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불쌍한 386, 자녀세대도 외면할 것"
<굿소사이어티 인터뷰>원로학자의 충언 "지금 한국사회 흔드는건 족보없는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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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자료사진)ⓒ대한언론인회 | 비무장지대가 지척인 강원도 양구 최북단의 한 고지에서 뜻밖에 그를 만났다. 현충일인 6월6일 해발 1000m 도솔산에서 열린 물망초예술제 자리였다. 그날 처음 인사한 여성사학자 이인호(전 러시아 대사)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위원장, 아나운서 황인용 씨 등의 명사들과 함께 있었는데, 평소의 이미지처럼 작은 체구에 단아했다. 요즘 현안인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관한 소신을 밝히며 대화를 주도할 때는 또 달랐다. 서울에서의 소문대로 영락없는 학계의 잔 다르크였다.
사실 이승만, 박정희를 비판한 민족문제연구소의 동영상 ‘백년전쟁’문제를 공론화했던 주인공도 이 교수다. 지난 3월 청와대 원로모임에서 그가 동영상의 역사왜곡 문제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살필 것을 대통령에게 조언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를 꼴보수로 손가락질하는 이는 드물다. 학계 위상이 그렇고, 깔끔한 그가 학문적 소신 외에는 사심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거쳐 지금은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으로 있는 그를 서울에 다시 만났다.
반포동 그의 자택에서 진행된 대화에서 그는 역사교과서 문제를 포함해 우리 지식사회의 분위기, 좌우이념 논란에 대한 견해를 두루 밝혔다. 허심탄회한 그의 발언은 설득력이 매우 컸다. 본래 서양사를 전공한 그가 탄력적인 입장의 학자인데다가 좌우 이념 모두를 꿰고있기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특성 때문에 우파의 핵심 학자로 분류되고 있지만, 본래 그는 리버럴한 이상주의 성향의 학자였다. 즉 진정한 의미의 좌파와 개혁지향적 우파가 대결하고 견제하는 정치풍토야말로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그가 보기에 지금 우리 지식사회의 반(反)지성적 상황은 실로 우려된다.
“학문의 자유, 정치적 자유에 대한 위협은 예전엔 주로 우파 쪽에서 제기됐다. 1980년대까지 그랬다. 지금 한국사회라는 공동체를 흔드는 위협은 주로 좌파에서 나온다.”
인터뷰에서 한 그의 말 중 하나가 그렇다. “내 사고의 프레임은 변치 않았다. 다만 주변상황이 바뀌었을 뿐이다. 용서할 수 없는 건 시대착오적인 종북 좌파가 지금 우리 젊은이들을 현혹시키고 있고, 소모적 논쟁으로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는 점이다”는 발언도 했다. 젊은 세대에 대한 비판도 날카로웠다.
“386세대는 이중 삼중의 피해자이다. 자기세대가 역사를 잘못 배웠다는 뜻에서 일차 피해자인데, 그걸 자식세대에까지 넘겨주려 하고 있다. 결국은 자식 세대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란 뜻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진보-보수 구분은 다분히 허구적인 편가름이며 그 구분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친 대한민국인가, 반 대한민국인가이다.
다음은 대화의 전문이다.
-자, 오늘 주제는 중고교 역사교과서입니다. 책임있는 시민과 인간을 만드는데 역사교육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평소 지론도 함께 듣겠습니다.
“좋습니다. 그 전에 우리시대가 얼마나 복잡한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최근 하워드 가드너라고 하는 하버드대 교수가 쓴 '진선미의 재구성'(Truth, Beauty & Goodness Reframed)란 책을 읽었는데, 우리는 진리와 참됨, 아름다움을 규명하는 게 옛날 같지 않은 시대라는 게 핵심입니다. 진짜처럼 보이지만 가짜인 게 수두룩하죠. 그걸 저자는‘truthiness’라고 말합니다.”
-신조어네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각자가 자기 믿고 싶은 것만을 받아들이려는 성향이기도 하구요.
“그렇죠. 우리시대는 한때 확실했던 진리가 뒷전으로 숨어버린 포스트모던한 사회이고, 상대주의의 시대죠. 여기에 인터넷의 출현으로 아무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하버드대 생 사이에 점차 늘어나는 시험부정도 전에 없던 현상입니다. 미국사회가 허술한 것 같아도 의외로 견고한데, 요즘은 시험부정을 견제하는 주변의 분노가 옛날 같지 않답니다. 모두가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인데, 한마디로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이 지금입니다.”
-그래도 서양은 근대의 지적 전통 200~300년이 있습니다. 뒤늦게 근대를 시작해야 했던 우리는 그런 토대가 더욱 취약합니다.”
“요즘 문제가 된 역사교과서 시비도 그 일환입니다. 근현대사란 우리세대와 윗세대가 직접 겪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전문가연하는 무리들이 역사를 말하면서 허튼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는 자료를 가지고 말하는 법인데, 바로 우리가 주역이고 자료입니다. 백범 김구나 토지개혁 등 세부 전공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시대 전반을 겪은 게 우리 세대입니다. 지금 학교교실에서 채택되고 있는 역사교과서는 그걸 송두리째 무시한 것이죠. 사학계의 주류(主流)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라서 저는 그걸 일종의 쿠데타로 규정합니다.”
이번 교과서 문제의 발단은 일부 좌파 매체와 야당이 특정 출판사(교학사)의 집필 중인 교과서를 문제 삼으면서 시작됐다. 왜 8개 안팎의 새 교과서 가운데 교학사 판(版)이 표적이 됐을까. 기존 교과서의 좌편향을 바로 잡으려하기 때문이다. 지금 교실에서 배우는 역사교과서는 철 지난 마오쩌둥 혁명론이나 남로당 박헌영의 역사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지 오래다. 맹목적 통일지상주의로 흘러가면서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흐름도 걱정이다. 때문에 친북, 반국가주의 성향이 다분한 좌파 교과서다.
즉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이고, 북한이 더 정통성이 있다”라는 결론을 학생에게 유도한다는 게 이 교수 등 보수학계의 견해다.“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악당이고, 경제발전의 주역 박정희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이다. 실패한 체제 북한을 흡수하는 한국 주도의 통일을 중국 지도부조자 기정사실화하는 판에 이 무슨 해괴한 일일까? 세계사의 조류에 등 돌린 국사학계의 폐쇄성이 문제다. 더욱이 1980년대 민주화 이후 상당수 국사학자들이 좌파적 프레임에 걸려들었다. 이 교수가 지금의 역사교과서를 일종의 쿠데타라고 지적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학계의 좌편향은 6월 민주화항쟁이 있던 198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화됐는데, 당초 선생님은 그런 움직임에는 공감했던 걸로 압니다.
“사실이죠. 당시 주류 사학에 반발해 역사문제연구소 등이 만들어졌는데, 저도 기꺼이 참여했지요. 주류학계의 보수적 풍토와 일부 체제 유지적 교육프로그램에 일부 저항을 느꼈고, 민중적 시각에서 역사를 재해석하는 것도 학문다양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보았지요. 그런 의도는 나쁘지 않았으나 문제는 우리 학계의 빈약한 지적 토대, 즉 반지성적 풍토입니다. 정치색이 끼어드는 등 나쁜 쪽으로 변질되는 걸 막아줄 토양이 크게 부족했습니다.”
-민중사학 쪽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 쏠리는 현상 말이죠?
“민중사학도 학문 차원에서 접근하는 순수한 이들이 꽤 있었을 겁니다. 다만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이 끼어들고, 북한의 전략에 말려드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급기야 반대한민국적 의도를 가진 종북 좌파들이 기선을 잡기에 이르렀습니다. 2000년대 들어 상황은 또 바뀌었죠. 역사교과서 문제는 이제 교육 차원을 떠나 정치투쟁으로 양상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급기야 전교조와 민노총은 반(反)대한민국의 첨병이 됐습니다.”
-처음부터 전교조에 반대했던 분이 아니라서 논리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러시아 역사 전공자로서 처음부터 저는 반공산주의의 필요성은 절감했습니다. 단 우매하게 추진되는 반공교육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경고를 했을 뿐이지요. 그래서 전교조 등장 초기에 교육현장 개혁을 위해 교사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전교조 강의도 했지요. 안타깝게도 지금의 전교조는 참교육을 지향하는 순수함을 잃었습니다.”
-확실히 정치이념 문제에서 아주 유연한 입장이었군요.
“저는 진정한 의미의 좌파와 개혁지향적 우파가 대결하고 견제하는 ㅔ′냑堊蔘뻔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또 막가는 공산주의를 막는 최선의 대안은 사회민주주의 실현에 있습니다. 저만 아니라 이승만 박사도 그걸 잘 아는 분이었어요. 그가 1923년 쓴 글에 ‘공산주의의 당 부당(옳고 그름)’이 있는데, 노동자 농민 등이 잘 사는 세상,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가 자기의 이상이라 말했습니다. 단 모두가 똑 같이 나눠갖자는 기계적 평등이나 기업가들을 적대시하는 태도로는 사회의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또 공산주의 특유의 전체주의적 성향, 비밀주의 통치방식에는 반대했습니다. 러시아혁명 초창기인 그때 서구 지식인이나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소련을 찬양할 무렵에 이 박사가 그런 혜안을 보였던 게 놀라울 뿐이죠.”
-사실 전체주의란 용어를 거의 처음 사용했던 분이 이 박사라고 알고 있습니다. 1930년대에는 그 말이 저널리즘에서도 잘 사용되지 않았거든요.
“이 박사는 해방직후 한 1년 동안은 공산주의자 박헌영까지도 포용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공산주의 이념을 품자는 게 아니고, 일제하 독립의 수단으로 공산주의를 선택했던 이들과도 협력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예전 인터뷰를 보니‘역사적 운명’이란 표현을 쓰셨더군요.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대한민국의 건국에서 다른 정치세력이 배제되고 희생당할 수밖에 없던 것을 받아들이자는 뜻이던데요.
“그랬나요? 저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혁명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해방 직후 자신의 이상주의 성향 때문에 사회주의 이념을 선택했던 지식인들이 적지 않았는데, 저는 그들의 처지를 동정합니다. 역사의 줄을 잘못 섰고 끝내 희생을 당한 분들인데, 당시로는 현실사회주의의 비인간적 성격을 잘 몰랐거든요. 스탈린 통치하의 소련은 정보통제가 하도 엄청나서 자기네들에게 유리한 정보만 조금씩 밖으로 내보냈으니까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저도 리버럴한 성향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사회에서 진보연하는 세력에 문제가 있다는 발견을 했습니다.
“학문의 자유, 정치적 자유 그리고 건전한 민주사회 운용이란 우리가 숨쉬고 사는 기본조건인데, 그것에 대한 위협은 예전엔 주로 우파 쪽에서 제기됐습니다. 1980년대까지 그랬죠. 이후 지금까지 한국사회라는 공동체를 흔드는 위협은 주로 좌파에서 나옵니다. 그게 큰 걱정이죠.”
-요즘 선생님이 목소리를 내시는 건 그 때문이군요.
“내 사고의 프레임은 변치 않았습니다. 다만 주변상황이 바뀌었을 뿐이죠. 정말 용서할 수 없는 건 그 시대착오적인 종북 좌파가 지금 우리 젊은이들을 현혹시키고 있고, 소모적 논쟁으로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는 점입니다.”(인터뷰 직후 작별인사를 하기 전 그가 한숨을 쉬듯 이렇게 토로했다.“(교과서 논쟁이 있던) 지난 보름을 거의 공포 속에서 살았어요. 지금 분위기는 지적(知的) 자유를 정치적 힘으로 압살하려는 공격이거든요.”
확실히 지금의 학계는 누가 봐도 위기다.
-우리사회에서 보수라고 하면 가스통 할배 운운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거 아주 잘못된 겁니다. 최근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국회연설에서 ‘진보정치가 과거의 낡은 사고 틀에 갇혀있었다. 진보의 이름으로 기득권 노조의 편을 들고 진정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분단과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고 경제성장을 이룬 세대의 헌신을 잊지 않겠다’는 발언을 한 것이 신선했습니다. 저는 그 발언에서 친대한민국의 가치를 공유하는 좌파가 등장할 가능성을 봤습니다.”
-저도 유심히 그걸 봤습니다. 잘만하면 한국형 사회민주주의의 탄생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실 지금의 진보-보수 구분이 좀 문제있거든요.
“그건 다분히 허구적인 편가름이라 헷갈릴 수 있어요. 그런 구분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친대한민국인가, 반 대한민국인가입니다. 물론 대한민국은 각종 사회비리를 포함해 많은 문제가 있지요. 하지만 우리만한 성공을 거둔 국가는 2차대전 이후 독립한 140개국 중 우리가 유일합니다. 북한이 선택했던 공산주의는 이미 파산선고가 내려졌고요. 대한민국이라는 테두리에서 문제제기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통일을 빌미로 테두리와 기본이념을 무너뜨리려는 게 문제죠.”
-그럼 참된 진보는 어떤 겁니까?
“제가 좋아하는 역사학자가 에릭 홉스봄인데, 그런 분이 진짜 진보적 학자입니다. 얼마 전 돌아간 그는 영국 공산당원이었고, 노동하는 대중이 역사의 주체라고 보았지만, 자신의 학문적 주장에 추호의 거짓이나 허위가 없었습니다. 누구처럼 이념을 앞세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진 않았던 것이죠.”
-386세대에게 해주실 말씀은 어떤 겁니까?
“386세대는 이중 삼중의 피해자라고 저는 말하고 싶어요. 자기세대가 역사를 잘못 배웠다는 뜻에서 일차 피해자인데, 그게 잘못인줄도 모른 채 다시 자식세대에까지 넘겨주려 하고 있으며, 결국은 자식 세대로부터 외면 당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죠. 현재는 그들이 문화권력을 휘두르고 있고 역사교육을 거의 독점하고 있잖습니까?”
-혹독한 지적입니다.
“거기에는 이념분쟁을 넘어서는 아주 심각한 잘못이 있어요. 역사교육이란 게 뭡니까? 연표나 외우자는 게 아니잖아요? 역사란 결국 사람되는 걸 배우자는 거 아닙니까? 훌륭한 인물, 걸출한 인간은 이렇게 성장하는구나를 알고 따라하며 무엇이 진정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가를 배우는 겁니다. 지금 학교에서는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들을 거의 모조리 친일파에 기회주의자 매판자본가라고 가르칩니다. 철지난 계급투쟁론적 시각을 심어주기도 하는데, 이게 바로 인간의 잠재력을 죽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흠모와 존경 대신 증오와 질투 같은 비열한 감정을 부채질하기 때문이죠.”
-문제의식이 쉽고도 적확합니다.
“학교란 것도 우리가 만든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어야 합니다. 옳은 것, 좋은 것은 칭찬하고, 잘못된 것은 벌을 주어 사회의 규칙을 익히게 하는 것인데, 지금은 유아용 그림책까지 종북 좌파적 시각이 스며들어서 편 가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클럽활동을 통해 그걸 걸러내야 하고, 잘못 가르치는 학교와 교사에 압력을 넣어야 합니다. 저는 그걸 걸 기대합니다.”
-이를 테면 여성교육자 김활란(1899~1970)을 친일파로 모는 것 말이죠?
“이화여대 총장이셨고, 여성교육자로 뛰어난 그 분을 저는 뵌 적이 없지만, 일방적으로 매도되는 게 안타까워요. 오래 전 읽은 책 '이모님 김활란'(김정옥 지음, 정우사)을 보면 그 분의 어머니가 평안도 대갓집의 몸종이었습니다. 총명한 탓에 인천으로 도망 나왔다가 미국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인이 됩니다. 김활란 세대까지 기독교와 여성교육이란 두 요소는 여성으로서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최선의 탯줄이었습니다. 완전히 무에서 출발했던 그분들은 그 탯줄 덕분에 근대적 여성지도자로 성장합니다. 이 놀라운 변화와 성취를 쉽게 말하면 안 됩니다.”
-어쨌거나 친일파 비판은 여전히 논란거리입니다.
“우리 역사를 친일 대 반일의 프레임에 맞추는 것 자체가 허구일 수 있습니다. 우파는 친일이라서 나쁘고 좌파는 반일이라서 정통성이 있다는 건 허위입니다. 일제시대 김활란 선생은 그리 유명인도 아니었고 당신 한 분의 이름을 더럽히더라도 여성교육의 맥을 살리고, 이화학당의 문을 닫지 않는 게 애국의 최선이었죠. 그런 분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을 친일파라고 손가락질하는 것과도 같아요. 시대와 인간이라는 게 본래 중층적인데, 그걸 도식적으로 보면 안됩니다. 그 분과 대조적인 게 우리 외할아버지의 경우죠.”
-1974년 과거시험에 급제해 조선조 말에 벼슬을 했던 분 말이죠?
“그때가 15세였는데, 36세 규장각 부제학으로 있을 때 나라가 망합니다. 선친이 계신데 독자이시니 명명도 갈 수 없고 그래서 당신의 호를 치재(恥齋)로 바꾸고 초야에 묻힙니다. 일본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명분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당신 아버님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신 분”이라고 마음 아파하세요.
서른여섯에 낭인(浪人)이 돼 재능을 썩혀야 했으니 말이죠. 하지만 국왕을 보필했던 분에겐 명분을 보존하는 게 애국이었습니다. 김활란과 정반대이죠. 애국의 방법에도 처지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인데, 이상설 선생하고 절친하셨던 외조부는 결코 김활란 선생 같은 분을 나무라지 않았을 겁니다. 망명활동하던 분들의 삶은 물론 장렬하지만, 숨어살며 절개를 지킬 수 밖에 없던 많은 국내 은둔자의 삶도 비장하고 비통한 겁니다. 그걸 나이 먹은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메시지를 정리해주시죠.
“미국의 학교 교실에서는 나라를 세운 조지 워싱턴이나, 노예제를 없앤 링컨 대통령을 어느 누구나 위인으로 배웁니다. 땅을 넓힌 토머스 제퍼슨, 강국으로 만든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역대 대통령 과 그 시대란 결국 국민 전체가 지도자들과 함께 연출해낸 드라마가 아니겠습니까? 위대하다고 평가 받는 인물들도 인간적으로, 정치인으로 결함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성인이 되어서 해도 결코 늦지 않는 일이지요”
-우리는 그 정반대입니다. 잘한 것도 덮어버리고, 나쁜 것만 부각시키죠.
“큰 것을 성취한 인물은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을 학교가 가르쳐야 합니다. 미국에서도 1960년대 극렬한 학생운동이 있었는데, 그 뒤에 이 현상을 분석하고 대처하기 위한 보고서가 나옵니다. 대학사회를 풍미하는 지각없음 (mindless)이 만성적 소요의 깊은 원인이고 따라서 그에 대한 처방은 결국은 인문교육의 강화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대목이죠.
“학교 교육을 통해 결국은 진실과 정의가 이긴다는 것을 배운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다릅니다. 사회악과 싸울 의지가 강하죠. 이에 비해 어릴 적부터 증오와 질투를 일상으로 받아들인 아이들은 사회에 나간 뒤에 냉소적이 됩니다.”
과거 대학에 재직 중일 때 이 교수는 강의실에서 지식인과 역사의식을 논하고 인텔리겐치아와 혁명을 소개해왔다. 1980년대 학생 데모가 치열했을 때도 그러했다. 학생들의 지적, 사회적 관심을 강의실을 통해 충족될 수 있도록 좌파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교수와 미국의 비판적 지성인 스튜어트 휴즈 교수를 초청했던 것도 그였다.
그게 당시 냉전시대 상황에서 지적 균형을 찾으려는 몸짓이었는데, 문제는 상황이 너무도 바뀐 지금이다. 철지난 좌파 사상이 한국사회의 문화권력으로 들어섰고, 중고교 교과서까지 점령한 지 오래다. 그게 우리 사회의 정신적o 이념적 위기의 현주소인데, 이에 이인호 교수의 경고음은 오래 기억될만하다.
대담/조우석 문화평론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자 말라 너는 범사(凡事)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6) 陽村 金南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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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되면 인사회에 한 번 참석해서 즐겁게 어울려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