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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2016.5.10)

2016.05.10 17:27

박문태 조회 수:132

국민학교 여름 방학, 아마 6학년 때(?), 왜 일기를 써오라고 숙제를 내셨는지 모르겠다. 특히, 한참 방학 중인 8.15일에 학교에 나와 

운동장의 잡초를 뽑아야 한다고 엄포를 놓으셨던 선생님이 무서워 방학동안 내일, 내일 미루었던 일기를 벼락치기로 이틀만에 끝내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맨날 같은 날, 개울로 나가 헤엄치고, 피래미 잡고, 재수 있으면 뱀도 잡고(이것을 동네로 가져가면 어른들이 약탕관에 끓여

몸보신 한 다고 좋아하였다), 까맣게 타버린 얼굴에 일기에 쓸 것이 없어 망막했었다. 아무리 궁리해도 일기에 쓸 거리, 사건이 없었다.

겨우 8.15에 학교에서 잡초를 뽑았던 일 몇 줄을 쓰고, 용잠자리 잡아서 닭에게 주었던 이야기 그리고 뱀잡았던 이야기가 전부였다. 할 수 없이

같은 이야기를 순서를 바꾸어 섞어 써서 겨우 몇 장을 채우고 그냥 제출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읽어보지도 않고 도장만 찍어 돌려주었던 같다.

 그렇게 쓰기 싫었던 일기를 이 나이에 자발적으로 쓰기 시작하니 나라는 놈은 정말 팔불출이다. 오늘은 무엇을 주제(?)로 쓸까 자판기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머뭇거리는데 어렴풋이 잠을 부르는 방식이 떠올랐다. 수면제를 먹기보다 어려운 소설책(죄와 벌, 카라마조프가 형제?)을 꺼내어 읽으면 금방 잠이 온다. 박완서의 수상집은 오히려 잠을 쫒는다. 책상에 단정히 앉아 밑줄쳐가며 읽어야 한다.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으며 쉬운 어휘로 나 같은 사람에게 은근히 훈계를 하고 있어서 번쩍 잠이 깬다. 박경리 선생보다 박완서 선생을 나는 더 좋아한다. 박경리 선생은 hug까지 했으나 아무 냄새가 안 나고, 박완서 선생은 그 앞니가 더 도드라져보여 참 좋았다. 그래서 잠자리에서 박완서의 수상집을 읽으면 인생이 슬퍼진다. 갑자기 그 님이 보고 싶어진다. 

  밖에 비가 오고 있어서 하던 일(대필 정리)을 멈추고 낮잠 자기에 좋은 날씨라, 이런 날씨가 아까워 인터넷 유튜브의 음악을 골랐다. 이때 조심할 것은 흘러간 우리 노래, 가사가 귀에 생생한 나그네 설움 같은 것을 선택하면 잠을 쫓아버린다. 그 가사가 내 머리를 자극하니 잠이 도망간다. 가사도 모르고 멜로리도 어려운 서양 음악, 몇 악장 하는 것들을 틀어놓으면 진짜 자장가가 되어 한 두어시간 동안 푹 자게 해준다. 나는 수면유도제로서 'x의 즐거움'(인생을 해석하고 지성을 자극하는 수학 여행)을 요즈음 즐겨 찾는다. 조금 어려운 수학책이어서 수면유도제로서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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