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재의 순례기를 읽으며
2012.12.23 18:49
글을 읽을 때, 글쓴이에 관한 일화, 성격, 특히 그의 가치관을 알고 있으면 행간(行間)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도움을 받는다. 이와는 반대로 주어진 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방해를 받기도 한다. 소설을 읽을 때, 문학평론가의 글을 읽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선입견을 심어주어 입맛을 잃게 하는 경우가 있다. 예로, 이문열의 소설을 읽기 전에 김윤식의 평론을 읽으면 독감(讀感)을 잃을 수 있다. 그를 소설가가 아니라 이야기꾼으로 평가절하한 서울대학교 교수의 평론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요즘 뮤지칼로 나온 레미제라불을 감상하기 전에 이 소설이 빅톨 유고가 영국에서 망명 생활 중에 썼으며, 그가 프랑스에서 잘 나갈 때는 애인을 집에 데려다 한 집에서 같이 살았고, 틈만 있으면 하녀들을 건드렸다는 정력가(?)였다는 사실(fact)이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된다.
신정재의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다시 만나다’를 읽을 때, 동창으로, 농구를 즐기며 키가 큰 편에 속하던 그가 아니라, 무심한 나를 위해 ‘서울사대부고 제 11회 동창회보’를 제 20권(년?), 통권 70호(?)를 발행해오고 있는 봉사덩어리를 그려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그의 순례기의 내용에 구구절절이 흐르는 천주교 신자로서의 언행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그 겸손함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상하게 된다. 지금 나는 집사람의 잔소리로 천천히 읽어가며 김정일 신부의 추천사(동명 이인의 김정일을 떠올리면 곤란)를 다시 읽었다.
책을 읽고 작가를 만나는 것은 거위의 간을 먼저 먹고 거위를 대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글을 읽는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독자들이 순수한 독자로 글을 읽어준다면 작가는 얼마나 행복할까. 주머니가 비어도
부자일 수 있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신정재의 글은 솔직하고 그의 신앙은 깊고 성품은 순수하다. 우러러 찬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