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 여행기 (후편 17) - "굴락"의 도시 Magadan
2010.09.11 20:07
![]() 2007년 10월 9일, 화요일, Magadan, Hotel Magadan
(오늘의 경비 U$62: 숙박료 1100, 점심 80, 인터넷 50, 전화카드 150, 비즈니스 센터 사용료 150, 식료품 20 *환율 $1=25)
어 제는 푸른 하늘이 보이는 맑은 날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떠난 야쿠트스크에 다시 돌아간 것 같이 구름이 잔뜩 낀 날이다. 하루 종일 진눈깨비가 내리다마다 하는 날이었다. 어쩌면 이런 침울한 날씨가 이 도시에 맞는지도 모른다.
인 구 12만 정도의 이 도시 역사를 좀 보자. 이 도시는 1930대 초에 이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생겨난 도시다. 전적으로 죄수들에 의해서 건설된 도시인데 이들 죄수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서 배로 이곳에 수송되었다. 배가 당도한 바닷가 황무지에 도시를 짖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세워진 도시가 마가단이다. 도시를 세우는 동시에 금이 발견된 마가단 북쪽으로 길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길을 만드는 동안 수많은 죄수들이 죽어나갔다. 죄수들을 제대로 입히지도 먹이지도 않고 영하 수십도 온도의 혹독한 환경에 천막에서 재우면서 하루 14시간의 중노동을 시켰으니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몇 달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그렇게 세워진 그 길에 "Road of Bones - 뼈의 도로"라는 별명이 붙었다. 죽은 죄수들의 뼈를 묻어가면서 세운 도로라는 뜻이겠다. 습지 같은 땅이라 1Km 길을 만드는데 주위에서 짤라온 통나무 6만개를 넣어서 만들었다 한다. 이 도로가 내가 육로로 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던 야쿠트스크와 마가단을 연결하는 도로인데 지금도 날씨가 풀릴 때는 사용할 수 없는 험한 길이다. 언젠가는 이 도로도 시속 120Km로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로 변할 날이 올 것이다. 이 도로를 세우고 금광에서 일하면서 죽어나간 사람의 숫자가 2백만이 넘는다 한다. 3백만 명의 남미 원주민과 흑인 노예들이 묻혀있다는 볼리비아의 Potosi 은광에 버금가는 숫자다. "Road of Bones - 뼈의 도로"의 시발점인 마가단은 "Gateway to Hell - 지옥문"이란 별명도 가지고 있다.
자 기네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 수많은 인명을 의도적으로 희생시킨 나라들은 - 러시아,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등 - 영원히 그 오명을 씻기 힘들 것이다. 내가 알기에 인간 역사를 통 털어서 "Ends justify means."라는 말이 진가를 발휘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것 같다.
아 침 느지막하게 나가서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우체국 안에 있는 인터넷 카페에 가서 인터넷을 하는데 한글도 안 되고 USB 메모리 카드도 사용할 수가 없어서 이메일만 조금 하다가 나왔다. 오후에 이곳에서 제일 좋다는 호텔에 들어가서 인터넷이 있느냐고 물으니 영어를 좀 하는 직원이 있다고 한다. 모뎀을 사용하는 인터넷이라 우선 전화카드를 사야한다고 해서 전화카드를 150루블 주고 샀다. 직원 인도로 컴퓨터가 있는 어느 사무실 방에 들어가 인터넷으로 사진을 한국에 보내려 하는데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릴 뿐만 아니라 접속이 자꾸 끊어져서 사진을 몇 장 보내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호텔을 나오는데 직원이 비즈니스 센터를 쓴 요금 150루블을 내란다. 나는 전화카드만 사면되는 줄 알았는데 왜 처음에 비즈니스 센터 사용 요금 얘기를 안 했느냐고 물으니 얘기를 했단다. 했는데 내가 듣지 못했다는 얘기다. 할 수없이 내고 나오니 300루블 내고 한 것이 하나도 없다.
오 늘 박물관에 가보니 휴일이라며 내일 오란다. 무슨 휴일이 화요일에 있담. 경비원이 그래도 영어로 "Holiday"와 "Tomorrow"는 한다. 고마운 사람이다. 어떤 러시아 사람은 이렇게 도와주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대부분 러시아 사람들은 그 반대다.
내일 오기로 하고 어제 찾다 못 찾은 음식점 "도라지" 찾아갔다. 오늘은 쉽게 찾았다. 개인 아파트를 개조해서 만든 조그만 음식점인데 젊은 동양여자가 카운터에 있어서 물어보니 한국 교포란다. 그래도 표현은 "Korean Russian"이란다. 우리 애들이 "Korean American" 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음식점 벽에는 "잘 잡수세요" 하고 한글로 써있었다. 내일 다시 가서 기회가 있을 때 "맛있게 드세요"라고 바꾸라고 말해주어야겠다.
론 리에 양배추가 들은 고기 국수가 맛있다고 해서 시켰더니 비빔밥을 먹지 않겠느냐고 한다. 비빔밥은 내일 먹을 테니 오늘은 국수를 먹겠다고 했더니 조금 있다 국수가 나오는데 내가 자주 먹는 러시아 라면 "도시락" 만도 못하다. 맛도 이상하고 양이 보통 라면 양의 3분의 1 밖에 안 된다. 식사로 먹는 음식이 아니고 식사와 함께 먹는 수프로 먹는 음식인가? 국수만으로는 배가 찰 것 같지 않아서 밥 한 공기를 시켜서 국수에 말아서 먹었다.
카 운터를 보는 동양여자는 한국 교포인데 말을 시켜보니 한국말은 전혀 못한다. "이름이 뭐예요." 하는 것도 못 알아듣는다. 미국 우리 애들만도 못하다. 그래도 영어는 제법 한다. 이름은 "니나"고 마가단에서 태어났단다. 어머니도 마가단 태생이고 아버지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시켄트 출생이란다. 아버지가 타시켄트 출신이라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어머니가 마가단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이해가 잘 안 된다. 어머니의 부모가 어떻게 마가단에서 태어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부모가 죄수로 온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시베리아에 살 곳이 많은데 하필 최고 오지인 마가단에 살게 되었을까? 내일 한가할 때 다시 가서 어머니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면 물어봐야겠다.
러시아나 옛날 소련의 일부였던 카자흐스탄 같은 나라에서 한국 교포를 만나면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미국이나 중남미 교포와는 달리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 떠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못살아서 떠나야했고 징용 때문에 떠나야했고 일본 경찰을 피해서 떠나야 했는데 고국에는 해방이 되어도 돌아갈 수가 없었고 고국이 잘 살게 되어도 고국은 모른 체하고, 서운한 감정이 없을 리 없겠다.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처럼 고국에 가고싶어 하는 대학생 나이의 교포들은 모두 장학금을 주어서 고국에 데려와서 대학을 다니게 하고 졸업 후에 한국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한국에 살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노인들도 그런 식으로 도와주면 좋겠다.
이 곳은 야쿠트스크보다는 덜 추운 곳 같다. 야쿠트스크에서는 건물의 문과 창이 3중으로 되어있는데 이곳은 2중뿐이다. 아마 바닷가라 덜 추운 모양이다. 오늘 오후 날씨가 4도였는데 (서울은 10도) 해가 나왔더라면 그보다는 위였을 것이다. 여름에는 별로 덥지 않은 듯 에어컨 실외기가 보이는 건물이 없다. 내륙 도시인 야쿠트스크보다 겨울에 덜 춥고 여름에 덜 더운 모양이다. 다시 말해서 야쿠트스크보다 살기 좋은 도시란 얘기다.
오 늘 카메라를 잃어버린 줄 알고 잠깐 혼이 났다. 나가서 다니다가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카메라가 가방 안에 없다. 호텔 방에 놓고 나온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호텔을 나와서 들린 곳은 단 한 군데 우체국뿐인데 우체국에서 인터넷 요금을 내느라고 카메라가 든 가방을 컴퓨터 앞에 있는 의자에 잠깐 놓아두었었는데 그때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생각해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다. 결국 호텔 방에 놓고 나온 것이 틀림없어서 돌아다니다가 호텔 방에 돌아가 보니 카메라가 아무 데도 없다. 정신이 아찔해진다. 어떻게 하나. 마음을 가다듬고 방을 찬찬히 찾아봐도 없다. 정신이 아찔한 가운데 가방을 다시 찾아보니 가방 안에 카메라가 있었다. 가방 안에 주머니가 여럿 있는데 카메라를 보통 넣어두는 주머니가 아니고 다른 주머니에 있었다. 다른 주머니에 카메라를 넣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것을 모르고 가방 안에 없는 것으로 단정해버렸던 것이다.
그 저께 야쿠트스크 공항에서도 비행기 표를 보통 넣어두는 바지 주머니가 아닌 다른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가 잃어버린 줄로 생각하고 가방을 뒤지고 공항 쓰레기통을 뒤지고 하면서 한참 동안 소동을 벌렸다. 다행히 두 번다 별일은 없었다. 끝까지 별일 없이 여행을 끝나면 좋겠는데 항상 여행이 끝나기 전에 무언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한 가지 러시아 칭찬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비교적 정직하다는 것이다. 남미를 여행할 때는 항상 도난 조심을 해야했었고 인도를 여행할 때는 항상 사람들 거짓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했었는데 러시아에서는 그런 조심은 할 필요가 없는 나라 같아서 마음이 편하다. 사람들이 좀 친절하면 참 좋을 텐데 아쉽다.
마가단의 중심가 레닌 가 풍경
![]() 1930년대에 시베리아에 유배되어 온 죄수들에 의해서 세워진 도시다
![]() 아름다운 유럽 풍 건물들도 적지 않게 보인다
시베리아 동부 사람들은 시베리아 서부 사람들보다 친절하다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영하 4도의 눈 내리는 날인데 눈이 땅에 쌓이지는 않는다
한국 교포가 경영하는 음식점인데 러시아어로 "도라지"라고 쓰여 있다 Copyright (c) 2004- By 박일선. All Rights Reserved. 이 글과 사진은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수정하지 않고 저작자를 박일선으로 (혹은 Elson Park) 표시하는 조건으로 아무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댓글 4
-
박일선
2010.09.11 20:07
"굴락"의 도시 얘기입니다. 한국어를 못하는 교포 음식점에 가서 엉터리 한국음식을 먹었습니다. -
이문구
2010.09.11 20:07
끝없이 이어지는 오지(?) 여행 기록이
신기하고 신비롭습니다.
잘 알려진 지역도 제대로 못 가는 주제라
이런 특이한 곳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림의 떡]입니다. -
김영길
2010.09.11 20:07
카메라를 잘 두고도 허둥지둥하셨군. 그래서
제자리에 없으면 그런 건망증이 생기지요.
여행은 좋은 곳만 선택해서 가는 것인데
박형때문에 새로운 상식을 얻는군요.지금은
낙후해 보이지만 시간이 되면 그곳도 멋지게
개발이 되겠지요. 연길이나 연변도 대충
비슷하겠지요? -
황영자
2010.09.11 20:07
항상 좋은 여행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알지못하던 사실들을 알려주어서 고맙습니다.
뼈의 도로에 묻힌죄수들 중에 한국사람들도 있지 않았을까요?
죄도 짖지 않았는데 죄수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맞게된 사람들 공연히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정말 우리나라도 이스라엘 처럼 억울하게 연변이나 러시아에 가 사는 동포들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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