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2016. 5.26)
2016.05.26 20:07
말 한마디가 주차료를 공짜로
하긴 여기 이 글은 일기(日記)이니까 이런 내용이 들어가야 제격이다. 마치 시냇가의 징검다리가 발을 디딜 때에 흔들려야 제 맛이 나듯이, 그러니까 시멘트로 각 지게 만들어 아주 견고하면 징검다리의 맛, 자격이 없듯이 정신 나간 이야기를 늘어놓겠다. 낱말 소리대로 ‘징검징검’ 건너 뛸 때, 약간 흔들려야 움찔거리는 긴장이 징검다리의 격을 살려주듯이, 일기에는 가끔 개인 집안의 이야기가 들어가야 남의 속살을 슬쩍 슬쩍 훔쳐보는 솔깃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정직하게 고백하건데, ‘속살’이라고 하니까 소인을 아는 일부 오만, 불손한 친구는 눈살을 찌푸릴 것 같아 미리 얘기하건데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냥 속살이다.
소인의 딸내미가 가슴에 무슨 암이 생겨 강남성모병원에 치료 받으러 일요일 저녁이면 고속버스로 서울에 온다. 직장은 구미이고 살림집은 대전이고 당분간 서울에서 치료 받으며 서울 연구소에서 근무한다. 세상이 좋아져서 화상회의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주말마다 대전에 갔다가 늦게 서울로 오기 때문에 터미널에 마중 나가 우리 집까지 데려온다. 그러다보니 터미널 주차장에 소인의 스포츠 카, 모닝을 주차하고 대게 30분정도로 주차료를 지불한다.
지난 일요일에도 9시 40분 도착 버스에 맞춰 주차장에 차를 세우러 들어갔다. 주차장 사장은 50대 초반의 여자이다. 그동안 주차하면서 보건데 여사장은 미인이다. 게다가 그날 따라 원피스는 주차장의 기름 묻은 옷이 아니고, 산뜻한 분홍색이었다. 주차 표를 받으며, ‘오늘은 더 이뻐 보이네요.’ 솔직한 느낌을 불쑥 뱉었다. ‘부끄러워요!’ 밤이라 얼굴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지만 붉어졌을 게 분명하다.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거짓말을 못 합니다. 오늘도 딸내미를 데리러 왔어요.’ 그리고 주차 공간으로 들어갔다.
피곤해 보이는 딸을 데리고 주차장으로 와서 주차료를 내려고 주차 쪽지를 그 여사장에게 내밀며 ‘우리 딸입니다. OO아, 우리 사장님 미인이시지?’하며 우리 딸을 가리켰다. ‘안녕하세요?’라며 딸이 차에서 간략한 인사를 하는데, ‘아빠가 자상하시네요. 오늘은 그냥 가세요.’ 하면서 주차쪽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예?’ 나는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그냥 창문을 올리며 다음 주일에도 또 올 것이라고 인사 아닌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다.
많지 않지만 주차료 2000원을 공짜로 안 받았다는 것에는 ‘미인이다’는 말에 진정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기 딸에게까지 확인하는 데에 나의 진정성이 객관화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동창들이 읽어줄 것을 고려에 한 가지를 밝히면, 돌아오는 차 속에서 딸내미가 한 말이다. ‘아빠, 그 여사장 별로 미인 아니던데---’ ‘그래?’ 엄마한테 이른다는 말을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더 할 말이 없어져버렸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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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16.05.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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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흥숙
2016.05.26 20:07
힘든 따님을 돕는 중이시군요.
쾌유를 빕니다. -
신승애
2016.05.26 20:07
첨단의 일을 하고 있는 자랑스런 따님의 쾌유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궁금한 것 한가지: 동창들이 읽어 줄 것을 고려해서 밝힌다는 마지막 문장이 어떻게 동창들을 고려 한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네요. 나만 바보인가? -
임효제
2016.05.26 20:07
박 교수
터미날 주차장 여사장 문제,,? 보다,,,
어휴~~
딸 내미가 어서 나아야 되겠네.
속 상하고도 큰 걱정 되겠네요 ~~~ ㅜㅠㅠ -
임효제
2016.05.26 20:07
추신~
그리고 괴산 영종이 동네에 매운탕 끓이러 갈 때,,
이 놈의 반쪽도 연락해서 데불고 가소?
어여쁜 미녀도 있으니 한 자리 해 주시고,, ㅎㅎㅎㅎ -
강창효
2016.05.26 20:07
문태의 일기가 점점 인기가 올라가네..
여동님들까지 세분이나 댓글을 달아주시니...
딸이 아빠를 잘 배려하겠지만
아들, 딸 앞에서 외간여자(?) 이쁘다고 하면 큰일 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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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드나들면서...
따님의 아픔이 빨리 없어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