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2016.6.13) 넋두리
2016.06.13 18:29
지금 생각하니 이희종의 충고 한마디가 나의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왔다. 1972년 처음 미국에 훈련 받으러 갔을 때, 다른 유학생들의 생활 태도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던 나의 불평불만에 ‘너의 주관대로, 너 할 것이나 착실히 해! 게들을 직접 만나 고칠 생각이 없으면 신경 쓰지 마.’ 그때는 아무런 대꾸를 안했지만 이런 충고를 듣고 자괴감이 들지 않았으면 대단한 사람이다. 속 좁은 나로서는 속으로 이 말을 새기고 지금도 나를 지배하고 있다. 즉, 직설적으로 대들어 혼을 내든지, 아니면 묵살해버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그렇다.
이희종의 격려에 힘을 받아 1년 뒤에 토플(Test of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지알이(Graduate Record Examination), 문교부 유학시험 다 치르고 학생 비자(F1)를 받아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나 지금이나 독일 유학(독일에서 경제학 공부를 한 현재 유명 정치인도 유학시험 없이)에는 학생비자를 따로 받지 않고 가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나는 그렇지 않음을 구차하게 밝혔다. 미국 대학에 장학금까지 받아놓고 문교부 유학시험에 떨어져 한 1년을 늦게 출발한 경우도 있었다. 당시 문교부 유학 시험은 외화수급조절장치의 일부분이었다. 내가 입학한 대학은 뉴욕 주 올바니의 주립대학이어서 뉴욕까지는 3시간 밖에 안 되는 주 정부가 있는 곳이지만 뉴욕 구경 한번 나가지도 않고 공부에 헐레벌떡 따라가기 바빴다. 첫 학기에는 땡전 한 푼 못 받고 생돈내고 공부했고, 둘째 학기부터 Research assistantship을 받게 되었는데, 그 배경이 통계 시험에 약 50여명이 듣는 반에서 1등을 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강사(주정부 직원)가 조수가 필요하던 차에 동양학생이 말도 못하는 주제에 시험 하나는 잘 보아서 조수로 선택해준 것이다. 이때 한 미국여학생이 한국 학생을 많이 알고 나한테도 친절했던 친구가 한국 학생들한테 소문을 내었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박수쳐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반대로 유학생들 부인들한테 위로를 받은 일이 있다.
박사과정 학생들은 명칭은 약간씩 다른 종합시험(Comprehensive Exam) 또는 자격시험(Qualification Exam)을 통과해야 논문 쓸 허락이 떨어진다. 나의 경우는 시험이 주전공 한 분야, 부전공 한 분야로 두 개의 다른 분야이었다. 대부분 미국 친구들은 부전공 분야에서 재시험을 보는데, 내 경우는 부전공은 합격하고 주전공 분야에서 과락을 받아 낙방하였다. 정직하게 밝히면, 다른 한국학생, 지금은 고인이 된 지방 대학의 수재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갓 임용된 교수의 횡포로 낙방한 일이 있다. 그 친구는 자기 입으로 낙방했다고 밝힌 일이 없다. 바로 그 교수가 나에게 귀띔해주어 알게 된 일이다. 나는 시험에 떨어진 주일날, 한인 교회에 가서 옥석(玉石)을 분별할 줄 모른다고 대학 당국을 비웃었다. 그러고서 다음 주부터 같은 유학생들로부터 위로의 인사를 받았다. ‘시험에 떨어져서 걱정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한 번 더 있잖아요.’ 뭐, 이런 식의 위로였다. 속으로 ‘이거 망신 당 했구나’했지만 엎질러진 물, 6개월 뒤에 거뜬하게 합격했다. 그것도 5,6명이 감독도 없이 4시간을 보았는데 약 2주 뒤에 복도에서 마주친 교수가 방으로 불러 따라 들어갔더니 ‘너의 답안지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영어가 다른 점도 있었는데 너는 답안지에 p.s를 달아 전문 져녈에 발표된 내용을 소개하면서 출처, 져널 이름, 권 번호, 페이지까지 밝히고 있어서 채점 교수들이 확인하고 놀랬었다고. 당연히 'You're the top!'이었다. 날아갈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 유학생들한테 자랑했다. top으로 종합시험을 마치었다고. 문제는 그때 유학을 같이 했던 학생들의 부인들이 지금까지 소문을 내지 않아 여기에 처음 밝힌다. 세상인심이 이렇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부고 동창 중, 어떤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수년전에 내 면전에서 미국에 유학하여 박사학위 딴 친구들, 다 엉터리들이야. 실력이 별거 아니라고 하는데 싸울 수도 없고, 그냥 지나치자니 억울하기도 해서 넋두리를 하였다. 아마 그의 친구들 중에 미국의 경제학(미시경제학)으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은 대통령의 한 마디로 ‘사채동결’이 시행되는 거시경제학의 틀 속에 있어서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따봐야 우리경제를 금방 흔들만한 묘안이 나오지 않는 것에 국한하여 한 말인 것 같다. 미시경제학에는 ‘사채동결’ 조치가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났다면 통계처리가 불능으로 나와 dummy variable로 처리해야 한다. 나는 크게는 교육학, 세분하기 시작하면 교육심리학 및 통계학, 더 세분하면 인지심리학, 더 쪼개면 언어학의 ‘이해과정’을 과학적으로 실험, 분석한 결과를 논문으로 썼다. 38세에 반은 오기로 유학하여 45세에 귀국하여 반은 문학에 빠졌던 미친 친구로 그냥 접어두게나. 친구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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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어려운 점이 많았겠어요?
그 때의 과감한 결정이 오늘의 박문태님으로,
불굴의 의지력과 당당함으로 무장시켜 주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