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나이로 태어나서 -1
2013.03.04 23:16
사나이로 태어나서
술이 몇 순배 돌아 거나해지면 동규는 벌떡 일어나 의례 군가를 부른다. 그것도 딱 위의 한 소절만을 연거푸 부른다. 왼쪽으로 고개를 갸웃이 들어 돌린 채 꿈인 듯 생시인 듯 어리마리한 표정으로 발 박자를 맞춰가며 낮게 군가를 부른다.
그럴 때면 그가 벌써 자기주량을 다 채운 것임을 알고 더는 그에게 술을 권하지 않는다. 거기서 한두 잔만 더하면 동규는 곧장 고개를 푹 꺾고 앉아 코를 골아대는 게 정해진 코스여서 그냥 버려두고 우리들끼리 술잔을 돌리며 된소리 안 된 소리로 회포들을 푼다.
군가를 부를 때의 친구의 눈은 몽롱하게 풀려 있다. 허공을 향해 고정된 눈에는 이미 우리들도 없고 현재도 없다. 다른 곳 다른 시간 속을 배회하고 있는 모양새로 말을 해도 듣는 둥 만 둥 이다. 친구들은 그 순간 동규가 젊은 날의 군대시절로 돌아가 있는 거라고도 하고, 홀어머니와 두 여동생과 함께 지내던 고향을 꿈꾸고 있을 거라고도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지금 동규가 그의 첫사랑 댕기머리 애심이를 그리고 있는 거라며 키득키득 웃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