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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부고인
  
함께하는 부고인
  
 

 “응, 시립농대 뒤 중랑천 못미처래.”


 “그렇게 멀어?”


 “통학 거리만 20분 늘어날 뿐이야. 하지만 전차를 타면 오히려 왕복 30분이 절약돼.”


 “들어가기는 쉽대?”


 “그럼, 재학 증명서만 있으면 된대.”


 


  영육원에 들어가는 건 그 밤으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열흘 지나 입주했다.


 포장도 되지 않은 언덕진 길옆에 영육원이 있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엇 지나갈 좁은 길 끝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중랑천이 흘렀다. 영육원은 고아원과도 또 달랐다. 아이들도 없었고 보육시설도 없었다. 기독교와 연관된 구호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모양이었지만 십자가도 없었고 주일이라 하여 예배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정해진 규칙이라고는 식사시간을 지키는 것과 한 달에 한번 주말에 중랑천에 나가 담요를 빠는 것뿐 별다른 게 없었다. 실내에서도 대화를 금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다른 제약이 없었다. 외출도 마음대로 했다.

 시멘트 불록으로 지은 2층 건물은 바닥면적이 100평은 됨직 넓었다. 각 층마다 중간 높이로 엉성하게 칸을 막아 한 칸에 한명 또는 두 명씩 40여명을 수용했다. 책상 하나와 야전침대, 그리고 국방색 군용담요 두 장씩이 각 개인에게 배당되었다. 11월에 들어서야 담요 한 장이 추가로 지급됐다. 주호와 나는 각방을 썼다.

 

 식사도 간단했다. 보리밥 한 그릇에 깍두기 한 종지와 고추장 한 덩이, 간혹 치즈가 한 조각 나왔다.

 추석날 저녁 영육원에서는 식사에 곁들여 막걸리를 냈다. 배고픔과 호기심과 들뜬 기분으로 모두들 거푸 서너 잔씩 욕심 사납게 마셨다. 금세 취했다. 언성들이 높아졌다. 한바탕 노래를 부르는 가 싶더니 잠시 뒤에는 그 자리에 그대로 몰골사납게 쓰러져 코를 골거나 기어가듯 자기 방을 찾아들어 침대위에 곯아 떨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수배였다. 잔뜩 겁에 질려 새파래진 얼굴이었다. 술이 확 깼다.

 

 “왜, 왜 그래? 무슨 일이 났어? 누가 싸워?”

 “주호 형이 언덕에서 막 울고 있어. 구르기도 하고······. 달래도 소용없어요. 형이 좀 가 봐.”

 곧바로 달려갔다. 주호가 길 위에 두 발을 벌려 뻗친 채 퍼질러 앉아 달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무어라 외쳐대고 있었다. 우는 것 같았다. 우렁우렁 황소울음을 울었다. 그놈의 막걸리가 평소 과묵하고 사리 밝은 주호를 이상하게 만든 것 같았다.

 “어머니, 어머니 ― ! 순네야 ―, 순네 야아― !”

 

 경사진 하얀 신작로에 달빛이 흐벅지게 쏟아져 내려 마치 시골의 너른 내를 흐르는 봄물처럼 넘실넘실 흘러넘쳤다. 주호 곁으로 다가갔다. 나를 의식한 듯 친구가 음색을 바꿨다. 꺼이꺼이 신파조로 울음소리를 꺾더니 떼굴떼굴 경사를 따라 대여섯 바퀴를 굴렀다. 다시 몸을 가누고 앉아 이번에는 땅바닥까지 치며 정말 통곡을 했다.

 그래도 하는 짓이 전혀 정신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달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달을 쳐다봤다. 어느 결에 나도 그를 따라 감상적이 되었다. 달빛 속을 떼굴떼굴 구르며 한바탕 주호처럼 울었으면 싶었다.

 

 달 속에 아버지가 보였고 할머니가 보였고 시골 친구들이 보였다. 정월 대보름 밤 사직공원 위 활터에서 함께 깡통에 불을 피워 쥐불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보였다. 화로에 인절미를 구워주던 친할머니가 보였다. 인천 집의 외할머니가 보였다. 달빛 기우는 추운 밤길, 얼어붙은 마른풀 버석거리는 밭둑길을 나뭇짐을 지고 일렬로 걷던 머슴 친구들이 보였다. 모두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구름에 잠깐 들었다 다시 나온 달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달빛은 무심히 푸르기만 했고 밤은 환하게 깊어만 갔다.

 

 주호는 고향에 어머니가 계시다고 했는데 왜 어머니를 부르며 울었을까. 순네는 또 누구일까. 다음날 학교 가는 길에 그에게 물었다.

 “순네가 누구야?”

 주호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뭐? 내가 순네라고 그러데? 참 나도, 취해서 정신이 없었나보다.”

 “누군데 그래?”

 “응, 순네가 아니고 순례야. 이따 밤에 얘기해 줄게.”

 주호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을 미뤘다. 토요일이라 퇴근길의 전차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볐다. 자정에 밖으로 나갔다. 전날보다 빛이 바랜 둥근달이 검푸른 창공 한 가운데에 휘영청 떴다. 달빛을 밟고 중랑천까지 갔다 오면서 주호는 처음으로 그간 가슴에 묻어두고만 있던 부모님이야기를 했다.

 .......중략......

 

 순례는 또 누구야?”

 간격을 두었다가 주호가 목을 잦뜨리며 내뱉듯 말했다.

 “고향 여자애야. 죽었어.”

 “뭐, 건 또 왜? 어떤 사이였는데?”

 “나랑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시집가서 애 낳다 죽었어.”

 이해가 안됐다. 아무리 우리가 다른 아이들보다 두서너 살 많기로, 그럼 몇 살에 시집을 갔단 말인가. 내 궁금증에 주호가 간략하게 덧대었다.

 “열여섯에 시집을 갔거든. 시골에선 일손 땜에 흔히 그래.”

 “그래도 애를 낳다가 죽는다는 건 말도 안 돼.”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하필 그 무렵, 마을의 유일한 산파인 갈금네가 갑자기 친정아버지 상을 당했단다. 장례를 치르러 시오리 떨어진 친정엘 갔다지 뭐냐. 장마 통에 불어난 ‘쌍천 내’ 물로 며칠째 돌아오지를 못했다는 거야. 순례는 어머니가 없이 자랐거든. 산구완 할 사람이라곤 눈먼 시어머니밖에 없었지. 에이 참 대처에 사는 사람한테라도 시집을 갔더라면 죽지는 않았을 텐데······. 하필 두메 골자구니로 시집은 가 가지구선.”

 주호의 말하는 품이 오뉘 사이만큼이나 정이 진해 그냥 짝사랑이나 하던 관계만은 아닌 듯싶었다. 전날 밤에 비해 달빛이 왠지 더 쓸쓸해 보였다. 그날 밤 친구는 책상과 침대를 내방으로 옮겼다.

 아침에 일어나자 머리가 빠개지듯 아팠다. 처음으로 지각을 했다. 주번교사로 교문을 지키던 한우택 선생님이 우리들을 붙잡아 곁에다 따로 세웠다.

 

 “아니 너희들, 모범생인 줄 알았더니 지각을 다 해? 게다가 이게 뭐야, 술 냄새까지 나잖아?”

 할 말이 없었다. 붙잡혀 선 채 고개를 떨어트리고 꾸중을 들었다. 선생님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더는 말을 않고 지각생들을 서둘러 들여보냈다. 수배를 뒤에 남게 해 자초지종을 듣는 눈치였다. 머리도 아팠지만 마음이 조려 첫째시간은 공부도 하는 둥 마는 둥 안절부절 보냈다. 쉬는 시간에 교실로 중배가 찾아왔다. 선생님이 용서하였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키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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