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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날을/ 와타나베 가즈꼬

2016.04.08 17:44

오세윤 조회 수:148

평범한 나날을 비범한 하루하루로 산다/ 좋은 수필 4월호 수록

 

와타나베 가즈코 渡辺和子 권일주 역  

 

 수도원에 들어왔다고 해서 곧 수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 후 몇 가지 단계를 더 통과해야 한다.  

 입회한 후, 먼저 1년 가까이 지원기를 보낸다. 그 기간을 무사히 통과하면 수련기가 2년 정도. 그리고 그 후에 마침내 청빈, 정결, 종순의 세 가지 서원을 맹세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 세 가지 서원은 매년 여러 차례 갱신하며 그 동안에는 유기(有期)서원자라고 불리는데, 그 사이에 환속하는 사람도 있고 수도회가 퇴회를 권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 후에 이윽고 세 가지 서원을 일생동안 지킬 약속을 하고 수도자가 되는 것이다.

 

가정 사정도 있어서 나는 서른 살 가까이까지 직장에 다니다가 수도원에 들어왔다. 그리고 몇 년 후,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점이 한 몫을 해서 미국 보스턴 수련원에 유일한 일본인 수련여로서 파견되었다. 그곳에서 백 명 가까운 미국인 수도자들 사이에서 1년간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하여 밤 9시에 취침하는 생활을 했다. 그 시간을 거의 명을 받은 단순 노동을 하는 데 썼다. 

 어느 여름, 정오가 좀 지난 무렵의 일이었다. 당시 내게 주어진 일은 저녁식탁을 차리는 일이었다. 파이프로 된 의자 앞 테이블에 하나하나 접시와 컵, 포크 등의 식기들을 가지런히 놓는 일이다.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는데 어느 새인가 내 등 뒤에 와있던 수련 장이 내게 물었다.

   “자매님,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며 지금 이 일을 하고 계시나요?” 

갑작스런 일이기도 해서 나는 우물쭈물 대답했다.

   “어떤 특별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수련장은 다시 내게 말했다.

  “그렇다면 자매님은 시간을 헛되이 쓰고 있는 것이에요.”

 질책을 띤 말이었다. 명을 받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시간을 헛되이 쓰고 있다고 하는 걸까? 의아스러워하는 내게 수련장은 차분하고 조용하게 말했다.

  “이왕에 집기들을 나란히 놓는 일이니 그것들을 사용해 저녁밥을 먹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놓아 보세요.”

  그때까지 나는 일이라는 것은 하면 되는 것, 즉 ‘doing’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일이라는 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하는 ‘being’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시간을 쓰는 방법이 그대로 하나의 생명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방법이 된다는 것과 이 세상에 잡일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며 일을 아무렇게나 함부로 했을 때 그것이 바로 잡일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운 것이다.  

 마당에 잡초를 뽑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잡초란 풀잎들을 잡아 뜯지 않고 뿌리째 뽑도록 노력해야만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해보면 그것은 시간과 품이 훨씬 더 드는 일이다. 어찌 보면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비행소년소녀의 발이 악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도록 기도하면서 뽑는다. 그럴 때 하찮고 시시하다고 생각하던 일이 의미 있는 일로 변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귀함은 이와 같이 평범한 행위를 의미 있는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환경의 노예가 아니라 환경의 주인이 되었을 때 존귀함이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식탁 위에 접시와 포크 나이프를 늘어놓고 또 마당의 잡초를 뽑았다고 해도 겉으로 드러난 결과를 보면 거의 똑같이 보이고 시간도 대등하게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을 쓰는 방식은 곧 생명을 쓰는 방식이다. 로봇이 하는 것처럼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이 줄 수 있는 사랑과 기원을 마음과 손가락 끝에 담아 일을 했을 때 평범한 일은 비범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물건도 항상 두 손으로 받아야 합니다.”

 오래 전 어떤 사람이 내게 가르쳐준 이 말을 마음에 소중히 담고 잡일을 잡일로 만들지 않고 평범한 나날을 비범한 하루하루로 지내며 오늘을 살고자 애쓰고 있다.

작가 소개

 

 와타나베 가즈코 渡辺和子  

 1927년~, 노트르담 세이신(淸心)학원 이사장, 일본 카톨릭학교연합회 이사장, 작가,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것》 《아름다운 사람에게》 《행복이 있는 곳》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십시오.》 《귀찮으니까, 하자》

역자 노트

 “살다보면 ‘내가 원하는 나는 이런 내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그 상황 속, 그 자리에서 ‘꽃피울’ 노력을 하십시오. 그래도 도저히 꽃을 피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무리하게 꽃피우려고 하지 말고 그 대신 뿌리를 밑으로 더욱 밑으로 내리십시오. 더 크고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가 말한 이 한마디에 끌려 이 달의 작품으로 선택했다. 작가는 29세에 나므르 노트르담 수도회(Sisters of Notre Dame de Namur)에 들어가 미국 보스턴 칼리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오랜 기간 동안 교단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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