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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킨에 대한 공부 -퍼옴

2010.07.04 13:57

오세윤 조회 수:187


1.  푸슈킨의 일생

 푸슈킨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교양 있는 귀족 집안 출생이며, 시인, 러시아 국민문학의 정립자이다. 처음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나중에 페테르부르크에서 멀지 않은 황제 마을의 리체이에서 교육을 받았다. 당시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에 저항한 조국 전쟁(1812)은 리체이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상당히 의외인 것은 푸슈킨이 리체이에서 받은 교육은 딱딱하지 않고 비교적 자유스러운 풍조이었다고 한다. 그는 1814년에 〈나의 친구, 시인에게〉를 발표하여 문학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초기 그의 시풍은 친분이 있고 선배이며 낭만주의 시인인 K․N․바튜슈코프, V․A․주코프스키 등 17, 18세기 프랑스 시인들의 시풍을 따랐다. 1817년 리체이를 졸업할 당시에 그는 이미 인기 있는 시인이었다.
푸슈킨은 당시 진보적 귀족들처럼 농노제와 전제정치를 반대했다. 그의 많은 친구들도 비밀 결사 조직 출신이었다.
자유사상을 담은 그의 시는 검열 때문에 정식으로 출판될 수 없었지만 필사본으로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때문에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알게 되자 그를 남쪽 지방으로 유형에 처하게 된다. 푸슈킨은 4년 동안 남쪽 지방 유배지인 카프카스와 크람을 여행하면서 키쉬노프와 오데사에 주로 머물렀는데, 이때가 그의 창작 생활 중 가장 낭만적인 시기였다.
이 시기에 나온 작품들은 〈카프카스의 포로〉, 〈바흐치사라이의 분수〉, 〈집시들〉로서 유명한 서사시를 썼다. 1823년에는 귀족 사회 현실을 묘사한 운문소설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예브게니 오네긴〉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도 그는 남부 지역의 비밀 결사 회원들과 사귐을 가지고 자유사상을 담은 시들을 계속 써내려갔다.

 유형이 풀리고 나서도 외무성에 근무하면서 수도에서 혁명적인 사상가 P․Y․차다예프와 사귀고, 러시아 전제정치를 타도하려고 하는 무장봉기단체 데카브리스트의 그룹에 참여하는 등, 농노제 타도 정치사상이 확고해졌다. 데카브리스트의 사상에 공명하여 자유를 사랑하는 내용의 송시 <자유>(1817), 농노제 붕괴를 예언한 <농촌>(1819) 등 일련의 과격한 정치적 시를 써서 다시 남러시아로 추방되었다.
G․G․바이런의 영향도 받은 그는 남러시아에 머무는 동안에 <카프카스의 포로>(1822), <도둑 형제>(1821∼22), <바흐치사라이의 샘>(1821∼23) 등의 작품 소재를 얻었다. 1820년 러시아 민간전승에서 취재한 동화풍 담시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발표하여 젊은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러시아 문학사상 최초의 리얼리즘 작품인 <예프게니 오네긴>을 쓰기 시작한 1823년 무렵에는 낭만주의 한계를 의식하게 되었으며, <집시>(1824)에서 바이런적 주인공에 대한 비판의 눈길로 개인과 사회, 자유와 운명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한때 무신론을 긍정한 편지가 압수되면서 연금된 동안, 비극시 <보리스 고두노프>(1825), 풍자적 서사시 <누손 백작>(1825) 등을 완성하였다. 그는 고독하고 불우한 유폐생활을 통해서 사상적․예술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러시아 국민 시인으로 성숙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일반 사람은 물론, 예술가들은 고난을 통해서 성장한다. 푸슈킨도 마찬가지 이었다.

 1826년에 황제 니콜라이 1세의 특사로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만년까지 엄중한 감시와 검열을 받았다. 이 시기에 아버지가 물려준 땅을 보러갔을 때 콜레라로 인해 발이 묶인 3개월이 그의 일생 중 창작의 정점을 이루는 시기가 되었는데, 단편소설집 <벨킨 이야기>, 4편의 작은 비극 <돌의 손님>, <인색한 기사>,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질병 때의 주연(酒宴)> 등 50편의 작품을 썼으며, 명작 <예프게니 오네긴>의 기본적 부분도 이때 완성되었다.

 이즈음에 시작된 나탈리야와의 사랑과 결혼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배우였는데, 무척 씀씀이가 컸으며, 푸슈킨은 이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 궁정에 취직하기까지 했다.
그 기간 중에 세속권력과의 충돌 속에서 역사적 시야를 확대해 간 그는 표트르대제의 공적을 기리면서 그 희생이 된 페테르부르크 소시민의 비극을 묘사한 서사시 <청동의 기사>(1833), 소설 <스페이드 여왕>(1834), 역사소설 <대위의 딸> 등을 발표했다.
러시아의 대문학가, 국민 시인은 불행하게도 자신의 아내와 염문을 일으킨 프랑스인과의 결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젊은 나이에 사망하니, 불과 38살이었다. 이 결투는 그의 진보적 사상을 미워하는 궁정세력이 짜놓은 함정이었다는 설이 있다.

2. 푸슈킨의 작품

 푸슈킨은 러시아 근대문학을 연 시인이며 극작가, 산문작가이다. 그가 나타나기 이전의 러시아 문학은 좁은 의미에서는 아직 개화를 기다리는 준비 단계에 머물러있었다. 푸슈킨의 등장과 문학적 업적으로 인하여 러시아 문학은 독자적인 국민문학의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고, 나아가 세계문학의 참여자로 몫을 분담하게 되었다.

 그의 문학세계의 기본 기조는 인간의 사랑과 러시아 민족의 신뢰이다. 고골(N. Gogol 1809~52)는 “진실로 현재 우리의 시인들 중 어느 누구도 푸슈킨보다 큰 사람은 없다. 그 누구도 민족적이라 스스로 말할 수 없으되, 이 권리는 그가 혼자 누려 마땅하다. 그는 하나의 사전처럼 우리 언어의 풍부함, 힘 그리고 부드러움까지도 체현시켰다. 푸쉬킨은 하나의 특별한 존재이며 아마도 러시아 정신에서 독보적인 존재일 것이다. 그는 200년 후쯤에나 도달하게 될 발전 단계에 이미 이르러 있는 러시아 인이다.”(1832) 라는 평가로 그를 기렸다.

 대부분의 푸쉬킨 작품은 농노제하의 러시아 현실을 정확히 그려내는 것을 지향(志向)하였으며, 깊은 사상과 높은 교양으로 일관되어, 후의 러시아 문학의 모든 작가와 유파(流派)는 모두 ‘푸슈킨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슈킨의 서정시는 리체이 시절 개교기념일 파티에서 낭송되어지는 시가 그의 시 삶의 시작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서정시들을 뽑아서 살펴보겠다. 우선 〈10월 19일〉이다.

/…/나의 친구들이여, 우리의 결합은 훌륭했다!
그것은 영혼처럼 분리되지 않았고 영원했으며 -
견고했으며 자유로웠고 불행하지 않았다.
그것은 절친한 뮤즈의 그늘 아래에서 접합되었다.
운명이 우리를 어디로 내던지더라도,
행운이 어디로 이끌지라도,
우리 모두는 여전히, 전 세계가 우리에게 낯선 곳이기에,
황제의 마을은 우리에게 조국이다.
〈10월 19일〉


 이 시에서 푸슈킨은 친구들과의 영원한 우정을 칭찬했다. 어디에서든 친구들의 마음이 함께 하기를 빌었으며, 어린 시절에는 여느 사람처럼 황제를 존경한 것으로 보여 진다.
페제르부르크에 살면서 푸쉬킨은 데카브리스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자유〉, 〈시골〉 등의 서정시를 지었는데, 농노제와 독재를 소재로 하여 저자인 자신의 항의를 담았다.
〈차아다예프에게〉 라는 시는 특히 유명하며, 이 시로 푸쉬킨은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했다.

/…/ 아직은 자유롭게 타오르고,
아직은 명예를 위한 열정이 살아있는,
나의 친구, 조국에 몸을 바치는,
영혼의 아름다운 충동이여!
동지여, 믿어라. 조국은 일어설 것이다.
황혼한 행복의 별인,
러시아는 잠에서 눈을 뜰 것이고,
독재의 유물 아래,
우리의 이름을 남길 것이다!
〈차아다예프에게〉


 독재가 타파되고, 조국의 부흥을 원하는 푸쉬킨은 러시아가 일어날 날을 고대하며, 이렇게 젊은이들의 각성을 독려하는 시를 써 내려갔다. 젊은 영혼을 거름으로 러시아가 부흥하고, 독재가 거셀수록, 영광된 이름이 남게 될 것이라고 그는 시를 통하여 주장한다.
푸쉬킨은 유배지인 남부 지방에서도 사랑에 대한 훌륭한 시를 썼다. 시 중 하나는 〈그루지아 언덕 위에 밤안개가 내려앉는다.〉 이다.

그루지아 언덕 위에 밤안개가 내려앉는다,
내 앞에서 아라그바 강이 소리 내어 흐른다.
나는 우울하고 들떠있다, 나의 슬픔은 밝다.
나의 슬픔은 너로 가득하다,
너로, 단지 너 하나만으로… 나의 우울함은
아무 것도 괴롭히지 못하고, 불안하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심장은 또 다시 타오르고 사랑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루지아 언덕 위에 밤안개가 내려앉는다.〉


 푸쉬킨은 생전에 여러 해 경험한 행복한 사랑과 비극적인 사랑은 스스로의 감정과 영혼의 이름다음을 표현하는 훌륭한 원천이 되었다. 그는 인간 삶에서 시가 갖는 의미와 사회에서 시인이 하는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1830년대에 푸쉬킨은 삶과 죽음, 운명, 행복과 자유 등 철학적 문제를 다룬 시에 자신의 창조적 열성을 바쳤다. 인간의 짧은 삶이 갖는 의미에 관해서, 세대 간의 관계에 대해서, 아름다움과 자연과 예술의 영원성에 관하여 생각했다.
그가 인간 삶에서 시가 갖는 의미와 사화에서 시인이 하는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시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선과 진실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예언자〉에서 푸쉬킨은 이렇게 적는다.

/…/ 일어나라, 예언자여, 보아라, 그리고 귀 기울여 들어라,
나의 의지로 가득 채우고서
바다와 대륙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말로서 사람들의 가슴을 불사르라.
〈예언자〉


 1830년대에 들어서 푸쉬킨은 삶과 죽음, 운명, 행복, 자유 등 철학적 문제들을 다룬 시에 창조적 열정을 바쳤다. 인간의 짧은 삶이 갖는 의미에 관하여, 세대 간의 관계에 관하여, 아름다움과 자연과 예술의 영원성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후기로 갈수록 그의 시가 슬프면서 교훈적인 이유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신의 창조물 같은 기념비를 자신에게 세웠는데,
기념비로 가는 민중의 행로는 초목이 자라지 않을 것이다.
복종하지 않은 우두머리로서 그는
알렉산드리스기 기둥보다 더 높이 솟아 있다.
………………………………………………………
 오랫동안 나는 민중에게 그렇게 사랑받을 것이다.
나는 시혼(詩魂)으로 선한 감정들을 불러 일으켰고,
나는 나의 잔인한 세기에 자유를 찬미했으며
죽은 자들에게 자비를 호소할 것이다.
〈기념비〉

1836년에 쓴 서사시 〈기념비〉에서 푸쉬킨은 자신의 창작을 결산하면서 자신의 시가 아름다움과 선을 노래하며 영원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을 것에 대한 확신을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시를 보면서 끝맺고자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라!
슬픔의 날도 참고 견디어라.
즐거운 날이 오리라는 걸 믿으려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가 슬프다 해도
모든 것은 빛과 같이 순간적으로, 모두 지나가게 되리라.
그리고 지나간 것은 훗날 그리워지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슈킨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내 또래 친구들, 형제자매들 등. 모든 이들에게 널리 읊어주고 싶은 시이다.
낭만주의적인 이 시는 민중의 고달픈 삶을 가까이에서 접한 푸슈킨이 고통으로 점철된 삶에 대해 한 마디 던지고 있다. 인생의 본질과 의식 깊숙한 곳의 근원적 고독을 담고 있고, 어떤 것이라도 과거로 흘러가기 마련이니, 즐거운 미래를 기다리며 고통을 참고 인내하라고 하고 있다. 취업이나 힘든 삶 등으로 괴로운 일들을 겪는 그들에게 격려의 말로 읊어주고 싶은 시이다. 푸슈킨의 후기 시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시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시는 삶의 고달픔을 간명하고 아름답게 위로해줌으로써 세기를 초월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다.

3. 끝마치면서
그의 인생은 서정시와 문학의 일생이었다.
그는 시, 희극, 산문 등 다양한 문학 분야에 걸쳐서 두루 뛰어난 작품을 쓰면서 러시아 문학의 새 장을 열었다. 러시아의 한 사상가는 그를 가리켜,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학의 창시자’ 라고 추앙하였다. 푸슈킨은 고전주의 문학 영향 아래 위세를 떨치던 교회 슬라브어의 무거운 문체를 타파하고, 평범하면서 가벼운 일상어를 문학어로 대체하였다. 그 결과 현대 러시아 문학어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업적으로 러시아인의 정서와 국민 정서가 표현되었으니,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국민문학의 창시자라는 영광된 칭호가 붙은 것이다.

참고문헌
정명자, 『인물로 읽는 러시아 문학』, 2001, (주)도서출판 한길사
홍기순/장한,『러시아문학사Ⅰ -고대에서 사실주의까지』, 2004, 도서출판 보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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