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 함께하는 부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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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가라사대
2013.07.14 13:30
작가 오정희
“몸은 메말라가도 마음과 정신의 영토를 확장하는 중”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60대 중반의 나는 머리 염색을 그만두었다.
노모에게 막내딸의 백발을 보이는 일이 민망하고 죄송스러웠던 탓에
그때까지 계속해왔던 일이었다.
훨씬 늙어보였지만
거울을 통해 보는 내 얼굴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세상에 안 계신 어머니를 이렇게 만나는구나 생각하니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흔히 ‘몸이 늙지 마음이 늙느냐’고 하지만
백발이 되니 내가 명실공히 노년에 이르렀다는 자각이 들었다.
‘어르신’ 소리를 듣는 것, 자리를 양보 받는 일도,
‘이젠 나이 먹어서’라는 말로 두뇌 회전이나
동작의 굼뜸을 변명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반면에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도
크게 잘못이 없는 경지’에 가까워지기는커녕 갈수록
‘나잇값’에 대한 자의식이나 ‘노탐, 노욕,
노추’라는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게 되는 불편함, 어려움도 생겼다.
완경기에 이른 50세 때
어느 선배가 ‘거칠 바 없이 화려한 나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자식을 낳아 성년이 되도록 키웠으니 생육하고
번성해야 하는 생물로서의 한살이를 끝내고
이젠 ‘나의 자유로운 삶’을 허용해도 될 것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50세가 되면 일주일에 하루는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지속적으로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이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봉사는커녕
어느 결에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날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사, 인간사가 다 이렇게 뜻과는 달리 때를 놓치고
조금씩 어긋나기도 한다는 것을,
남과는 다르다는 의식이 내 문학의 출발점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앎’을 향한 도정이자
지향임을 깨닫게 된 것도 살아온 세월의 덕이니 감사할 일이다.
세상의 작은 귀퉁이에서
한 조그마한 사람으로 서성거리기만 했을 뿐이라는 아쉬움,
갈수록 궁금하고 신비한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앎’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배우고, 또 배우고 싶다.
하여 몸은 조그맣게 메말라가도 마음과 정신의 영토를 확장시켜 가며
한없이 너그럽고 풍요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몸은 메말라가도 마음과 정신의 영토를 확장하는 중”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60대 중반의 나는 머리 염색을 그만두었다.
노모에게 막내딸의 백발을 보이는 일이 민망하고 죄송스러웠던 탓에
그때까지 계속해왔던 일이었다.
훨씬 늙어보였지만
거울을 통해 보는 내 얼굴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세상에 안 계신 어머니를 이렇게 만나는구나 생각하니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흔히 ‘몸이 늙지 마음이 늙느냐’고 하지만
백발이 되니 내가 명실공히 노년에 이르렀다는 자각이 들었다.
‘어르신’ 소리를 듣는 것, 자리를 양보 받는 일도,
‘이젠 나이 먹어서’라는 말로 두뇌 회전이나
동작의 굼뜸을 변명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반면에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도
크게 잘못이 없는 경지’에 가까워지기는커녕 갈수록
‘나잇값’에 대한 자의식이나 ‘노탐, 노욕,
노추’라는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게 되는 불편함, 어려움도 생겼다.
완경기에 이른 50세 때
어느 선배가 ‘거칠 바 없이 화려한 나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자식을 낳아 성년이 되도록 키웠으니 생육하고
번성해야 하는 생물로서의 한살이를 끝내고
이젠 ‘나의 자유로운 삶’을 허용해도 될 것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50세가 되면 일주일에 하루는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지속적으로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이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봉사는커녕
어느 결에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날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사, 인간사가 다 이렇게 뜻과는 달리 때를 놓치고
조금씩 어긋나기도 한다는 것을,
남과는 다르다는 의식이 내 문학의 출발점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앎’을 향한 도정이자
지향임을 깨닫게 된 것도 살아온 세월의 덕이니 감사할 일이다.
세상의 작은 귀퉁이에서
한 조그마한 사람으로 서성거리기만 했을 뿐이라는 아쉬움,
갈수록 궁금하고 신비한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앎’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배우고, 또 배우고 싶다.
하여 몸은 조그맣게 메말라가도 마음과 정신의 영토를 확장시켜 가며
한없이 너그럽고 풍요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댓글 5
-
김영송
2013.07.14 13:30
-
김동연
2013.07.14 13:30
공감이가는 글입니다.
나는 오정희씨글이 너무 어려워
멀리 했었는데 이제 쉽게 쓴 글을 접하니까
감동하게 되는군요.
머리 염색... 매일 언제 그만 둘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결행을 못하지요.
염색을 그만 둔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
연흥숙
2013.07.14 13:30
오세윤씨 동생이야기군요.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 친근감이 있어요.
"왜? 내아이들이 내얼굴속에서 할머니얼굴이 보인다고 웃더군요." -
민완기
2013.07.14 13:30
존경하는 오정희작가님은 년륜이 더해지면서 세상을 지실해가시는
면모가 더욱 또렷해지는것 같습니다.
"중국인 거리"에서 보여주신 영특한 동안의 직관력이
오늘의 제3세대 한국문학의 리더가되실것을 예감한바 있읍니다.
저는 오작가님의 글이 박제되지않은 생명력이 다분한 문장으로
배워왔는데 어떤 평론가는 시로 읽혀지기를 바라는 글인듯하다고
도 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았읍니다. 자아와 비극적 현실간의
단절을 지적한 이도 있지만 때로는 "강의 불"인지 "불의 강"인지
어렵 느껴질때도 있었읍니다. "완구점 여인"은 섬세하고 여성적 편견없는
아주 재미있는 글이였다고 여겨집니다.
우리 오세윤동문과 남매간이라니 천재들의 집안이군요
오동문도 의사의 길을 안가고 글을 썼으면 세상이 놀라고
오정희 작가가 아기를 들쳐업고 교정을 보지 않으셨다면
펄벅을 제치셨을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아직도 시간은 많습니다.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두분의 건승을 빕니다. 감사. -
김승자
2013.07.14 13:30
남매 작가님들이 주옥같은 글을 쓰시니 참으로 감탄합니다.
타고 나신 창작력을 발휘하셔서 두 남매 작가님들께서
계속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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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곧 잊어 먹어도 인사회에서 배우고 또
배우는 우리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