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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오성화와의 ....

2010.07.15 23:18

오세윤 조회 수:195

 

 입학을 하자 당연한 듯 큰아버지 집에서 하숙을 했다. 배화여중에 다니는 바로 아래 여동생과 한방을 썼다. 사사건건 불편했다. 통학거리도 멀뿐 아니라 다 큰 여동생과 한방을 쓴다는 게 보통 거북한일이 아니었다. 어렵게 두 달을 버티고 같은 반 친구인 주호의 왕십리 자취방으로 책상을 옮겼다.


 주호는 충북 괴산에서 올라와 혼자 자취하고 있었다. 나보다도 한살이 더 많은 그는 말수가 적은데다 어른처럼 의젓했다. 입보다는 몸으로 모든 걸 말했다.


 


 정도 많았다. 중학교 때부터 고생하던 치질을 민간요법으로 치료받고 온 날, 어기적거리며 방에 들어서는 나를 두고 주호가 부리나케 가게로 달려가더니 달걀 한 꾸러미를 사들고 들어왔다. 냄비에 열개를 다 깨트려 넣고 한꺼번에 삶아 내게 내밀며 먹으라고 했다. 함께 먹자고 아무리 권해도 친구는 한사코 먹지 않았다. 쳐다보지도 않았다. 달걀을 앞에 놓고 목이 메던 건 그때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주호와 함께 지내면서 나는 그의 침착함과 분별력, 남을 배려하는 조심스런 언행에 빠르게 감화되어갔다. 불 뚱 맞던 격정적인 성격이 차분하게 잡혀 사려 깊게 행동하는, 제법 철이 들어가는 모범생이 되어갔다.


 인천 집에는 한 달에 한번 생활비를 타러 갔다. 방학 때도 서울에 남아 공부를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산엘 갔다.


 


  2

          2학년 올라와 얼마쯤 지난 어느 날 저녁이었다. 설거지를 끝낸 주호가 방에 들어서면서 털썩 내 던지는 소리가 영 엉뚱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한 사흘 고향에 다녀오고 나서 바로 영육원엘 들어갈까 생각 중이라며 내 속을 떴다. 영육원 입주는 학기 초부터 벌써 지방에서 올라온 우리들 사이에 관심 높은 화제였다. 

 “괜찮대?”

 “응, 박수배라고 국어선생님 동생이 1학년에 있지 않아? 어제 운동장에서 잠깐 이야기를 해봤는데 자기도 보름 전에 거길 들어갔다는 거야, 좋대.”

 주호는 준비했던 것처럼 바로 대답했다. 의아하여 즉시 되짚어 물었다.

 “왜, 걔는 집도 서울이고 부모도 다 계실 텐데?”

 “잘 몰라, 무슨 사정이 있나보지 뭐.”

 

 주호는 더는 말을 않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래도 평소 그는 남의 사사로운 사정은 묻거나 잘 말하려 하지 않았다. 말을 아꼈다. 어쩌다 고향이나 어머니 이야기가 나올 때만 잠시 얼굴이 어두워질 뿐 감정의 기복을 쉽게 밖으로 나타내 보이지 않았다.

 주호가 마다하면 나도 그의 의사를 따라 자취를 그만두는 수밖에 없었다. 지방학생이라고 다 어려운건 아니어서 함께 자취할 친구도 별로 없었거니와 주호만큼 동료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과묵한 친구도 만나기 쉽지 않았다.

 자취도 어려운 그의 사정을 짐작은 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영육원에 미련을 갖는 진정한 이유가 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싫어서 도서관 공부조차 마다하는 나로서는 많은 인원이 모여 공부한다는 게 그리 탐탁하지 않았다.

 

 “아이들 가르치기가 힘들어서 그래, 아니면?········.”

 주호는 인근의 초등학생들을 모아 그룹 과외를 하고 있었다.

 “시간을 너무 뺏겨. 등하교만도 시간 반이 걸리는데 밥해 먹으랴 가르치랴 공부할 시간이 너무 없어. 예습을 못하겠어. 자꾸만 뒤쳐지는 느낌이야.”

 

 주호가 심각하게 이마를 찌푸렸다. 동감이었다. 하긴 일 년 가까이 해온 자취생활이 이젠 지겹기도 했다. 아침을 해 먹고 나면 시간이 바빠 대부분 찌개냄비고 밥솥이고 그대로 두고 학교에 갔다. 돌아와서도 냄비는 씻는 법이 없이 고추장만 조금 더 풀고 두부를 넣어 끓이기를 예사로 했다.

 

 해가 짧고 추운 겨울엔 밥도 못했다. 아침은 나가다 가게에 들러 곰보빵 두개씩을 사서 아침으로 하나, 점심에 하나를 먹고 물을 마셔 적당히 배를 달랬다. 하굣길엔 왕십리 역전 리어카아저씨 가게에서 호떡 5개씩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싼값에 싸라기 쌀을 샀다가 아무리 일어도 돌이 가려내지지 않아 혼이 난 뒤로는 보리를 섞을망정 쌀은 제대로 된걸 사먹었다. 하지만 19 공탄만은 만만치가 않았다. ‘삼천리’연탄이나 ‘대성’ 연탄이 좋기는 해도 값이 비쌌다. 낱장으로는 잘 팔지도 않았다. 몇 장씩 낱개로 사다 때기에는 사제가 편했다. 값도 헐했다. 하지만 문제가 많았다. 어떤 땐 너무 쉽게 타서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꺼져있기도 했고 또 어떤 것은 흙이 너무 많이 섞여 아예 불이 붙질 않거나 화력이 약했다. 타다말고 중간에 꺼지기도 했다. 속이 상하다 못해 꺼내어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리는 걸로 분풀이를 하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영육원이 정확히 어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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