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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부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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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

 


비 오는 오월 어느 날 비원에 갔었다. 아침부터 비가 오고 주말도 아니어서 사람이 없었다. 비원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 숲이 울창하여 산속 같은 데가 있다.

 

빗방울이 얌전히 떨어지는 반도지 위에 작고 둥근 무늬가 쉴 새 없이 퍼지고 있었다. 그 푸른 물 위에 모네의 그림 수련에서 보는 거와 같은 꽃과 연닢이 평화롭게 떠있었다.

 

꾀꼬리 소리가 들린다. 경쾌한 울음이 연달아 들려온다.

 

꾀꼬리 소리는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갔다.

 

서울 출생인 내가 꾀꼬리 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충청도 광시라는 시골에서였다. 내가 서울로 돌아오던 날 아침 ‘그 아이’는 신작로까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꾀꼬리가 울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작은 신문지 봉투를 주었다. 그 봉지 속에는 물기 있는 앵두가 가득 들어있었다.

 

돈화문까지 나오다가 꾀꼬리 소리가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나는 반도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기다리기도 전에 리리 폰스보다 앳되고 더 명쾌한 꾀꼬리 소리가 들려왔다. 리리 폰스는 두 번 앙코르에 응해주고는 그 다음에는 절을 몇 번씩 하고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나의 꾀꼬리는 연달아 울었다. 비는 내리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 노란 꾀꼬리는 계속 울었다.

 

나는 다시 꾀꼬리 소리를 스무 번이나 더 들었다.

 

내가 본 무대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아직 오월이 멀었는데 병든 남편은 뻐꾸기 소리를 듣고 싶다 한다. 아내는 뒷산에 올라가 뻐꾸기 소리를 낸다. 남편은 그 소리를 들으며 운명을 한다.

 

폐를 앓는 젊은 시인 키츠는 한밤중에 우짖는 나이팅게일 소리를 들으면서 고통 없이 죽는 것을 풍유하리라 하였다.

 

나는 오월이면 꾀꼬리 소리를 들으러 비원에 가겠다.

 

비원은 창덕궁의 일부로 임금님들의 후원이었다. 그러나 실은 후세에 올 나를 위하여 설계되었던 것인가 한다. 광해군은 눈이 혼탁하여 푸른 나무들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요, 새소리도 귀담아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

 

미는 그 진가를 감상하는 사람이 소유한다. 비원뿐이랴.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 분수가 있는 광장, 비들기들, 무슨 애버뉴라는 고운 이름이 붙은 길, 꽃에 파묻힌 집들, 그것들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순간 다 나의 것이 된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한 나의 소유물이다.

 

주인이 일년에 한 번 오거나 하는 별장은 그 고요함을 별장지기가 향유하고, 꾀꼬리 우는 푸른 숲은 산지기 영감만이 즐기기도 한다. 내가 어쩌다 능참봉을 부러워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오는 것이다.

 

은퇴도 하였으니 시골 가서 새소리나 들으면 살까도 생각하여 본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꾀꼬리 우는 오월이 아니라도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우산을 받고 비원에 가겠다. 눈이 오는 아침에도 가겠다.

 

비원은 정말 나의 비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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