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가 지나서 담담한 마음으로
2015.10.29 16:57
이종영을 생각하며 몇자 적는다.
추도(追悼)의 뜻이 그렇듯 서러워 하는 일에 담담해지는 마음잡기는 어렵다. 그래서 하루를 보내고서야 이렇게 글을 쓴다.
어제는 마음을 추스릴 수 없어 김규복과 이종영과 내가 50m 거리를 두고 왕십리에 살았던 행당동, 지금은 마장로로 명명된 1958년도의 골목길을 한참을 더듬었다. 도시계획으로 큰 길이 뚫리며 규복이네 집, 세들어 살던 종영이네 셋방, 그리고 우리 세 식구가 살던 단칸방 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공인중계사(복덕방)도 미친놈 보듯이 나를 훑어보아 더 물어보지도 못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그때는 서로를 모르고 지내다 사대에 입학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서로 같은 동네의 이웃입을 알게 되어 그런대로 어울렸다.
종영이의 왼쪽(?) 어깨에는 八자 문신이 있는데 우리 고등학교 향토연구반(?) 친구들 여덟명이 이런 글자를 세기고 있다. 문신이어서 지워지 않기 때문에 김유진, 육길원, 이희종, 노광길, 이무웅, 박일선, 그리고 박희서의 어깨를 보면 쉽게 알수 있다. 나는 얘들과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종영이 덕분에 팔자 클럽 친구들이 나한테 잘 해준 것 같다. 특히 김유진과 이무웅은 뉴욕에서 장학금을 주었고, 이희종은 늦게 나마 유학오도록 자신감을 심어주며 나를 부추겨주었다. 육길원은 시카고를 갈 때마다 폐를 끼쳤고, 노광길은 LA의 물침대방에서 잠을 자볼 수 있도록 배려 해주었다. 그들은 나를 부고 동창으로서가 아니라 이종영의 손위처남으로 그렇게 잘 해준 것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얼마 있다가 무슨 일로 종영이와 의논하는데 종영이가 나에게 반말을 못하고 엉거주춤 말끝을 자꾸 흐려서 속으로 '누가 충청도 양반 아니랄까봐 이러나'하며 피식 웃은 이래 죽을 때까지도 어디가 아프다고 말한 일이 없다.
어제 아침 일찍, 필규가 전화를 걸어와 종영이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을 때, 바로 대답을 못하고 희서한테 물어서 알게 된 배경에는 나와 내 동생의 서러운 가족사가 있고, 시누이와 올케의 해묵은 모종의 사건이 있고, 내 여동생의 부족함이 있었다. 이것을 바로 대답할 수 없었던 점을 여러 관심있는 동창들이 이제 75세가 넘었으니 이해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가족사에 관한 암시로, 나는 법정 스님의 가족사를 알고서부터는 그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천경자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으며, 소설가 공지영이 호적법개정을 외칠 때 조선의 족보와 팔천은 그렇게 쉽게 지워질 수 없다고 편지로 아우성을 쳤다.
내 누이를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내가 공부시키다싶이 했다. 늦게 들어간 대학 3학년 때인가 어머니로부터 당장 결혼시켜야 하겠다는 천둥소리를 듣고 기절하다말고 신랑감이 누구냐고 물엇을 때, '종영이'라고 하여 커다란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를 좋아해서 우리 셋방을 찾아드는 줄 알았더니 내 동생을 대려갈려고 그랬던 것을 알며, 우리 형편에 저 만한 놈이면 장땡이다 하면서 당장 날짜잡고 혼수장만하고, 아버지 역할까지 내가 다하고서 끝으로 오빠가 할 일은 일제 석유난로를 사주는 것이다며 어머니와 함께 셋이서 흑흑 울었던 일이 있었는데,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큰 딸을 낳아 친정엄마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천지개벽으로 이혼하겠다고 보따리를 싸갖고 우리집에 온 일이 있었다. 이때, 내가 우리 식구 아무도 모르게 종영이를 만나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잘 못 가르쳐서 그렇다. 이번 한번만 용서를 해다오'하면서 내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종영이는 아무 말 없이 집에 가라고 하며 내 동생을 대리고 자기들 집으로 갔다. 그때 종영이가 얼마나 고마운지, 두손을 잡고 굽실굽실 하였다. 그리고 76살까지 잘 살았다. 나는 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종영이 혼이 있어 이 글을 읽으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고 하늘에 대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종영이의 명복을 비느니 마느니 보다 이 글을 통해 이종영과 박문태는 처남매부였구나, 그리고 손위 처남 박문태는 항상 매제 이종영에게 빚을 지고 사는, 많이 부족한 동생을 동창 이종영에게 떠넘기고 무심했던 놈이었음을 우리 동창들이 이해하고 용서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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