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 함께하는 부고인

ㆍ 함께하는 부고인
[re] 글과 사진 합성 예 / 2009년 뉴질랜드, 호주 여행(재탕)
2013.05.17 15:33


1. 앞당겨진 행운의 출발 2009년 3월 2일(월) 2월 중순경 친구 이동순에게서 전화가 왔다. 3월 초에 호주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내가 계획한 해외 여행은 매년 이르면 5월 말에서 6월 초로 잡아 놨고 몇 해 동안 그대로 실천해 왔다. 물론 이번 호주 여행도 6월로 생각하고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 해 함께 가자고 얘기해 두었지만 미국 입국 일자 때문에 앞당겼다는 것이다. 나는 여행 여건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동순의 간곡한 권유로 과감하게 날짜를 앞당겼다. 호주 쪽은 이제 막 여름 지나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이기 때문에 겨울로 접어드는 6월보다는 여행하기에 적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미처 마음의 준비도 없었던 호주 여행이 벼락치기로 준비되고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 사실 호주 여행은 유럽 여행에 밀려 미루고 미룬 끝에 이루어졌다. 젊은 날 사업 때문에 호주를 여러 차례 다녀온 친구 김영종은 "호주에 뭐 볼 게 있나?" 하면서 말리는 분위기였고 10년 가까이 뉴질랜드에 가서 생활하다 귀국한 친구 하기용조차 "뉴질랜드에 뭐 볼만한 게 없는데." 하면서 별로란 반응이었기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못 가 본 곳에 대한 궁금증을 참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런 강한 부정적인 반응이 오히려 호기심을 더 발동 시켰기에 드디어 실천에 옮긴 것인지도 모른다. 2009년 3월 3일(화) KAL기로 출발해서 뉴질랜드 북섬 오클랜드에 도착해 뉴질랜드 남섬을 거쳐 호주 시드니로 갔다가 다시 KAL기로 귀국하는 11일 코스였다. 오후7시 조금 넘어 출발한 비행기는 11시간 정도 비행 끝에 다음 날 현지 시간 오전 10시경에 뉴질랜드 북섬의 오클랜드공항에 도착했다. 4시간 정도의 시차라 크게 시차로 인한 어려움을 없었다. 물론 D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 일행은 이동순 부부와 우리 부부 넷, 대구에서 환갑 기념으로 함께 온 섬유 사업가 친구 부부 넷, 부인을 먼저 저 세상에 보낸 슬픔을 안고 회갑을 맞아 미혼의 두 딸을 데리고 온 삼부녀, 서울에서 온 신혼 부부 한 쌍, 이렇게 모두 13명이었다. 한국에서 따라온 가이드는 없지만 한국인 현지 가이드와 역시 한국인 기사가 운전하는 33인승 중형 버스로 편안하고 오붓한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유럽처럼 제한된 시일에 여러 나라를 돌아야 하는 강행군이 아니고 두 나라를 느긋하게 감상하며 즐기는 여행이라 마음도 여유롭고 느긋했다. 이곳은 한국인 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주로 이용하게 되어 첫 점심 식사부터 초록홍합 해물탕 중심의 뷔페를 들었다. 이곳 뉴질랜드와 호주는 오랜 역사적 가치의 문화 유적은 없고 주로 자연을 즐기는 관광으로 처음에 들른 곳은 반딧불(glow worm) 석회 종유동굴이었다. 그룹별로 어둠 속에 지하 강물을 따라 보트를 타고 안내자가 줄을 잡아당기며 가는대로 숨을 죽여 가며 마치 깜깜한 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듯이 수십만 개의 신비스런 반딧불을 구경하는 곳이다. 어둠 속에서 동굴 천정 벽에 매달린 반딧불을 자극시키지 않기 위해 소리도 내면 안되고 물론 촬영도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 자료를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버스로 2시간 정도 달려서 유황도시인 로토루아(Rotorua)의 한 호텔에서 첫날 여장을 풀었다. 이곳은 유럽과 달리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고층 호텔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일행이 묵은 호텔들도 대부분 2층 건물로 내용은 웬만한 유럽 호텔보다도 오히려 더 충실하면서 조용하고 드나들기도 편리했다. 이동순과 나는 항상 호텔 옆 방을 사용하면서 저녁 식후 서로의 방을 방문해 부부 함께 조촐한 파티(?)를 열고 하루의 피로를 풀며 우정을 나누었다. 2009년 3월4일(수) 느지막한 시간인 아침 9시 30분에 출발해서 타우포(Taupo)로 향했다. 처음 들른 곳은 와라이케이 지열발전소(Waraikei Geothemal Power)였다. 뉴질랜드는 화산 중심으로 형성된 북섬과 빙하 중심으로 이루어진 남섬의 특징을 참고로 자연을 감상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유황 냄새가 물씬 풍기며 바위 사이로 수증기와 연기, 지열이 솟아오르고 있는 곳을 이용해 발전을 한다고 하니 신기할 뿐이다. ![]() 후카 폭포(Huka Fall)는 폭포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지만 힘차게 흐르는 수정같이 맑고 푸른 물과 낙차가 낮은 폭포 주위 물안개 위로 형성된 작은 무지개가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다. 타우포 번지점프(Taupo Bungy)대에 이르니 역시 번지 점프대 아래의 물은 눈부시게 푸르렀다. 뉴질랜드화로 100달러가 넘는 비용을 핑계 대면서 멋진 번지 점프의 유혹을 물리치고 뒤돌아서야 하는 내 나이가 아쉬웠다. 아, 참 번지점프하면 이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일행 중에는 유일하게 1년 전에 아내를 암으로 세상을 떠나보내고 금년 환갑 기념으로 두 딸과 함께 여행을 온 남자가 번지점프에 가담했다. 그는 점프로 뛰어내리는 순간에 큰 소리로 "OO야!" 하고 비명을 지르듯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점프 마치고 돌아온 후에 세상 떠난 자기 아내 이름을 불렀다고 울먹이며 고백했다. 그러면서 손가락에 낀 커다란 반지를 내 보였다. 아내를 화장한 후 가루를 섞어 만든 백금반지로 평생 자기 몸에 지니다 자신도 언젠가 아내 곁으로 떠나가겠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좀 괴기스럽다고 여겨지면서도 마음 한편이 찡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우리 일행과 어울리지 않고 여행 내내 항상 버스 맨 뒤쪽에 앉아 다니며 별로 말이 없는 두 딸과 함께 지냈다. 타우포 호수에 이르니 몇 몇 사람들이 호수 한가운데로 골프공을 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물 속에서 공을 다 건져낸다고는 하나 내가 보기에 모두가 골프에 정신나간 사람들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역시 나는 평범한 서민일 뿐이다. 이곳을 지나 이 타우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식당(Restaurant Aorangi Peak)에서 일행은 레드와인을 곁들인 스테이크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며 감상할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에 도착한 곳은 로토루아(Rotorua)의 아그로돔농장, 세계 양 산업의 70%를 차지하는 뉴질랜드 농장 체험이란다. 극장식 공연장에서 여러 나라 언어로 해설하는 헤드폰으로 설명을 들으며 양몰이 개와 양들의 쇼, 양털 깎기 쇼를 관람하고 밖에 나와서는 직접 양몰이 개 시범까지 볼 수 있었다. 호텔에 들기 전에 유황 야외온천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로토루아 호수를 내려다보며 수영과 온천욕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 2009년 3월 5일(목) 아침에 첫 코스는 영화 주라기공원 촬영지로 유명한 레드우두(Red Wood) 삼림욕이었다. 욕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 사실 우리 나이에 여행은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피곤이 따르는 법이다. 특히 유럽 여행은 복잡한 도시와 문화 유적, 박물관 등을 돌다 보면 오후에는 지쳐 잠들게 되고 쫓기는 일정 때문에 새벽부터 눈을 부비며 부지런히 이동해야 하니 귀국할 때쯤이면 피곤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여유가 있고 자연과 어울리는 효과 때문인가 몸도 정신도 개운했다. 다음에 들른 곳은 마오리 민속촌. 유황 냄새가 짙게 풍기며 곳곳에서 간헐천이 치솟는 천혜의 지역을 민속촌으로 보존해 놓아 세계의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관광지였다. 토속 마오리인들이 창을 들고 춤을 추며 혀를 길게 뽑아 보이는 장면은 적들을 위협하는 행위라 하나 그저 코믹하기만 했다. 화보나 방송으로 보았던 낯익은 마오리 전통 쇼를 즐기고 역시 전통 마오리족의 독특한 항이 런치로 점심을 해결했다. 메뉴는 닭다리와 버터를 발라 먹는 찐 옥수수, 양고기, 삶은 감자와 삶은 당근, 양배추였다. 까다로운 한국인 입맛 때문에 가이드는 걱정을 했지만 일행들은 이 음식에 모두가 만족했다. 식사 후에는 쿠리아우파크(Kuirau Park)에서 야외에 설치된 온천 족욕을 즐겼다. ![]() 그동안 가을로 접어드는 이곳 날씨가 맑고 청명했었는데 비바람이 치기 시작했다. 외국 여행 중에 가장 싫은 상황이었다. 오클랜드로 되돌아가는 동안 미숀베이(Mission Bay)에 이르니 심한 바람과 빗발에 파도까지 험해서 바닷가 커피숍(Mecca Cafe)에 들어가 이동순 부부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밖의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시간을 보냈는데 이것도 제법 운치있는 여유였다. 오클랜드에 이르러서도 화산 활동으로 이루어진 유명한 사화산으로 에덴동산이라 불리는 언덕에 올라 오클랜드 시내를 둘러보았지만 이 역시 심한 비바람 때문에 바로 내려와 오클랜드 항구를 배경으로 쭉 뻗은 완만한 곡선의 하버브리지를 차로 왕복하면서 오클랜드의 아름다운 야간 풍경을 관람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2. 환상적인 피요르드 크루즈 2009년 3월 6일(금) ![]() 오클랜드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른 아침에 뉴질랜드 항공편으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역시 한국인 가이드와 한국인이 운전하는 20인승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화산섬으로 이루어진 뉴질랜드 북섬과 달리 빙하로 이루어진 뉴질랜드 남섬은 색다른 분위기로 다가왔다. 더 많은 맑은 물과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의 들과 산이 이어지고 있는 남섬은 북섬에 비해 인구도 훨씬 적어서인가 싱그러운 자연의 보고로 느껴졌다. 첫 번째로 향한 곳은 테카포(Teapo) 호숫가에 그림처럼 외롭게 서 있는 자그마한 [선한목자의 교회]였다. 교회 안에서 절경의 호수를 관람하고 1불의 헌금을 하면 기념 엽서를 받고 나오는 곳인데 나는 밖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촬영하느라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지금에 와서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 퀸스타운(Queenstown) 부근의 높이 43m의 절경을 배경으로 줄에 매달려 뛰어내리는 하켓번지(A.J Hackett Bungy)는 1회 사용료가 200불이나 된다. 뛰어내리면 보트가 다가가 사람을 줄에서 내려 주고 기념사진과 동영상이 담긴 CD를 주는 댓가란다. 역시 내게는 그림의 떡이다. 여유있는 시간을 이용해 특이한 흰 사슴 농장에 들러 사슴을 구경하며 노드락거리다가 퀸스타운 해변의 시가와 항구를 둘러보고 한식 불고기로 배를 불린 후에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2009년 3월 7일(토) 아침부터 기대와 설레는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오늘 목표는 그 유명한 밀포드사운드(Milford Sount)의 피요르드 관광이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게앙에르피요르드에 홀딱 반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기대는 더욱 컸다. 버스로 목표 지역을 향하는 동안 티나우(Teanau)호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 오락가락하는 빗속에서 형성되는 아름다운 무지개 속으로 계속 달렸다. 쌍무지개, 동화의 제목으로 말만 듣던 쌍무지개를 바라보면서 일행은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 거울호수(Mirror Lake)는 거울처럼 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호수 표면이 거울처럼 반사하여 산을 비추는데 거꾸로 글씨가 쓰여 있는 간판은 호수 표면에 비치면서 Mirror Lake라고 읽게 되어 있다. 신비한 호수를 감상하다 보니 비바람 속에 밀포드사운드 크루즈 선착장에 이르렀다. 선상에서 멋지게 차려진 뷔페로 점심을 들면서 피요르드를 감상하는 크루즈 여행이 시작되었다. 해발 1,697m나 되는 마이터피크, 라이언마운틴 등 절벽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감탄을 자아내었다. 아무리 좋다 해도 뉴질랜드의 피요르드는 결코 노르웨이의 피요르드를 따라지 못할 것이라는 내 선입견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피요르드가 지난 해(2008년) 세계 Best 명승 50선 중 1위였다는 설명을 현장에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비 바람 때문에 폭포의 수와 떨어지는 수량이 더욱 대단한데다가 강한 바람을 타고 흩어지거나 거꾸로 기어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휘날리는 폭포수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야~" "와~" "우~" 하는 감탄사가 넘치고 비 바람에 흔들리는 선상에서 이리저리 몸을 겨우 가누면서도 사진을 촬영하는 관광객들은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 비 바람 때문에 오히려 더욱 장관을 연출한 환상적인 피요르드 크루즈 여행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 2009년 3월 8일(일) 내일이면 호주 시드니로 이동해야 하니 오늘이 뉴질랜드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애로우타운(Arowtown)은 퀸스타운 주변에서는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옛 서부 시대에 세계에서 사금이 가장 많이 산출된 곳이라지만 지금은 한적한 마을이 모습만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우리 일행의 버스도 정차하지 않고 그냥 천천히 지나치면서 눈요기만 하고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했다. ![]() 한가하게 전차가 지나가는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이 도시의 상징으로 유명한 고딕양식의 영국교회 대성당 앞에서 잠시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한국전생 전에 서울 한복판에서 전차를 타고 초등학교에 등교하던 생각을 하면 전차가 다니는 외국의 도시들이 늘 부럽다. 면적이 182ha나 된다는 시민 휴식처인 넓은 해글리공원을 거닐며 무성한 나무와 꽃밭 사이사이에서 여유롭게 휴일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저녁에는 한식 돼지 볶음으로 배를 채우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이동순 부부와 뉴질랜드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는 파티를 열었다. 3. 코알라와 오페라하우스의 조화 2009년 3월 9일(월) 아침부터 서둘러 크라이스트처치공항에서 뉴질랜드 항공으로 약 4시간 가까이 날아서 드디어 호주의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 역시 한국인 현지 가이드와 22인승 버스의 한국인 기사가 우리를 대기하고 있었다. 영국인들이 지배한 곳이라 뉴질랜드나 호주 마찬가지로 모든 차량들은 좌측 통행이었고 따라서 운전석은 차량 앞 오른쪽, 문은 왼쪽에 배치되어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도착 즉시 우리는 시드니 근교에 있는 블루마운틴(Blue Mountain)의 에코포인트로 향했다. 고도가 1,100m라고 하는데 마침 안개가 자욱해서 제자매봉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안개 속에서 경사 50도를 하강하는 궤도 열차를 타고 544m를 내려가 과거 석탄 채굴현장을 둘러본 후에 다시 곤돌라로 올라오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 호주에 오면 반드시 둘러봐야 하는 곳 중의 하나가 동물원이다. 캥거루, 왈라비, 코알라는 호주를 대표하는 동물인데 우리 밖으로 나와 어슬렁거리는 캥거루를 쓰다듬어도 보고 나무에 매달려 잠들었거나 유칼리나무 잎만을 따 먹는 귀여운 느림보 코알라를 만져보며 사진도 찍고 둘러보는 관광객들은 신기해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일정에 따라 거대한 규모의 한가한 올림픽경기장을 둘러보았다. 저녁에는 야외 공원에서 장작으로 굽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위주의 뷔페로 식사를 하며 우리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아이비스(ibis : 따오기)에게 구운 고기를 던져주는 즐거운 시간도 가졌다. 나중에 식당 주인에게 들으니 먹이 던져주는 사람을 현지인이 고발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해서 뜨끔했다. 2009년 3월 10일(화) 이번 여행 13명 일행 중에 이동순과 내가 가장 고령자로 나름대로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버스에서나 식당에서 우리에게 전망 좋은 자리의 좌석을 양보해 주었다. 오늘은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약 4시간 거리에 위치한 포트스테판으로 장거리를 이동했다. 해변에 드넓게 펼쳐지는 모래 언덕인 아나베이에 이르러 사막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낙타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US-4WD 승용차로 모래사막을 질주했다. 그래서 도달한 곳은 모래 언덕에 기어 올라가 샌드보드에 앉아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체험이었다. 내려오는 것은 두려울 것이 없는데 올라가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 젊은 사람들은 대여섯 차례씩 오르내렸지만 나는 오기로 간신히 세 차례만 샌드보드를 탔는데 이동순이 오기로 한번을 더 타고 내려오더니 힘들어 씩씩거린다. 나이를 어찌 속이랴. 그러나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모래 장난을 한 경험이 매우 즐거웠다. 한국인 식당에 들러 제법 잘 차려주는 설렁탕으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넬슨베이(Nelsonbay)에 이르러 요트를 타고 돌핀워치크루즈를 경험하게 되었다. 약 한 시간가량 야생 돌고래를 구경하는 코스라 기대가 컸지만 야생이라 그런가 돌고래들이 멀리서 떼지어 몰려다니거나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재빨리 물속으로 머리를 처박아 버리는 바람에 변변한 사진 한 장도 못 건진 것이 아쉬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포도 농장에 들러 와인 시음만 하기가 미안스러워 호주화 22달러로 와인 한 병을 구입해 저녁에 이동순과 간단한 와인 파티를 벌이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2009년 3월 11일(수) ![]() 드디어 내일이면 한국으로 떠난다. 오늘은 시드니에 다녀갔다는 증명을 남기는 날이다. 그 유명한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로 잘 알려진 시드니항만 크르주투어다. 선상 점심 식사 시간에 맞추기 위해 오전 중에는 간단한 일정이 짜여져 있다. 바위 언덕에서 바다를 조망하는 갭팍(Gab Park)에서는 연합군이 상륙하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나바론 촬영지 언덕을 멀리 바라볼 수 있었다. 대부분사람들은 이곳을 빠삐용 촬영지로 착각을 한다고 한다. 이후에 규모는 작아도 마치 해운대와 비슷한 본디비치(Bondy Beach)를 거쳐 크루즈 여행을 시작했다. 선상 뷔페를 들며 약 2시간가량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시드니항만을 둘러보게 되는 코스다.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듯한 그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를 바다 위에서 빙 둘러보고 난 후 하버브리지 아래를 지나 배에서 내려 직접 이 건물을 가까이 접근해 볼 수 있었다. 멀리서 본 것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에 감탄이 절로 났다. 한편 시드니 하면 의례히 사진에 등장하는 이 오페라하우스의 정면이 바다 쪽이 아닌 육지라는 것을 알게 된 사실이 부끄러웠다. ![]() 크루즈를 마치고 항만 인근의 수족관에 들러 다양한 해양 어류를 관람했다. 이 수족관 대표 동물 듀공(Dugong)은 어류가 아니라 1년 이상 임신해서 역시 1년 이상 젖을 먹이고 해초만 먹는 짐승이라고 한다. 안작(Anzac) 다리를 건너 시내로 돌아와 씨푸드(Sea Food) 저녁 식사를 위해 들어간 식당은 모두가 모자를 벗어야 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대형 식당으로 관광객들의 주정과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하나 그 이유가 이해되질 않고 오히려 중국인들의 소위 [뙤놈] 성격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드디어 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호텔에서 꿈처럼 지나간 열하루의 일정을 되돌아보며 이동순과 마지막 밤의 회포를 풀었다. 다음 날 아침은 도시락(Boxed B' Fast)으로 해결한 후 아침 9시 발 KAL기로 시드니공항을 출발해 오후 5시 30분 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4. 후기(後記) 지금까지 웬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다녀와 신기할 것도 관심 갈만한 곳도 아닌 호주, 뉴질랜드에 관한 정말로 재미없는 여행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번 여행이 내게는 생각지도 않게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전환을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내 해외 여행은 5~6년 동안 항상 5월 말에서 6월이나 늦어도 7월 초 사이에 이루어졌다. 여행적금을 5월 말 경에 찾을 수 있도록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동순의 갑작스런 제안에 얼결에 다녀온 여행, 그러나 나는 생각지도 않게 6월 초에 30년 동안 살던 대전을 떠나 경기도 안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해외 여행에 대한 내 집착이 워낙 컸기 때문에 만약 3월 여행이 없었다면 아무리 좋은 여건이 제시 되었다 해도 나는 6월에 이사를 제쳐놓고 해외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내가 대전을 떠나 안산으로 이사를 간다는 말을 처음 했을 때 아내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나 경제 여건이 서울권 이사에 맞지 않았고 평소 우리의 대전 생활이 그만큼 안정(고정)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대전은 직장 때문에 1980년에 내려간 곳이고 2004년에 은퇴를 했으니 더 이상 대전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나나 아내 모두가 서울에서 태어났고 학연, 혈연 모두 서울권이라 서울로 오는 것이 당연했지만 30년 전에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간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서울로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서울과 지방의 부동산 경기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 버려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 결과적이긴 하지만 이동순과 함께한 이번 여행은 내게는 인생 전환의 마지막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비록 안산이란 시골의 작고 초라한 시골 집이지만 인생 말년에 형제들, 고교 대학 친구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 신께 감사하고 친구 이동순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
댓글 3
번호 | 제목 | 이름 | 날짜 | 조회 수 |
---|---|---|---|---|
8105 | 왠지 허전한 5월 두 번째 인사회.. [10] | 이태영 | 2013.05.18 | 177 |
8104 | 5월의 서정.....모차르트 명곡여행 [4] | 심재범 | 2013.05.18 | 104 |
8103 | 뉴질랜드 여행기 10 | 박일선 | 2013.05.17 | 102 |
8102 |
' 내일도 중앙공원으로 가자 ㅡ
![]() | 하기용 | 2013.05.17 | 91 |
8101 | 활용해 볼만한 기법 2 / 글에 사진을 넣어 구성하기(사진과 글 사이 여백 방법 추가) [11] | 이문구 | 2013.05.17 | 135 |
» | [re] 글과 사진 합성 예 / 2009년 뉴질랜드, 호주 여행(재탕) [3] | 이문구 | 2013.05.17 | 169 |
8099 | 뉴질랜드 여행기 9 | 박일선 | 2013.05.17 | 84 |
8098 | 저의 배낭여행 카페에 올린 저의 소개 글을 소개합니다 [2] | 박일선 | 2013.05.17 | 114 |
8097 |
' 석가탄신일 ㅡ
![]() | 하기용 | 2013.05.17 | 95 |
8096 | 글 위를 흐르는 고요한 달빛에.......바이올린 협주곡 8곡 | 심재범 | 2013.05.17 | 83 |
8095 | 웃고 갑시다 (정말 재수 없는 남자) [2] | 심재범 | 2013.05.16 | 126 |
8094 | 뉴질랜드 여행기 8 [4] | 박일선 | 2013.05.16 | 121 |
8093 | 선농 축전 보충 합니다. [5] | 정지우 | 2013.05.16 | 203 |
8092 | [re] 선농 축전 보충 합니다. (2) [2] | 정지우 | 2013.05.16 | 168 |
8091 | [re] ## 선농 축전 보충 -- 단체사진 [7] | 성기호 | 2013.05.16 | 174 |
8090 | 여유로운 일상의 향기 ;커피 클래식 | 심재범 | 2013.05.16 | 91 |
8089 |
' 오랜만에 꼬마와 함께 ㅡ
[1] ![]() | 하기용 | 2013.05.16 | 111 |
8088 | 뉴질랜드 여행기 7 [3] | 박일선 | 2013.05.15 | 111 |
8087 | 5월의 꽃 장미 한송이 [2] | 심재범 | 2013.05.15 | 6749 |
8086 |
' 5月 두 번째 '인사회' 날에 ㅡ
[2] ![]() | 하기용 | 2013.05.15 | 125 |
8085 | 아름다운 사람들 소사복사골 [8] | 황영자 | 2013.05.15 | 140 |
8084 | 뉴질랜드 여행기 6 [3] | 박일선 | 2013.05.14 | 110 |
8083 | '해방촌 예술마을' 나들이 [10] | 이문구 | 2013.05.14 | 126 |
8082 | 뉴질랜드 여행기 5 [5] | 박일선 | 2013.05.14 | 107 |
8081 |
' 작년 이맘때 ㅡ
![]() | 하기용 | 2013.05.14 | 87 |
* 여행기를 작성할 친구들을 위해 한번 올렸던 게시물을 다시 재탕으로 올려서 미안함니다. 교재용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 글씨 크기는 font size 의 숫자로, 글씨 굵기는 로 결정합니다. 대신에 을 쓰기도 하지만 저는 만 사용합니다.
1. 앞당겨진 행운의 출발
2009년 3월 2일(월)
2월 중순경 친구 이동순에게서 전화가 왔다. 3월 초에 호주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내가 계획한 해외 여행은 매년 이르면 5월 말에서 6월 초로 잡아 놨고 몇 해 동안 그대로 실천해 왔다. 물론 이번 호주 여행도 6월로 생각하고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 해 함께 가자고 얘기해 두었지만 미국 입국 일자 때문에 앞당겼다는 것이다.
나는 여행 여건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동순의 간곡한 권유로 과감하게 날짜를 앞당겼다. 호주 쪽은 이제 막 여름 지나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이기 때문에 겨울로 접어드는 6월보다는 여행하기에 적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미처 마음의 준비도 없었던 호주 여행이 벼락치기로 준비되고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사실 호주 여행은 유럽 여행에 밀려 미루고 미룬 끝에 이루어졌다. 젊은 날 사업 때문에 호주를 여러 차례 다녀온 친구 김영종은 "호주에 뭐 볼 게 있나?" 하면서 말리는 분위기였고 10년 가까이 뉴질랜드에 가서 생활하다 귀국한 친구 하기용조차 "뉴질랜드에 뭐 볼만한 게 없는데." 하면서 별로란 반응이었기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못 가 본 곳에 대한 궁금증을 참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런 강한 부정적인 반응이 오히려 호기심을 더 발동 시켰기에 드디어 실천에 옮긴 것인지도 모른다.
2009년 3월 3일(화)
KAL기로 출발해서 뉴질랜드 북섬 오클랜드에 도착해 뉴질랜드 남섬을 거쳐 호주 시드니로 갔다가 다시 KAL기로 귀국하는 11일 코스였다.
오후7시 조금 넘어 출발한 비행기는 11시간 정도 비행 끝에 다음 날 현지 시간 오전 10시경에 뉴질랜드 북섬의 오클랜드공항에 도착했다. 4시간 정도의 시차라 크게 시차로 인한 어려움을 없었다.
물론 D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 일행은 이동순 부부와 우리 부부 넷, 대구에서 환갑 기념으로 함께 온 섬유 사업가 친구 부부 넷, 부인을 먼저 저 세상에 보낸 슬픔을 안고 회갑을 맞아 미혼의 두 딸을 데리고 온 삼부녀, 서울에서 온 신혼 부부 한 쌍, 이렇게 모두 13명이었다. 한국에서 따라온 가이드는 없지만 한국인 현지 가이드와 역시 한국인 기사가 운전하는 33인승 중형 버스로 편안하고 오붓한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유럽처럼 제한된 시일에 여러 나라를 돌아야 하는 강행군이 아니고 두 나라를 느긋하게 감상하며 즐기는 여행이라 마음도 여유롭고 느긋했다.
이곳은 한국인 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주로 이용하게 되어 첫 점심 식사부터 초록홍합 해물탕 중심의 뷔페를 들었다.
이곳 뉴질랜드와 호주는 오랜 역사적 가치의 문화 유적은 없고 주로 자연을 즐기는 관광으로 처음에 들른 곳은 반딧불(glow worm) 석회 종유동굴이었다. 그룹별로 어둠 속에 지하 강물을 따라 보트를 타고 안내자가 줄을 잡아당기며 가는대로 숨을 죽여 가며 마치 깜깜한 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듯이 수십만 개의 신비스런 반딧불을 구경하는 곳이다. 어둠 속에서 동굴 천정 벽에 매달린 반딧불을 자극시키지 않기 위해 소리도 내면 안되고 물론 촬영도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 자료를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버스로 2시간 정도 달려서 유황도시인 로토루아(Rotorua)의 한 호텔에서 첫날 여장을 풀었다. 이곳은 유럽과 달리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고층 호텔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일행이 묵은 호텔들도 대부분 2층 건물로 내용은 웬만한 유럽 호텔보다도 오히려 더 충실하면서 조용하고 드나들기도 편리했다. 이동순과 나는 항상 호텔 옆 방을 사용하면서 저녁 식후 서로의 방을 방문해 부부 함께 조촐한 파티(?)를 열고 하루의 피로를 풀며 우정을 나누었다.
2009년 3월4일(수)
느지막한 시간인 아침 9시 30분에 출발해서 타우포(Taupo)로 향했다. 처음 들른 곳은 와라이케이 지열발전소(Waraikei Geothemal Power)였다. 뉴질랜드는 화산 중심으로 형성된 북섬과 빙하 중심으로 이루어진 남섬의 특징을 참고로 자연을 감상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유황 냄새가 물씬 풍기며 바위 사이로 수증기와 연기, 지열이 솟아오르고 있는 곳을 이용해 발전을 한다고 하니 신기할 뿐이다.
후카 폭포(Huka Fall)는 폭포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지만 힘차게 흐르는 수정같이 맑고 푸른 물과 낙차가 낮은 폭포 주위 물안개 위로 형성된 작은 무지개가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다. 타우포 번지점프(Taupo Bungy)대에 이르니 역시 번지 점프대 아래의 물은 눈부시게 푸르렀다. 뉴질랜드화로 100달러가 넘는 비용을 핑계 대면서 멋진 번지 점프의 유혹을 물리치고 뒤돌아서야 하는 내 나이가 아쉬웠다.
아, 참 번지점프하면 이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일행 중에는 유일하게 1년 전에 아내를 암으로 세상을 떠나보내고 금년 환갑 기념으로 두 딸과 함께 여행을 온 남자가 번지점프에 가담했다. 그는 점프로 뛰어내리는 순간에 큰 소리로 "OO야!" 하고 비명을 지르듯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점프 마치고 돌아온 후에 세상 떠난 자기 아내 이름을 불렀다고 울먹이며 고백했다. 그러면서 손가락에 낀 커다란 반지를 내 보였다. 아내를 화장한 후 가루를 섞어 만든 백금반지로 평생 자기 몸에 지니다 자신도 언젠가 아내 곁으로 떠나가겠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좀 괴기스럽다고 여겨지면서도 마음 한편이 찡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우리 일행과 어울리지 않고 여행 내내 항상 버스 맨 뒤쪽에 앉아 다니며 별로 말이 없는 두 딸과 함께 지냈다.
타우포 호수에 이르니 몇 몇 사람들이 호수 한가운데로 골프공을 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물 속에서 공을 다 건져낸다고는 하나 내가 보기에 모두가 골프에 정신나간 사람들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역시 나는 평범한 서민일 뿐이다. 이곳을 지나 이 타우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식당(Restaurant Aorangi Peak)에서 일행은 레드와인을 곁들인 스테이크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며 감상할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에 도착한 곳은 로토루아(Rotorua)의 아그로돔농장, 세계 양 산업의 70%를 차지하는 뉴질랜드 농장 체험이란다. 극장식 공연장에서 여러 나라 언어로 해설하는 헤드폰으로 설명을 들으며 양몰이 개와 양들의 쇼, 양털 깎기 쇼를 관람하고 밖에 나와서는 직접 양몰이 개 시범까지 볼 수 있었다. 호텔에 들기 전에 유황 야외온천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로토루아 호수를 내려다보며 수영과 온천욕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2009년 3월 5일(목)
아침에 첫 코스는 영화 주라기공원 촬영지로 유명한 레드우두(Red Wood) 삼림욕이었다. 욕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우리 나이에 여행은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피곤이 따르는 법이다. 특히 유럽 여행은 복잡한 도시와 문화 유적, 박물관 등을 돌다 보면 오후에는 지쳐 잠들게 되고 쫓기는 일정 때문에 새벽부터 눈을 부비며 부지런히 이동해야 하니 귀국할 때쯤이면 피곤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여유가 있고 자연과 어울리는 효과 때문인가 몸도 정신도 개운했다.
다음에 들른 곳은 마오리 민속촌. 유황 냄새가 짙게 풍기며 곳곳에서 간헐천이 치솟는 천혜의 지역을 민속촌으로 보존해 놓아 세계의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관광지였다. 토속 마오리인들이 창을 들고 춤을 추며 혀를 길게 뽑아 보이는 장면은 적들을 위협하는 행위라 하나 그저 코믹하기만 했다. 화보나 방송으로 보았던 낯익은 마오리 전통 쇼를 즐기고 역시 전통 마오리족의 독특한 항이 런치로 점심을 해결했다. 메뉴는 닭다리와 버터를 발라 먹는 찐 옥수수, 양고기, 삶은 감자와 삶은 당근, 양배추였다. 까다로운 한국인 입맛 때문에 가이드는 걱정을 했지만 일행들은 이 음식에 모두가 만족했다. 식사 후에는 쿠리아우파크(Kuirau Park)에서 야외에 설치된 온천 족욕을 즐겼다.
그동안 가을로 접어드는 이곳 날씨가 맑고 청명했었는데 비바람이 치기 시작했다. 외국 여행 중에 가장 싫은 상황이었다. 오클랜드로 되돌아가는 동안 미숀베이(Mission Bay)에 이르니 심한 바람과 빗발에 파도까지 험해서 바닷가 커피숍(Mecca Cafe)에 들어가 이동순 부부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밖의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시간을 보냈는데 이것도 제법 운치있는 여유였다. 오클랜드에 이르러서도 화산 활동으로 이루어진 유명한 사화산으로 에덴동산이라 불리는 언덕에 올라 오클랜드 시내를 둘러보았지만 이 역시 심한 비바람 때문에 바로 내려와 오클랜드 항구를 배경으로 쭉 뻗은 완만한 곡선의 하버브리지를 차로 왕복하면서 오클랜드의 아름다운 야간 풍경을 관람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2. 환상적인 피요르드 크루즈
2009년 3월 6일(금)
오클랜드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른 아침에 뉴질랜드 항공편으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역시 한국인 가이드와 한국인이 운전하는 20인승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화산섬으로 이루어진 뉴질랜드 북섬과 달리 빙하로 이루어진 뉴질랜드 남섬은 색다른 분위기로 다가왔다. 더 많은 맑은 물과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의 들과 산이 이어지고 있는 남섬은 북섬에 비해 인구도 훨씬 적어서인가 싱그러운 자연의 보고로 느껴졌다. 첫 번째로 향한 곳은 테카포(Teapo) 호숫가에 그림처럼 외롭게 서 있는 자그마한 [선한목자의 교회]였다.
교회 안에서 절경의 호수를 관람하고 1불의 헌금을 하면 기념 엽서를 받고 나오는 곳인데 나는 밖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촬영하느라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지금에 와서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퀸스타운(Queenstown) 부근의 높이 43m의 절경을 배경으로 줄에 매달려 뛰어내리는 하켓번지(A.J Hackett Bungy)는 1회 사용료가 200불이나 된다. 뛰어내리면 보트가 다가가 사람을 줄에서 내려 주고 기념사진과 동영상이 담긴 CD를 주는 댓가란다. 역시 내게는 그림의 떡이다.
여유있는 시간을 이용해 특이한 흰 사슴 농장에 들러 사슴을 구경하며 노드락거리다가 퀸스타운 해변의 시가와 항구를 둘러보고 한식 불고기로 배를 불린 후에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2009년 3월 7일(토)
아침부터 기대와 설레는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오늘 목표는 그 유명한 밀포드사운드(Milford Sount)의 피요르드 관광이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게앙에르피요르드에 홀딱 반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기대는 더욱 컸다. 버스로 목표 지역을 향하는 동안 티나우(Teanau)호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 오락가락하는 빗속에서 형성되는 아름다운 무지개 속으로 계속 달렸다. 쌍무지개, 동화의 제목으로 말만 듣던 쌍무지개를 바라보면서 일행은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거울호수(Mirror Lake)는 거울처럼 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호수 표면이 거울처럼 반사하여 산을 비추는데 거꾸로 글씨가 쓰여 있는 간판은 호수 표면에 비치면서 Mirror Lake라고 읽게 되어 있다. 신비한 호수를 감상하다 보니 비바람 속에 밀포드사운드 크루즈 선착장에 이르렀다.
선상에서 멋지게 차려진 뷔페로 점심을 들면서 피요르드를 감상하는 크루즈 여행이 시작되었다. 해발 1,697m나 되는 마이터피크, 라이언마운틴 등 절벽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감탄을 자아내었다.
아무리 좋다 해도 뉴질랜드의 피요르드는 결코 노르웨이의 피요르드를 따라지 못할 것이라는 내 선입견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피요르드가 지난 해(2008년) 세계 Best 명승 50선 중 1위였다는 설명을 현장에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비 바람 때문에 폭포의 수와 떨어지는 수량이 더욱 대단한데다가 강한 바람을 타고 흩어지거나 거꾸로 기어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휘날리는 폭포수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야~" "와~" "우~" 하는 감탄사가 넘치고 비 바람에 흔들리는 선상에서 이리저리 몸을 겨우 가누면서도 사진을 촬영하는 관광객들은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 비 바람 때문에 오히려 더욱 장관을 연출한 환상적인 피요르드 크루즈 여행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2009년 3월 8일(일)
내일이면 호주 시드니로 이동해야 하니 오늘이 뉴질랜드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애로우타운(Arowtown)은 퀸스타운 주변에서는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옛 서부 시대에 세계에서 사금이 가장 많이 산출된 곳이라지만 지금은 한적한 마을이 모습만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우리 일행의 버스도 정차하지 않고 그냥 천천히 지나치면서 눈요기만 하고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했다.
한가하게 전차가 지나가는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이 도시의 상징으로 유명한 고딕양식의 영국교회 대성당 앞에서 잠시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한국전생 전에 서울 한복판에서 전차를 타고 초등학교에 등교하던 생각을 하면 전차가 다니는 외국의 도시들이 늘 부럽다.
면적이 182ha나 된다는 시민 휴식처인 넓은 해글리공원을 거닐며 무성한 나무와 꽃밭 사이사이에서 여유롭게 휴일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저녁에는 한식 돼지 볶음으로 배를 채우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이동순 부부와 뉴질랜드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는 파티를 열었다.
3. 코알라와 오페라하우스의 조화
2009년 3월 9일(월)
아침부터 서둘러 크라이스트처치공항에서 뉴질랜드 항공으로 약 4시간 가까이 날아서 드디어 호주의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역시 한국인 현지 가이드와 22인승 버스의 한국인 기사가 우리를 대기하고 있었다. 영국인들이 지배한 곳이라 뉴질랜드나 호주 마찬가지로 모든 차량들은 좌측 통행이었고 따라서 운전석은 차량 앞 오른쪽, 문은 왼쪽에 배치되어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도착 즉시 우리는 시드니 근교에 있는 블루마운틴(Blue Mountain)의 에코포인트로 향했다. 고도가 1,100m라고 하는데 마침 안개가 자욱해서 제자매봉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안개 속에서 경사 50도를 하강하는 궤도 열차를 타고 544m를 내려가 과거 석탄 채굴현장을 둘러본 후에 다시 곤돌라로 올라오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호주에 오면 반드시 둘러봐야 하는 곳 중의 하나가 동물원이다. 캥거루, 왈라비, 코알라는 호주를 대표하는 동물인데 우리 밖으로 나와 어슬렁거리는 캥거루를 쓰다듬어도 보고 나무에 매달려 잠들었거나 유칼리나무 잎만을 따 먹는 귀여운 느림보 코알라를 만져보며 사진도 찍고 둘러보는 관광객들은 신기해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일정에 따라 거대한 규모의 한가한 올림픽경기장을 둘러보았다. 저녁에는 야외 공원에서 장작으로 굽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위주의 뷔페로 식사를 하며 우리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아이비스(ibis : 따오기)에게 구운 고기를 던져주는 즐거운 시간도 가졌다. 나중에 식당 주인에게 들으니 먹이 던져주는 사람을 현지인이 고발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해서 뜨끔했다.
2009년 3월 10일(화)
이번 여행 13명 일행 중에 이동순과 내가 가장 고령자로 나름대로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버스에서나 식당에서 우리에게 전망 좋은 자리의 좌석을 양보해 주었다.
오늘은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약 4시간 거리에 위치한 포트스테판으로 장거리를 이동했다. 해변에 드넓게 펼쳐지는 모래 언덕인 아나베이에 이르러 사막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낙타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US-4WD 승용차로 모래사막을 질주했다. 그래서 도달한 곳은 모래 언덕에 기어 올라가 샌드보드에 앉아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체험이었다. 내려오는 것은 두려울 것이 없는데 올라가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대여섯 차례씩 오르내렸지만 나는 오기로 간신히 세 차례만 샌드보드를 탔는데 이동순이 오기로 한번을 더 타고 내려오더니 힘들어 씩씩거린다. 나이를 어찌 속이랴. 그러나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모래 장난을 한 경험이 매우 즐거웠다.
한국인 식당에 들러 제법 잘 차려주는 설렁탕으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넬슨베이(Nelsonbay)에 이르러 요트를 타고 돌핀워치크루즈를 경험하게 되었다. 약 한 시간가량 야생 돌고래를 구경하는 코스라 기대가 컸지만 야생이라 그런가 돌고래들이 멀리서 떼지어 몰려다니거나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재빨리 물속으로 머리를 처박아 버리는 바람에 변변한 사진 한 장도 못 건진 것이 아쉬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포도 농장에 들러 와인 시음만 하기가 미안스러워 호주화 22달러로 와인 한 병을 구입해 저녁에 이동순과 간단한 와인 파티를 벌이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2009년 3월 11일(수)
드디어 내일이면 한국으로 떠난다. 오늘은 시드니에 다녀갔다는 증명을 남기는 날이다. 그 유명한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로 잘 알려진 시드니항만 크르주투어다. 선상 점심 식사 시간에 맞추기 위해 오전 중에는 간단한 일정이 짜여져 있다. 바위 언덕에서 바다를 조망하는 갭팍(Gab Park)에서는 연합군이 상륙하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나바론 촬영지 언덕을 멀리 바라볼 수 있었다. 대부분사람들은 이곳을 빠삐용 촬영지로 착각을 한다고 한다. 이후에 규모는 작아도 마치 해운대와 비슷한 본디비치(Bondy Beach)를 거쳐 크루즈 여행을 시작했다.
선상 뷔페를 들며 약 2시간가량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시드니항만을 둘러보게 되는 코스다.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듯한 그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를 바다 위에서 빙 둘러보고 난 후 하버브리지 아래를 지나 배에서 내려 직접 이 건물을 가까이 접근해 볼 수 있었다. 멀리서 본 것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에 감탄이 절로 났다. 한편 시드니 하면 의례히 사진에 등장하는 이 오페라하우스의 정면이 바다 쪽이 아닌 육지라는 것을 알게 된 사실이 부끄러웠다.
크루즈를 마치고 항만 인근의 수족관에 들러 다양한 해양 어류를 관람했다. 이 수족관 대표 동물 듀공(Dugong)은 어류가 아니라 1년 이상 임신해서 역시 1년 이상 젖을 먹이고 해초만 먹는 짐승이라고 한다. 안작(Anzac) 다리를 건너 시내로 돌아와 씨푸드(Sea Food) 저녁 식사를 위해 들어간 식당은 모두가 모자를 벗어야 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대형 식당으로 관광객들의 주정과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하나 그 이유가 이해되질 않고 오히려 중국인들의 소위 [뙤놈] 성격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드디어 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호텔에서 꿈처럼 지나간 열하루의 일정을 되돌아보며 이동순과 마지막 밤의 회포를 풀었다. 다음 날 아침은 도시락(Boxed B' Fast)으로 해결한 후 아침 9시 발 KAL기로 시드니공항을 출발해 오후 5시 30분 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4. 후기(後記)
지금까지 웬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다녀와 신기할 것도 관심 갈만한 곳도 아닌 호주, 뉴질랜드에 관한 정말로 재미없는 여행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번 여행이 내게는 생각지도 않게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전환을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내 해외 여행은 5~6년 동안 항상 5월 말에서 6월이나 늦어도 7월 초 사이에 이루어졌다. 여행적금을 5월 말 경에 찾을 수 있도록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동순의 갑작스런 제안에 얼결에 다녀온 여행, 그러나 나는 생각지도 않게 6월 초에 30년 동안 살던 대전을 떠나 경기도 안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해외 여행에 대한 내 집착이 워낙 컸기 때문에 만약 3월 여행이 없었다면 아무리 좋은 여건이 제시 되었다 해도 나는 6월에 이사를 제쳐놓고 해외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내가 대전을 떠나 안산으로 이사를 간다는 말을 처음 했을 때 아내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나 경제 여건이 서울권 이사에 맞지 않았고 평소 우리의 대전 생활이 그만큼 안정(고정)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대전은 직장 때문에 1980년에 내려간 곳이고 2004년에 은퇴를 했으니 더 이상 대전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나나 아내 모두가 서울에서 태어났고 학연, 혈연 모두 서울권이라 서울로 오는 것이 당연했지만 30년 전에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간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서울로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서울과 지방의 부동산 경기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 버려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과적이긴 하지만 이동순과 함께한 이번 여행은 내게는 인생 전환의 마지막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비록 안산이란 시골의 작고 초라한 시골 집이지만 인생 말년에 형제들, 고교 대학 친구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 신께 감사하고 친구 이동순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