
드디어 오늘밤 잘곳이 정해졌다.
남녀 나누어서 이층 침대 세개 있는 학교 기숙사 같은 방에 여자 6명이 들었다.
문은 잠그어 지지도 않고, shower 딸린 공동 화장실에서 양치하고,
얼굴과 발만 간신히 씻는데도 아우성이다.
이제껏 묵던곳에 비하면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느낌이였다.
장난으로 "아니, 누가 이런곳에 오자고 했어요?" 했더니 한 20 여년은 더 어리신 교무님이
정색을 하고 대답하신다.
"한국에 계신 정토 회원님 (교무의 부인)들은 얼마나 고생 많이 하시는데요.
아마 형제도 많지 않고, 고생도 안하고 크셨나 봐요."
마치 나를 고생 전혀 안해보고 살아서 투정이 심한 사람으로 이야기해서 속으로 깜짝 놀랬다.
육이오 사변으로 보릿겨도 모자라게 살아본 사람을...
또 지금도 많이 고생하는 사람을 전혀 몰라보고 말이다.
그러나 그 편이 낳아서 그냥 웃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