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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로 태어나서 -2

2013.03.04 23:19

오세윤 조회 수:226

 

사나이로 태어나서


                                                           


                                                          



 


 연말을 맞아 친구 셋이 백사마을 초입 그의 집으로 병문안 간 날, 친구는 마침 오전 일을 끝내고 들어온 부인의 시중을 받으며 점심을 먹고 있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일 년 남짓 못 본 사이 몸은 축이 날대로 나고 키도 볼품없이 짜부라 들어 눈 맞추기조차 민망했다. 머리만 그대로 컸다. 병약한 초등학교 저학년의 그것처럼 조붓해진 어깨위에 얹혀 있는 어른 얼굴, 초췌하게 주름진 얼굴이 낯설고 서글펐다. 힘겹게 수저를 놀리다 말고 친구가 조그맣게 말했다.


 “내가 몸을 너무 험하게 굴렸나봐.”


 가는 목소리로 하는 자책이 듣기 면구했다. 하긴 우리가 알기로도 그는 우리들 누구보다도 세상을 참 힘들게 살아온 건 사실이었다. 서울역 지게 품팔이를 시작으로 동대문시장 짐꾼에서 양말공장 공장장을 하기까지, 그러다 투자한 공장이 부도나는 바람에 거리로 나앉은 일, 건축 공사장 인부로 새벽 추위에 떨던 많은 날들. 그중에서도 청소차 인부로 일하던 때의 끔찍했던 고생담은 들을 때마다 아팠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쓰레기를 수거해 난지도에 가면 대충 점심때가 된다고 했다. 참기 힘든 시장기에 허겁지겁 도시락 뚜껑을 열면 어느 사이 파리들이 새카맣게 달려들어 밥을 덮는 바람에 밥알은 보이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걸 쫓아내며 걸신들린 듯 도시락을 비우고 앉아 쉬노라면 그때서야 발치 멀리 한강물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한낮 햇살아래 유유히 흐르는 너른 강물과 그 너머의 아지랑이 일렁이는 아스라한 강변 정경이 마치 떠나온 전생의 한 때를 보는 것처럼 현실감이 사라지고 꿈을 꾸고 있는 듯 아리송해지더라고 했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의 자기가 진짜 자기가 맞는 건지 아니면 전생에 지은 업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운 기분이 되더라고. 그러다보면 썩어 악취 나는 쓰레기더미도 윙윙 날아드는 파리 떼도 그저 업 때문인 인연이거니 여겨지고, 언젠가는 다시 군대생활 할 때처럼 걱정 없던 날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때마다 되뇌어 말하고는 했다.


 


 


 “난 군대 갔을 때가 젤 루 행복했어. 군대는 밥그릇으로 따지잖아. 밥걱정도 없고. 신참으로 들어 온 대학출신이 내게 경례를 부칠 땐 기분이 삼삼하데. 하긴 그런 것들보다도 신나고 고마웠던 건 집사람을 만난거지. 군복을 쫙 빼입고 병장 빼지를 단 내가 그렇게 멋있어 보였던가봐. 사회에 나왔을 때 나를 봤다면 어림 반 푼 어치도 없었을 일이지. 집사람은 일생동안 내게 참 일념정성이었어. 덕분에 기죽지 않고 열심히 살 수 있었지. 이 집도 집사람과 나, 그리고 아들 며느리가 허리띠 졸라매고 8년 걸려 장만한 거야. 곧 재개발이 된대.


 군대 갔다 왔겠다, 가정 이뤘겠다, 거기에 아파트까지 장만했다면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만큼 한 게 아니겠어. 못 배운 게 한으로 남긴 하지만 어떻게 세상 다 이루고 살겠나. 근데 좀 걱정스러워. 아파트값이 마구 곤두박질친다니 말이야. 마누라한테 남길 재산이라곤 아파트밖에 없는데 -.”


 말을 마친 친구가 바튼 기침을 했다. 어느 사이 오후의 햇살이 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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