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옛날 Europe 여행기 #13
2010.03.27 03:58
6/15 /2005 (수요일) Chamonix Mont-Blanc.
아침 일찍 일어나 설렁탕으로 아침을 잘먹고 나서 양치도 하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교수님이 나를 찾는다고 밖에서 난리가 났다.
웬일인가 나가 보니 아닌게 아니라 남편이 너무 놀라서 말도 잘 못한다.
"아, 글쎄 빨리 나와서 이걸 보라니까."
어머나~ 나도 놀랐다.
어제 저녁 뻐쓰 안에서 보았으나 그후 한참 달려 가기에 멀어졌는줄 알았다.
그리고 여기 도착했을 때는 밤이라 보이지 않던 눈덮힌 Mont- Blanc 과 빙하가 오늘 아침에
보니 바로 집 뒤에 있었다.
맑은 아침 날씨에 실가닥같은 구름이 유유히 지나가면 잠간 가려졌다가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몽불랑. 빙하는 지금 바로 뒷산인것 처럼 지척으로 보인다.
일년 내내 눈을 업고 사는, 그래서 이름도 Mont-Blanc (하얀산) 이구나.
천천히 感이 온다.
산장 같은 집들이 서있는 거리는 무척 조용하고, 산에서 녹은 물인지 콸콸 소리내며
흐르는 개천이 집 앞에 있었다.
왼쪽으로 집 뒷쪽의 더러운 얼음판 같은 언덕이 빙하
예정대로 우리는 한국식 도시락에 사과 하나, 물 한병씩을 받아 들었다.
가져온 옷들중 제일 따뜻한 것들을 껴입고, 손에 들고, 高度 3842 m 라고 하는
L'Aiguille du Midi (에귀디미디) 등정을 떠났다.
나중에 큰 아이 Andy 에게 무심코 3842 Km **나 되는 산에 올라 갔었다니까 하는소리.
" Mom, it was 3,842 m*, not 3842 Km.
If it were 3842 Km, you would have been in the outer space." ㅎㅎ, whatever.
또 자기가 佛語 조금 배웠다고 기본 상식을 가르치는데 불어는 우선 alphabet 쓰인대로
다 발음하지 않는단다. 그건 나도 들어서 다 알고 있다.
그냥 슬슬 얼버무려 모르는건 빼고 적당히 발음해도 과히 틀리지 않겠다.
이제껏 수십년 영어 발음도 그렇게 살았으니 새삼스런 일도 아니고 자신있다.
그러나 "에귀디미디" 처럼 불어는 spelling이 너무 어렵게 생겼다.
줄서서 cable car를 타고 에귀디미디로 올라갔다.
본래 高地恐怖症이 있는데다 高山症 이야기도 많이 들었기에 나는 좀 겁이 났다.
발밑에 아찔한 경치는 대체로 외면하고, 태연하려고 애를 썼다.
Cable Car는 중간에 있는 정거장에 잠간 섰다가 다시 움직여 에귀디미디에 도착했다.
내려보니 갑자기 눈 덮힌 한 겨울이 되어 들고 온 옷들을 있는대로 다 껴입고, 새로 산 scarf,
모자까지 썼으나 부들부들 떨리고 저절로 온몸이 움추러 들었다.
앞에 더 높은 Mont-Blanc (4807 m)이 보이고, 이쪽은 Italy, 저쪽은 Swiss 하며 새로 나온
guide 가 설명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두통이 나기 시작했다.
옆에서 주는대로 nitroglycerin 같이 생긴 작은 알약 하나를 얻어 먹었다.
소위 藥師 라는 사람이 아무 준비도 없이 와서 뭔지도 모르는 약을 얻어 먹은것은
창피하지만 사정이 하도 심각하니까 허의실수로 그냥 한번 먹어 보았다.
눈 덮힌 에귀디미디
사진 한장 간신히 찍고, 무슨일 나기전에 서둘러서 중간 정거장으로 내려왔다.
여기서 부터 산허리를 따라 걸어서 내려갈 예정이였다.
이만큼 내려오니까 高山症勢도 서서히 사라지고 견딜만해져서 coffee를 한잔씩 사 마셨다.
다른 사람들이 사과를 먹기에 "뭘 벌써 먹나?" 하다가 우리도 한입 먹어 보니
그 green apple 이 꿀맛이다.
잠간 stress 받은 때문인지 목도 말랐던것 같았다.
짐도 덜겸, 둘이서 순식간에 사과 한개씩을 다 먹어 버렸다.
그 흔한 배낭하나 가져오지 않아서 물 두병, 도시락 두개 담아 손에 들고 가는 가방이
상당히 무겁게 느껴졌다. 낌새를 채고 젊은 남자 교무님 한분이 도시락 두개를 뺐어다가
자기 배낭에 담아 가지고 앞서서 가버렸다.
남편은 처음부터 이 tracking 이 자신없다고, 우린 그냥 cable car 타고 내려 가면
어떻겠느냐고. 옆에서 겁주는 이야기하니까 더 겁이 나서 세번을 물어 왔다.
나는 그동안 서울가서 산에 가 본 경험으로
"No, No, No!" 대답하고, 고집을 세웠다.
그러나 사실은 어떤 길을 가는건지 몰라 속으로는 좀 걱정이 되었다.
다만 이런 기회를 놓칠수 없다는 생각으로 남편을 설득하고, 물병들은 가방도 내가 들고,
산 허리에 난 좁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진달래, 철쭉 비슷한 꽃들, 또 다른 이름 모를 아주 작은 꽃들이 얼음속에 있다가
해가 나니까 이슬 맺혀 길 양쪽에 잔뜩 피어 있었다.
나도 날 다람쥐 흉내내어 신나게 앞서서 가다보니 가끔 한치앞이 안 보이게 짙은 雲霧에 쌓이는
산길에서 나 혼자가 되어 버린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걷기 딱 좋은 날씨에 힘들게 올라가는 것도 전혀 없고, 경사가 완만한 산길을
걸어 내려 가는데 마치 옛날, 한 겨울에 도봉산을 갔던때의 느낌이였다.
가끔 멈추어서 저밑에 가물거리는 예쁜 빨간 지붕들의 마을 경치도 내려다 보았다.
뒤에 쳐져서 교무님들과 이야기하며 오는 남편이 보이면 또 쏜살같이 달아나고.
꽃도 보고, 나뭇가지, 풀잎들도 보고, 적당히 걷는 운동으로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점심 때가 되어 잠간 길 옆에 앉아 다리도 쉬며 닭다리 튀김이 들어간 도시락을 먹었다.
남편은 "잘 걷는구먼."
칭찬도 하고, 예상보다 훨씬 수월한 산행에 기분이 좋은 모양으로 먹으면서도
이야기에 팔려 정신이 없었다.
한 두어시간 넘게 걸어서 드디어 기차 역에 닿았다.
Cable car 처럼 생긴 빨간 기차를 타고 남은 경사진 길을 한참 내려 가는데 다시 두통이 나고,
잠이 쏟아진다. Tylenol을 두개 먹고 잠간 졸았더니 감쪽같이 낳아 버렸다.
오후 3시경 샤모니에 다시 내려 왔다.
아직 해가 있으니 근처에 있는 폭포와 꽃으로 꾸며 놓은 그림 같은 산속의 까페도 잠간 들러 보았다.
몽불랑에서 녹아 내려오는 차거운 물이 콸콸 흐르는 폭포
폭포 바로 옆에 있는 몽불랑 까페
그리고는 교무님 몇분과 함께 근처 기념품 점에 가 본다고 동네를 걸었다.
집집마다 손바닥만한 채소밭을 가꾸고, 공원에서는 아이들이 암벽 등반 연습을 한다.
길가에 작은 병원이 있고, 젊은 여자가 환자인지 유리창으로 우리를 바라 보는데
모두 너무나 조용하고 평온한 모습이였다.
저녁밥은 뜻밖에도 現地食 이라고 beef fondue 가 나왔다.
여기서는 고기를 절대로 얼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신선하게 보이는 그 빨간 고기가 금방 잡은 소고기라는 말인데 나와 많은 교무님들이
고기를 안 먹거나 싫어 하니까 그건 더 정 떨어지는 이야기였다.
Fondue도 그냥 콩기름을 끓여서 고기 넣어 익혀 먹는데 오래전에 먹어본 cheese fondue
같지도 않고 영 맛을 모르겠다.
게다가 맛있는 프랑스 빵도 없고, 작은 감자 몇알과 상치뿐이니 다들 애꿎은 상치만 자꾸 먹는다.
그러나 산을 다녀 왔고, 또 한참 걸었으니 저녁이 허전했다.
저녁 잘 먹으려고 미리 밖에 앉아서 Mont-Blanc 쳐다보며 맥주까지 한잔 마셨는데...
차라리 그냥 된장찌개라도 주실것이지.
오늘 저녁 식사는 영 틀렸다.
내일은 다시 Italy로 이동이다.
오늘 기분좋은 산행에 만족하며 저녁에 다른 행사없으니 내일을 위해 일찌감치 자려고 누었다.
하지만 곧 curtain 도 없는 넓은 창밖으로 보이는 저녁 풍경에 홀딱 빠지고 말았다.
이슬비도 가끔 뿌려서 축축하고 어두컴컴해지는 저녁 무렵, 집집마다 불이 켜지기 시작한
산속 마을의 경치.
"홍하의 골짜기"도 아니고, "깊어 가는 가을밤에 ..." 도 아니고, 제목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 입에서만 뱅뱅도는 노래였다.
"산골짝 오두막 집에 희미한 등불 켜놓고 바느질하며
집 떠난 아들 기다리는 늙으신 어머니 ..."
지금도 생각나지 않아 정리가 되지 않은 그 노래, 딱 그대로의 풍경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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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 더 아름답슴니다. 산을 걸어서 내려오는
모습과 후배님의 느낌을 상상해 봄니다.
여행기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