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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부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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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를 상기하며

2010.04.22 22:29

오세윤 조회 수:156

 

                       6.25 한국전쟁 약사





 





  1945년 9월 2일의 38선 획정(劃定)은 광복 바로 전달인 7월 26일 열린 포츠담 연합국 수뇌회담과 외상회의에서 미. 소간에 이미 밀약된 한반도분할점령계획에 따른 것으로 맥아더 극동사령부가 이를 9월 2일에 발표함으로서 공식화되어 분단의 역사가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9월 7일부터 남한에서는 미군에 의한 군정(軍政)이 시작되었다.


 


  1948년 4월 19일, 김 구(金 九)선생이 남북협상을 위한 평양행에 앞서 이를 반대하여 운집한 청중들에게 한 연설을 남기고 조촐하게 평양을 다녀왔다. 연설의 일부를 여기에 싣는다.


 


 “독립운동으로 살아온 내 나이 이제 70을 넘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 여러분들은 나에게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달라. 이대로 가면 한국은 분단될 것이고 서로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나는 이 길이 마지막이 될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이북의 우리 동포들을 뜨겁게 만나봐야겠다.”


 


 


 협상에 실패하고 돌아온 선생은 1949년 6월 29일 한독당원(韓獨黨員)을 자칭한 현역 육군중위 안두희의 권총저격으로 은거하던 경교장(京橋莊)에서 최후를 맞았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가 실시되어 198명의 초대국회의원이 탄생되어 5월 31일 처음 제헌국회(임시의장 이승만)가 개원됐다.


 7월 1일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 정하고 7월 12일에는 초대헌법을 통과시켰다. 7월 20일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했다. 이어 24일에는 보슬비내리는 중앙청광장에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이 취임선서를 했다. 이시영(李始榮)씨가 부통령이 되었다. 8월 15일 첫 정부가 들어서고 온 세계에 독립국임을 공포했다.


 


 


  북한의 해주에서는 1948년 9월 9일을 기해 김일성(金日成)을 수상으로 하는「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 선포했다.


 같은 해에 국내에서는 10월 20일 여수순천 반란사건이 일어나고 미국에서는 제 33대 대통령으로 트루먼이 당선(11월2일)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부슬비가 내리는 일요일 새벽 4시에 그간 3000여명의 소련 군사고문단에 의해 잘 훈련되고 충분히 장비된 12만5천명의 북한군은 105전차여단의 중(重)탱크등 막강한 화력을 앞세우고 옹진반도를 비롯하여 전 전선에 걸쳐 선전포고도 없이 돌연 남침을 강행했다. 아침 9시에 이미 개성, 주문진, 청단(靑丹)까지 진출하고 동시에 전투기의 지원을 받으며 구룡포, 울진, 강릉, 삼척에 상륙공격을 감행했다. 오후에는 김포와 여의도비행장이 적기의 공습을 받았고 서울시내도 기총소사의 공격을 받았다.


 


 


 뒤늦게 전열(戰列)을 정비한 국군은 의정부북부와 옹진반도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역부족으로 후퇴를 거듭, 불과 사흘만인 28일 드디어 서울이 공산군의 수중에 무기력하게 함락됐다.


 


 정부는 27일 대전으로 옮겨가고 28일 새벽 인도교마저 아군 공병부대에 의해 폭파되고 말았다. 7월 20일 대전이 함락되자 유엔군은 낙동강에 워커라인을 구축, 필사의 저지선을 삼았다. 8월 18일 정부는 드디어 부산으로 쫓겨 가고 말았다.


 


 


 북한군의 남침소식을 접한 UN은 6월 25일 긴급 안전보장이사회를 열고 북한군의 공격을 침략으로 규정, 즉각적인 전투중지와 38선 이북으로의 철퇴를 결의했다. 공산군이 이를 묵살하고 남침을 계속하자 6월 27일 재차 긴급회의를 열고 한국에 UN군 파견을 결의했다.


 7월1일에는 일진으로 미군 스미스부대원 406명이 부산에 공수 파견되었다. 이들은 이튿날 즉시 평택 오산으로 이동하여 5일 북한군과 첫 접전을 벌였다.


 


 


  6월 27일, 트루먼대통령은 미국 해. 공군에 명하여 한국전에 참전하게 하는 한편 제 7함대를 대만해협으로 파견했다. 7월 15일에는 맥아더 원수가 UN군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타이, 그리스, 네덜란드,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필리핀,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16개국이 참전했다.


 


 


 남하하던 북한군은 8월 낙동강의 워커라인(8월3일 구축)에서 저지당한 채 더 이상 전진을 못했다. 그 사이 전열이 정비된 유엔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마치고 워커라인에서 기다리던 UN군과 협공을 시작했다.


  9월 18일 수원탈환, 26일 드디어 한강을 건너 서울로 진입했다. 9월 27일 맨 처음 중앙청에 뛰어든 국군 해병 2대대 6중대용사들이 먼저 국기게양대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28일 수도는 완전 수복됐다.


 


 


 9월 30일 마침내 38선에 도달하자 워커 미 8군사령관은 같은 날 바로 삼팔선 돌파를 명령했다. 10월 7일 임진강을 도강, 10월 17일 사리원에 이어 19일에는 드디어 평양을 완전 수복했다. 10월 26일, 국군 6사단 7연대 1대대 장병들은 압록강변 초산(楚山)에 도달했다.


 동부전선에서도 10월4일 고성, 6일 통천, 10일 원산에 이어 17일에는 함흥까지, 그리고 29일 성진에 이어 11월 25일에는 청진에 돌입했다. 그 사이 이승만 대통령은 10월 30일 평양에, 그리고 11월 22일에는 함흥을 방문하여 환영을 받았다.


 


 


 압록강변의 초산과 혜산진까지 진격했던 국군은 10월 25일 느닷없이 한국전에 개입한 중공군이 11월 15일부터 인민군과 합세하여 그 가공할 인해전술을 펼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월 4일 평양을 내어주고 결국에는 1951년 1월 4일, 서울마저 다시 빼앗기고 말았다. 그 후 밀고 밀리는 공방과 지루하게 이어지던 휴전회담이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사령관과 공산군(북한군과 중공군)사령관간에 조인되는 걸로 한국전란은 일단 그 막을 내렸다. 8월 15일 정부는 서울로 환도했다.


 


 


 6.25발발에서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기까지 3년 2개월간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을까.


 전투 병력으로는 한국군을 포함한 UN군 중 18만 여명, 북한군 52만 여명, 중공군 90만 여명이 사망하고 민간인중에는 남한에서만도 24만 여명이 사망하고 36만 여명이 행방불명됐다. 이중 9.28수복당시 패퇴하는 공산군에 학살된 사람이 128,936명, 납북인사가 84,532명이라고 한다. 전상(戰傷)과 민간인 부상자를 합치면 42만 여명이 된다고 한다. 결국 대한민국의 경우만 해도 전쟁기간 중 99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반면 1950년 당시 1200만이던 북한주민 중 300만명이 자유를 찾아 남으로 탈출했다.


 


 


 어째서 북한은 무력남침을 그리 쉽게 자행했을까, 어째서 국군은 힘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그리 쉽게 무너졌을까.


 


  1) 1949년의 ‘조소군사비밀협정’으로 힘을 얻은 김일성주석의 야욕.


 


  2) 같은 해 중공과의 상호방위조약 및 중국대륙의 공산화(중공은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정부수립을 선언함).


 


 3) 1949년 주한미군철수(군사고문단 500여명 제외)


 


4) 미국의 극동방어선에서 한국. 타이완을 제외한다는 미 국무장관 ‘에치슨’의 언명(1950년) 등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침을 결정하게 했다고 한다.


 


 


  6.25전란 당시 국군은 노동절(5월 1일), 국회의원선거(5월 30일), 북한의 평화공세 등 사태를 전후하여 오랫동안 비상근무를 해온 탓에 6월 23일 24시를 기해 비상경계령을 해제하고 병력의 1/3 이상을 외출허가 했다. 이런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받아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


 병력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수도경비사령부(사단규모)를 포함 총 8개 사단 11만 병력의 우리 군은 전투경험이 없었던 반면, 관동군을 포함한 20만의 북한군은 일본군과의 실전경험이 풍부한데다 벌써부터 소련고문단으로부터 교육과 훈련을 받아 전투력이 뛰어났다. 우리 군이 대적하기에 그들은 지나치게 강하고 철저하게 준비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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