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2016 7.22) 그래, 나만 읽겠다.
2016.07.22 07:20
죽음의 순간
지금 자판기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니 새벽 3시를 조금 넘었다. 엊그제 괴산의 영종이네 집에 갔다 온 그림들이 진짜 주마등(走馬燈) 같이 모니터를 지나간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도 한 반을 하거나 무슨 특활을 같이 한 일이 없는데 유독 안태영을 잘 기억하고 있었던 참에 영종이의 청으로 태영이를 데리고 영종이네 집에 간 것이다. 영종이의 부탁이 아니어도 왠지 태영이는 가깝게 느껴져 온 김에 잘 되었다고 흔쾌히 경차 모닝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갓 입학했을 때부터 노광길이 안태영을 자주 이야기하며 좋아했고, 보이스카우트 젬보리에 참가하려고 제주의 캠프에 한 발 늦게 도착한 태영이의 모험(스릴) 이야기가 전주 촌놈에게는 대단히 부러운 이야기이어서 더 그랬나보다.
공대 출신의 태영이의 너무나 다양한 지식과 경험 이야기 때문에 운전이 지루하지 않았다. 국방에 관한 아이디어부터 최근에는 오페라와 특히 빠른 리듬의 품파에 관한 전문 음악가 수준의 해설은 백미였다. 돌아오는 끝 이야기는 우리들 나이로 생각이 꽂히면서 ‘외로움’과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태영이에게 못 다한 죽음의 ‘순간경험’을 기록으로 남길까한다. 이것은 작가 박해룡의 소설이 아니라 실화이다.
2013년(?) 4월 초, 서산의 수로, 깊이 약 2∼3m에 폭 30m 정도의 일대의 논에 물을 공급하는 곳으로 혼자 낚시를 갔다. 이때가 산란기라서 낚시로는 시즌이다. 방한복, 오리털이 잔뜩 들어있는 큰 잠바를 입고 낚시를 하면서 왠지 입질이 없어 자리, 포인트를 찾아 옮기려고 일어섰다. 내가 자리를 잡았던 곳은 경사가 급하고 바로 물 길 위였다. 갈대를 밀어 길을 내며 옆으로 가다가 미쳐 못 본, 풀에 가려 숨어있던 진흙에 미끄러져 크냥 수로로 떨어져 빠져버렸다. 마침 낚싯대를 들고 있지 않은 맨몸이었다. 낚싯줄이 있었으면 어디 몸에 엉킬 수 있었다. 장화에 장갑과 잠바로 중무장한 둔한 몸이 물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순간이었다. 물론 수로의 물도 한 모금 마셨을 것이다. 분명히 지금도 기억되는 것은 ‘내가 이렇게 죽는 거구나’의 생각이었다. 타살에 의한 죽음의 순간에도 ‘내가 죽는구나…’의 생각은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어머니가 떠오르거나, 바가지의 할망구가 떠오르거나, 자식새끼들이 떠오른 것은 아니었다. 허우적대며 ‘이대로 가는 거구나’이었다. 눈을 감고 있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그런데 몸이 더 가라앉지 않고 멈추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물 위로 얼굴이 나왔다. 바로 옆에 갈대가 보여 불야, 풀이야 움켜잡았다. 수로의 풀을 두어 번 바꿔 잡으며 옆으로 발을 뻗어 겨우 올라와 기어나갔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리털 잠바가 구명조끼 역할을 해주었다. 그래서 물에 뜨게 되었다. 그리고 온몸이 금방 사시나무 떨 듯이 벌벌 떨려 자동차로 들어가 홀딱 벗었다. 이때 정신을 차려야 한다면서 자동차 시동을 걸고 히터를 켰다. 지금도 그 잠바를 갖고 있다. 구명조기 잠바를 볼 때마다 헴릿의 물에 떠있는 오필리아를 생각한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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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이라는 책도 읽고 있어요.
'내가 이렇게 죽는 거구나' 하면서 물에 빠져서
생을 포기한 경험이 나도 생생하게 있어요.
20대 였는데 수영을 못한다고 했더니 짓궂은 머슴아들이
풀장으로 밀어 버렸어요. 삶을 포기하니 힘이 빠지게 되고
그래서 아마 떠 올랐나 봐요.
구출되어서 들어보니 물속에서 뒷머리가 떠올라 오더라고 하던데요.
얼굴은 물속에 담그고...
아직도 악몽으로 남아있고 그 작자들을 용서할 수 없어요.ㅎ.ㅎ.