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날, 2010년
2010.05.07 04:06
변산 반도 국립공원 (5/2009)
나는 한번도 엄마를 "어머니"라고 불러본적이 없다.
이 단어는 우리 엄마를 부르는것 같지 않고, 너무나 낯설어 입 밖에 나오지를 않는다.
내가 나이 70이 아니라 100살을 먹는다해도 우리 엄마는 내게 "엄마"로 남아 있을것이다.
"엄마"가 마치 우리 엄마의 고유한 이름인것처럼.
엄마는 여자를 지독하게 輕視하는 아주 완고한 집안에서 태어 나셨다.
딸만 셋인 중에서 둘째셨는데 初場에 이름부터 失望이 가득했다.
첫번에 딸을 낳아 하도 기가 막혀 웃었고, 두번째도 또 딸이니 다시 失笑한다는 뜻의
徐字, 又字, 笑字인 이름이 너무 싫어서 엄마가 혼자 연애소설의 여 주인공 같이
徐貞愛라고 다시 지으셨다. 우리들, 세자매는 엄마를 적극적으로 성원했다.
그때 나쁜 눈을 찌그려가며 김내성의 소설 "청춘극장" 따위를 열심히 읽는 엄마가
족히 생각해낼수 있는 이름이라고 속으로만 웃었다.
아이 일곱에 조카딸까지 데리고 살림하느라 바쁜 엄마는 한번 이런 소설에 빠지면 정신이 없으셨다.
텔레비죤이 나오면서 부터는 연속극을 무지 좋아하셨는데 일주일 내내 기다렸다가 겨우 한 30분 하고는
끝이 나니 감질 난다고 불평이 대단하셨다.
그때는 물론 비데오 테잎이나 DVD가 아직 없던 시절이다.
나는 얼마전 까지 가게에서 테잎을 10-20개씩 빌려 오면서 엄마를 많이 생각했다.
건강하게 조금만 더 오래 사셨으면 엄마도 테잎을 산떼미처럼 쌓아 놓고 즐기셨을텐데...
엄마는 외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 가셨고, 남자 형제가 없어서 서름을 많이 당하셨다.
외갓집은 먹고 살기 풍족했지만 깨이지 못한 집안 어른들 때문에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일곱살때 大門이 열려있기에 호기심이 나서 바깥을 조금 내다 보았다가 호되게
꾸중을 듣고 벌을 섰다고 하셨다.
어린 꼬마가 뒷곁에 가서 다림질하려고 옷감 축이는것 처럼 물을 입에 담아 뿜는것을
한나절 하는 벌을 섰단다.
學校는 커녕 바깥도 마음대로 내다 볼수가 없는 세상을 살으신 것이다.
엄마는 사촌 오빠들이 글 공부할때 어깨 넘어로 간신히 한글을 깨치셨다.
오랜 옛날 여인네 글씨처럼 궁서체라나 힘없이 크게 흘려쓰는
아주 고전적인 글씨체라 어느때는 나도 한참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문맥(文脈)을 보아야
무슨 소리인줄 알수있다.
내가 美國에 온후 어쩌다가 이런 엄마의 편지가 오는데 끝에다 글씨가 창피스러우니
읽고 난 후에는 얼른 없애버리라는 말이 꼭 써 있었다.
나는 없애기는 커녕 값진 Antique 보물 처럼 설합 속에 깊숙히 꿍쳐두었다.
내가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하며 Old Miss가 되어 가니까 엄마는 상성이셨다.
그만하면 당신 한(恨)을 풀어서 실컷 공부했으니 이제 빨리 시집을 가라고 성화이셨고
절에 다니며 빌으셨단다.
심사가 틀리면 나는 엄마가 자꾸 절에 가서 비니까 어디서 이렇게 생판 모르는 佛敎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투덜댔다.
읽고 찢어 버리라고 수없이 당부 하신 便紙를 어머니 날을 맞아 萬天下에 公開하는 나는 별수없는 청개구리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나 귀하고, 값진 이 편지를 天國 같은 5월의 변산반도, 붉은 Bougenvillea,
봄 바람이 하도 세어서 희미하게 나와버린 이름 모를 귀한 꽃 사진과 함께 엄마께 드린다.
우리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겨우 뚜껑을 열었을 뿐이다.
"꿈같이 다녀간후 걸리고 못 잊히는 말 어찌 다 하리.
이 엄마가 편지 하는것은 다름이 아니라 용한이가 (15회) 전화하는중 엄마가 말을 잘못하여 돈 보내 주는것 보다
너네 잘 사는것이 더 낫다고 하여 돈 보내라는것 보다 더 한말을 해 놓고 그게 걱정이 되어
너 한테 부탁하니 이 편지 보는대로 용한에게 전화하고 돈 보내지 말라고 전화 좀 해다오.
꼭 부탁이다. 필한이가 (19회) 이십만원씩 가져오고 하여 엄마 돈 있으니 아무 걱정마라.
이 편지 보고 찢어 없애라. 용한이 주소 몰라 너 한테로 한다. 꼭 전화해주고 편지는 찢어 없애라.
준호, 건호가 (우리 아이들) 눈에 보는듯 하다. 아무쪼록 몸 건강하게 잘 지내기 바란다.
엄마는 팔이 절여 더 글씨가 억망이다.
사연 서후 없으나 앤디(준호) 아빠도 건강한지 두루 궁금하다. 정근 엄마가 (용한이 댁) 보내준 약 잘먹고 있다.
할말 많으나 이만 그치니 내내 몸 건강한 소식 듣기 바라고 꼭 전화하거라."
붉은 Bougainvillea (2009)
마이아미의 이름 모르는 꽃 (2-20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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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판 어머니 품에서 22년 살다가 군에 입대하여 정신 못 차리게 논산 벌에서 훈련 받을 때 어머님이 보내 주신 첫 편지를 받고 한 줄도 읽기 전에 엉엉 울며 몇 번이고 다시 읽든 50년 전 생각이 나는 군 요. 나만이 그 랫 을 까 모든 친구들도 어머님의 바다보다 넓은 사랑을 기억 하고 들 있겠지요....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