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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부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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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한국에 살고 있게 된 연유에 관한 얘기를 드리겠습니다. 더 나이가 들어서 거동이 불편해 질 때는 미국 자식들 곁으로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는 한국에 살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내년에는 한국 국적도 회복할 생각으로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는 흔치 않은 2중국적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대학 졸업 후 외교관이 되는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1996년에 “무작정 미국유학”을 갔습니다. 정확히 무슨 공부를 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갔습니다. 미국유학을 가는 사람들이 보통 얘기하는 것처럼 박사학위를 따가지고 귀국하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경영석사, 전자공학, 통계학, 컴퓨터공학 공부를 전전하다가 미국 컴퓨터 회사에 취직하게 되어서 30여 년간의 컴퓨터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LA에 있던 미국에서 제일 큰 System Integration 회사인 Computer Sciences Corporation에 (한국의 SDS 같은) 취직해서 소프트웨어 개발 일을 하면서 10년을 보내다 보니 진력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하는 일이 미국 은행이나 정부를 상대로 프로그램 개발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유타 주립대학 동창 황규빈 형이 세운 텔레비데오라는 회사에 동참하게 되어서 샌호세로 이사를 갔습니다. 한국과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는 황규빈과 같이 일을 하면 한국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텔레비데오 사에서 7년 동안 일하면서 한국에도 몇 번 왔다가고 서류상이었지만 “백만장자”도 되어보고 당시 미국 컴퓨터 업계의 이름난 사람들과 교제도 하면서 (빌 게이츠를 포함해서) 신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인내심이 부족한 성격이라 (타고 난 것 같습니다) 텔레비데오에서 7년이 되니 또 진력이 났습니다. 당분간 일 안 하고 먹을 돈도 있겠다 컴퓨터 공학 박사학위 공부를 해서 대학교수로 제2의 인생을 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당시 1986년) 복잡한 캘리포니아를 떠나서 조용히 공부하기 좋은 유타로 가족을 끌고 돌아와서 유타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당시 유타대학은 Computer Graphics 기술을 탄생시킨 곳으로 유명해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포토샵으로 유명한 아도비 회사의 Computer Graphics의 기술은 모두 유타대학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생활의 기반이었던 텔레비데오 사의 주식의 폭락으로 공부를 포기하게 되고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산호세롤 돌아가지 않고 유타에 있던 노벨이라는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유타는 미국에서 제일 큰 소프트웨어 회사 5개 가운데 둘이 있을 정도로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달해서 제2의 실리컨 밸리로 알려졌던 곳이었습니다.


노벨은 당시 세계 PC 넷워킹 시장의 80%를 점유해서 (1980년대 후기 - 1990년대 전기) 잘 나가던 회사로 IBM,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던 회사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1990년 중반기에 마이크로소프트에 당하는가 싶더니 인터넷이 나오면서 노벨과 마이크로소프트의 PC 넷워킹 기술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노벨에서는 날리던 Product Manager였습니다. Product Manager란 “제품 관리자”로 번역할 수 있는데 회사의 한 제품을 담당해서 전적인 책임을 지는 컴퓨터 회사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직책입니다. Mini-CEO라고도 불립니다. 애플 회사를 세우고 세계적인 회사로 키운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제가 보기에는 세계 최고의 경영자라기보다는 세계 최고의 Product Manager입니다. 그는 후세에 경영자보다는 애플의 주요 상품인 맥인토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팻의 창시자로 (다시 말해서 Product Manager) 알려질 것입니다.


제가 노벨에서 만들었던 제품은 노벨을 다음 10년 동안 먹여 살릴 제품으로 불릴 정도로 성공적인 제품이었습니다 (이름은 NetWare Lite). 그러나 회사 세력다툼에서 제품을 다른 사람에게 뺐기고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경쟁연구를 (Competitive Analyst) 하는 한직으로 물러났습니다.


그때가 1994년이었고 노벨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있었더라면 아마 그곳에서 은퇴해서 지금 유타에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쩐지 다른 미국회사를 찾아보기는 싫었고 한국에 나가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다시 났습니다. 그래서 그해 여름에 2주 휴가를 얻어서 한국에 나와서 한국에 나올 수 있을까 하고 사정을 알아봤습니다 (안산에 있던 김영종 형 회사를 찾아간 것도 그때). 결론은 박사학위나 특허가 없으면 한국에 발붙이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해에 (1995년) 30년 전에 “무작정 미국유학”을 갔던 것과 비슷하게 노벨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귀국”을 감행했습니다. 귀국해서 여기저기 문을 두들겨봤으나 역시 예상대로 열려지는 문은 없었습니다. 거의 포기 상태에서 노벨의 한국지사에 인사차 갔는데 당시 지사장을 맡고 있던 친구가 (유타 본사에 한번 와서 만났던) 노벨 한국지사에 나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하다면서 고문으로 일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습니다. 그런 기적적인 연유로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거의 4년 동안을 노벨 한국지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상임고문으로 나중에는 (고문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한국노벨 부사장으로 일했습니다. 주로 기술마케팅과 (technical marketing) 노벨 본사 연락관계 일을 했습니다. 한국 직장문화를 체험하고 한국을 다시 배우고 그동안 소원했던 한국 친구들과 다시 가까워질 수 있던 귀중한 4년이었습니다.


 만용에 가까운 “무작정 귀국”과 4년 동안의 이 한국생활이 없었더라면 지금 한국에 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한국에 인터넷을 들여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안목이 짧아서 기회를 놓쳤습니다. 당시 노벨에서 가깝게 같이 일하던 한 동료가 인터넷의 중요성을 회사 경영진에 알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이해가 전혀 없었던 경영진은 (HP 출신의) 이 친구의 제의를 묵살했습니다. 그때 비슷한 일이 마이크로소프트에도 일어났는데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빌게이츠는 인터넷의 중요성을 금방 이해하고 인터넷으로 돌았습니다. 그 전환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 후에 노벨 경영진이 인터넷의 중요성을 감지했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였습니다. 노벨 경영진에 제의를 묵살당한 이 친구는 노벨을 떠나서 자기 회사를 세워서 당시 유타에서는 최초로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자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나도 노벨을 떠나서 “무작정 귀국”을 하기 전에 이 친구 회사를 방문했는데 내가 원하면 한국에 웹사이트를 만드는 작업을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나 역시 인터넷 이해가 부족해서 이 친구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때 인터넷에 대한 (1994년) 이해가 좀 있고 사업하는 머리가 좀 있었더라면 (사업하는 머리는 그때도 지금도 없습니다) 한국 최초의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다움이나 네이버 같은 회사를 시작할 수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공상을 해봅니다.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났었더라면 지금 같이 세계 배낭여행도 못하고 마라톤도 못 뛰어봤을 것이니 어느 쪽이 더 나은 인생인지 판단이 잘 안 갑니다. 인생은 정말 “새옹지마”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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