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2016.5.22)
2016.05.22 23:52
용기(勇氣)
겁내지 않는 기운을 용기라 한다. 한자 勇을 잘 못 해자(解字)하면 남자가 힘을 쓰듯이 치솟는 것, 어쩌고저쩌고 할 것이다. 바른 해자는 물이 솟듯이(용;甬) 결단력이 있고 힘이 넘친다는 뜻이다. 기운의 기(氣)는, 힘쓰는 힘은 기;(?) 쌀밥(미;米)을 먹어야 기운을 쓸 수 있다는, 죽을 먹고는 힘을 못 쓴다는 뜻이다. 하여간 용기는 남들이 쉽사리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을 비록 한동안 망설였어도 행동으로 옮기는 결정을 내리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더구나 그 일이 뜻있는 것일 때 용기라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순전히 객기로 어떤 결정을 내리고 불쑥 행동으로 옮겨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까지 입히면 만용(蠻勇), 야만인이나 저지르는 용기를 부렸다고 비판한다.
나는 용기의 반대, 비겁하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는 열등감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바로 서울 사대의 교육심리과에 입학한 것을 무슨 죄를 지은 것인 양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지내왔다. 사실은 ‘교육학부’ 모집에 1)교육행정과(10명), 2)교육심리과(10명), 3)교육과(15명)가 있었는데 제1지망에 교육행정과를 쓰고, 바로 밑에 있는 제2지망에 교육심리과를 무심코 썼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2지망으로 들어간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용기 있게 밝힌다. 행정고시라도 시도했어야 하는데 먹고 살기 바쁘고, 여동생 공부시키기에 쫓겨 1차 시험도 본 일이 없다. 아마 보았어도 모자라는 내 머리로는 낙방했을 것이다. 정말이다.
나는 용기가 죽어 비겁하게 동급생 K에게 무릎을 꿀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리고 내 양(兩)어깨에 내려치는 발길질을 반항한 번 못하고 그대로 당했다. 그는 키도 컸고, 꽤 유명한 운동 선수였고, 인상도, 지금이니까 내뱉지만 조금 더러웠다. 나는 키도 두 번째 줄에 앉을 정도로 쬐그만 한데 나를 불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냥 발로 내려찍는 것이었다. 그때 그 반의 큰 아이들 아무도 용기 있게, ‘K야, 그 쬐그만 새끼가 뭘 잘 못했다고 그러냐?’라고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날로 전주로 전학하려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으나 부치지 못하고 일주일, 2주일 지내다가 전학 시켜주지도 않을 것이 빤해서 찢어버리고 갖은 고생하며 졸업하고 말았다. K가 누구를 시켜 나를 자기 반으로 불렀을 때, 이석희와 노광길은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냥 있었다. 얻어터지고 1학년 1반으로 돌아왔을 때도 위로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서울깍쟁이 행동의 표본을 보였다.
용기에는 여러 상황, 4.19 데모에 효자동까지 갔다가 남의 집 장롱 속으로 숨어들어 경찰에 끌려가지 않았던 일(이연섭 증인), 국보적인 노교수를 알지도 못하고 집에까지 찾아가 퇴임하시기를 간청한 일, 서울의 모 여대 앞에서 바지내리기 내기에 이겼던 용기 등등 인간행동의 연구에 참고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오늘 일기(日記)에는 아름다운 용기를 밝히고 싶다. 불륜을 저질은 것도 아니고,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가장 엄한 자연법(법철학에 나오는 고상한 이야기)에 따라 소꿉놀이를 재미있게 막 시작했는데,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 글쟁이로서 진솔한 의견을 밝히고 싶다. 극희 일부 친구들만 알고 차마 공개적으로 말을 못 꺼내는 ‘소꿉놀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두 사람이 소꿉놀이를 시작하기로 한 것은 영국 신사로부터 나온 것 같으나 누가 먼저냐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영국 신사의 수줍은 표현은, ‘말이 통하는 사람’임을 점점 확인하면서 마음을 굳힌 것이다. 소꿉놀이의 새색시는 오랫동안 진짜 망설였던 것 같다. 그러나 영국신사의 간절함에 머리가 기울어지며 결국은 영국 신사의 어깨에 기대고 말았다. 이들의 소꿉놀이가 어느 누구를 괴롭히고 상처를 줄 것인가? 우리는 그들의 용기에 헹가래치며 축하해줄 일, 아니겠는가? 나는 위선적 규범을 따지지 않겠다. 어설픈 윤리의식으로 소꿉놀이를 분석하지 않겠다. 그냥 그들의 용기가 아름답고 부러울 따름이다. 날 잡아서 습격가자. 소꿉놀이 밥상도 구경할 겸.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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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16.05.2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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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태
2016.05.22 23:52
뻐꾸기 왈츠를 또 듣고 회고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
김영종
2016.05.22 23:52
왜 2반을 만들어서 추가 입학의 아픈딱지를
일년내내 너이들 때문에 내가 떨어졌다는행패를 부리게했는지 섞어놓았으면 될일을 ...
누고 아직 소꼽장난하나
참 남녀공학 덕 되게보네
인생 황혼 길 아름답게 꾸며가길
진심으로 바라는 친구의 히ㅡ나로
등록함세나 -
강창효
2016.05.22 23:52
낚시 갈 때 같이 가야지, 혼자 갔다오면 안돼!!!!
꼭 연락해서 같이 가자구.... -
박문태
2016.05.22 23:52
김영종, 자연산 물고기가 건강에 좋다는데, 내가 하루 내려 가서 봉사하고 오지. 진짜로.
전라도 식으로 매운탕까지 끓여주고 오지. 며칠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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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흘러도 피해자는 상처가 남아있게 되네요.
소꼽놀이라는 말이 좀 우습기는 하지만
남녀 친구가 친구 이상으로 가깝다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별로 놀랄 일도 아니고 수근거릴 일도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친구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서 하는 말이겠지요.
그 둘의 용기가 부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