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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부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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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같이 범속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띄우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발치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젊음을 다시 가져보게 하는 것은 봄이다.

 

잃었던 젊음을 잠깐이라도 만나본다는 것은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 헤어진 애인이 여자라면 뚱뚱해졌거나 말라 바스러졌거나 둘 중이요, 남자라면 낡은 털 재킷같이 축 늘어졌을 것이다. 젊음은 언제나 한결갈이 아름답다. 지나간 날의 애인에게서는 환멸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게서는 안타까운 미련을 갖는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를 해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무디어진 지성과 둔해진 감수성에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 늙으면 플라톤도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지혜도 젊음만은 못하다.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말은 ‘인생은 사십까지’라는 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들은 구십삼 퍼센트가 사십 미만의 인물들이다. 그러니 사십부터는 여생인가 한다. 사십년이라면 인생은 짧다. 그러나 생각을 다시 하면, 그리 짧은 편도 아니다.

 

“나비 앞장 세우고 봄이 봄이 와요” 하고 부르는 아이들의 나비는 작년에 왔던 나비는 아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지만 그 제비는 몇 봄이나 다시 올 수 있을까?

 

키츠가 들은 나이팅게일은 사천 년 전 루스가 이역 강냉이 밭 속에서 눈물 흘리며 듣던 새는 아니다. 그가 젊었기 대문에 불사조라는 화려한 말을 써본 것이다. 나비나 나이팅게일의 생명보다는 인생은 몇 갑절이 길다.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과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과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사십 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작은 축복이 아니다. 더구나 봄이, 사십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것이다.

 

녹슨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윈도는 기쁨을 주나니,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궁에 유폐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아아, 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오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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