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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 -1

2012.12.23 18:59

오세윤 조회 수:199

 예쁜 여자



  춥다. 영하 10도라는 뉴스에 든든하게 입었어도 엄청 춥다. 코끝이 떨어져나갈 듯 맵다. 응달진 정류장에는 내 나이쯤일 노신사 한 사람이 어깨를 움츠린 채 서성이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곁에 다가서며 흘끔 그를 본다. 깔끔한 차림이기는 했지만 그도 역시 나나 같게 유행이 지난 통 넓은 바지를 입고 있다. 주민 절반이 은퇴자들인 동네, 헐렁한 바지가 바람에 감긴다.


 10분 가까이 기다려 도착한 버스는 평일 낮 시간이라 한가하리란 기대와는 달리 빈자리가 선뜻 눈에 띄지 않았다. 두어 번을 두리번거리고서야 뒷문 두 번째 좌석에 빈자리를 발견했다. 젊고 예쁜 아가씨가 안쪽에 1/2 첼로 케이스를 뉘여 놓고 통로 쪽에 앉아 열심히 스마트폰을 눌러대고 있었다.


 “좀 앉을까요?”


 뜨악하니 고개를 들어 흘낏 나를 칩떠보며 아가씨가 또박또박 대답한다.


 “악기를 못 치워요.”


 그리곤 방금 전의 무표정으로 돌아가 다시 스마트폰에 눈을 박는다. 기가 차다. 어른대접은 고사하고 그런 대꾸가 과연 가당한 것인가. 세대 간의 관계가 단절을 넘어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고는 하지만 예의가 말씀이 아니다. 보기 딱했던 뒷좌석의 중년이 슬며시 일어나 내 팔을 잡아 자기 자리에 앉힌다. 어찌할까. 세상은 서로 배려하고 조금은 양보하며 사는 거라고, 공중도덕과 예의를 들먹이며 일장 훈시를 할까. 악기가 소중해 자리를 하나 차지할 양이면 자신은 일어서서 남에게 앉게 하고 가는 게 도리가 아니냐며 경우를 따져 소란을 피울까. 콰디넬리는커녕 제 사이즈도 아닌 걸 갖고 다니는 걸 보면 학생이거나 기껏해야 초보 연주자일게 번연한 데 어찌 이리 배포가 철판인가. 예쁜 얼굴이 아깝게 그녀가 참 경우 없고 몰지각해 보였다. 말을 해봐야 실언失言만 될 것 같아 참으려 했지만 부아가 콧마루까지 치밀었다.


 그녀는 아침마다, 아니 하루에도 몇 차례씩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오뚝하게 세운 콧날과 쌍까풀 한 눈을 흐뭇해하고 날씬하게 가꾼 몸매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예쁜 여자, 그러나 결코 예의롭지 못한 여자의 뒤통수에 대고 나는 가는 내내 연실 이죽거리며 다친 속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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